[송문석 칼럼] 학폭은 철없던 시절의 장난이 아닌 명백한 범죄다
상태바
[송문석 칼럼] 학폭은 철없던 시절의 장난이 아닌 명백한 범죄다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1.03.15 13: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폭력은 인간성 파괴하는 범죄...청소년들의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돼선 안 돼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과 진정한 사과 통해 피해자 구제와 관계 회복 절실
학폭 예방 조치와 함께 오늘 발생한 학폭은 곧바로 처벌 이뤄져야 악순환 차단 가능

누군가에게 쫒기다 막다른 골목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수없이 쏟아지는 발길질과 주먹질에 울부짖다 깬다. 악몽이다. 꿈속에서 달아나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지 팔다리가 뻣뻣하다. 얼굴과 목덜미에 땀이 흐르고 잠옷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다. 골목까지 쫒아오던 사람들의 그림자에서 20년 전 고등학교 때 괴롭히던 같은 반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채널을 돌리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계 스타가 된 그의 얼굴을 또 보고야 말았다. 소름이 끼친다. 화면 속에서 그는 세상 누구보다 선하고 착한 얼굴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역겹다.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중학교 때 쉬는 시간만 되면 손찌검을 하고 침을 뱉고 돈을 뺏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 일진이었던 그의 ‘조폭적 과거’를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아이돌 스타가 된 현재 그는 도전할 수도, 무너뜨릴 수도 없는 ‘철옹성’이다. TV, 신문, 잡지 등에서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괴롭고 좌절감이 든다.

학교폭력(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학교폭력은 용납돼서는 안 되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학교폭력(학폭)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학폭 문제가 표면화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배구선수 이재영 이다영 자매 사건 이후 스포츠계 연예계 등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학폭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10년 뒤, 20년 뒤 까지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폭 피해자들은 어른이 돼서도 아픈 기억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났어도 학교 근처나 폭행을 당했던 장소는 일부러 피해 다닌다. 가해자가 살던 동네를 지나야 할 때는 몸이 움츠러들고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이 빨라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요즘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피해자인 자신은 손끝에 박힌 가시처럼 가슴을 찌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 살고 있는데 정작 가해자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당당한 모습을 보면 억울하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더구나 가해자가 스포츠 스타나 연예계 스타로 성공해 천사같은 얼굴로 TV에 나와 학창시절을 미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칠 것만 같다. 이 세상이 불공평하고 부도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학폭이 뉴스에 나오고 사회 문제가 될 때 “아이들은 다 그렇게 싸우면서 크는 거야”라면서 학교폭력을 마치 놀면서 말다툼하는 정도로 사소하게 치부한다거나,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렸겠지”라고 2차 가해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심지어 가해자가 성공한 능력을 배경으로 학폭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고 피해자에게 뒤집어 씌울 때는 사냥꾼에게 내몰려 피할 곳이 없는 나약한 짐승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학폭 피해자들이 공소시효가 지났는데도 SNS나 인터넷을 통해 피해사실을 호소한 것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이들의 가슴 속에 피가 멎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반증한다. 학교폭력 예방피해지원 단체에는 현재 학생들이 겪는 학교폭력 상담 건수보다 10년 전, 20년 전 당했던 학교폭력을 상담하는 성인들의 사례가 더 많다고 한다. 형법상 학교폭력 공소시효는 지났을지라도 학폭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공소시효’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법에 호소할  길이 없으니 사이버 공간을 빌려 폭로하고 있다.

학폭(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현산군’으로 불릴 정도로 후배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농구 스타의 학폭 피해 사례가 또 인터넷에 폭로됐다. 당사자로 지목된 스타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현주엽은 “악의적인 모함"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수사가 이뤄질 경우 학폭 진실 여부는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보여 지금으로선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특정인을 향한 모함이나 사적인 복수의 수단으로 학폭 사실을 조작하고 뒤집어 씌워서는 안된다. 그러나 학폭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온정적인 시각부터 거둬들여야 학폭을 근절할 수 있다.

학교폭력은 청소년기의 장난이 결코 아니다. 청소년 범죄는 지능화, 조직화해 성인들의 폭력을 능가할 정도다. 심지어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형법 규정을 악용한 범죄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을 때 유사 폭력, 모방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TV와 광고 등에서 인기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기에 친구를 때리고 괴롭히면 훗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학폭이 근절될 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스포츠계에서 퇴출되고 연예계에서 추방되는 등의 사회적 처벌 수준이 적절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피해자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들이 이룬 성취는 피해자들을 짓밟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얻은 것들이고, 우리는 여전히 가슴에 피를 흘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처벌은 당연하다.”

학폭은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의 학폭이 10년 뒤, 20년 뒤 SNS나 인터넷을 통해 호소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 악순환은 멈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바로 학폭 근절에 나서야 한다.

학폭을 축소하거나 쉬쉬하면서 덮어둬서는 안된다. 학폭이 발생하면 즉각 합당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가해자는 처벌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의 구제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회복 또한 필수다. 학폭 예방 조치도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