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 우리에겐 그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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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 우리에겐 그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 취재기자 성민주
  • 승인 2021.03.11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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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처럼 피해자를 배려하는 점을 본받아야
아직까지 인터넷상에는 피해자들이 수없이 언급되고 있어
피해자들, 일반 기억보다 트라우마 기억을 더 잊기 어려워
피해자 이름을 언급하거나 관련 사건 내용 묘사는 지양해야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뤘다. 영화에서는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이 피해자들에게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가가지만, 가해자들에게는 용감하고 정의롭게 대척하는 모습이 나온다. 가톨릭 신도들의 반발과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에도 기자들이 끈질기게 취재하는 모습은 인상 깊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당시 성추행 사건을 재현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선정적이지 않게 사건을 다뤘다는 점이다. 기존의 한국 영화 ‘소원’, ‘도가니’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당시 사건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한 경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도 붙어 관람객들은 선정적이고 생생한 묘사에 실화라는 사실이 의심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언론 보도에서도 피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하거나 관련된 사건 내용을 모두 언급해 자극적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스포트라이트' 영화처럼 피해자들을 위해 조금 더 배려하는 점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두순 사건 때만 해도 네티즌들의 반발로  '나영이 사건'이 아닌 '조두순 사건'으로 부르는 등 변화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하지만 이후 '민식이 법' '하준이법'  '정인이 사건' 등 또다시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인이 사건 때는 정인 양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건 전후의 얼굴이 나열된 사진들도 함께 떠올랐다.

기자는 최근에 일어난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을 보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람들은 또다시 ‘정인이 사건’이라고 정인 양을 언급하며 당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는 한 아이의 죽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누가 피해자의 아픔을 다시 꺼내 상기시킬 자격이 있을까.

피해자들에게는 트라우마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쉽게 잊히기 어렵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피해자들에게는 트라우마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쉽게 잊히기 어렵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피해자들에게는 일반 기억보다 트라우마 기억이 쉽게 잊히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뇌의 정보처리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압도적인 트라우마의 기억을 전혀 가공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어린 시절 모든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기억의 변화가 매일 일어난다. 하지만 트라우마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고 파괴적이어서, 뇌에 있는 정보처리 시스템이 마비 상태에 빠져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이는 해당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거나 계속해서 상기될수록 그 기억은 더 강렬하게 각인된다고 한다.

수많은 인터넷상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떠다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피해자들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길을 걷는데 곳곳에 나의 잊고 싶은 기억들이 붙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들을 아무리 없애고 없애도 계속 나타난다고 생각해 본다면 매우 고통스러울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상기시키고 있다. 기자 또한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어떤 사건을 말할 때 해당 사건의 피해자 이름을 따서 그대로 말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더이상 그들의 이름을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사건을 이야기할 때 사건 묘사를 적나라하게 하거나 가명이어도 피해자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 역시 이러한 부분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요구해야 한다. 먼저 피해자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더이상 그들이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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