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 못 찾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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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 못 찾으면서
  • 칼럼니스트 강석진
  • 승인 2016.06.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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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강석진

얼마 전 도쿄를 다녀왔다. 20여 년 전 4년간 근무했고, 그 뒤 몇 차례나 걸음을 했던 곳이다. 이번 체류 기간 동안 몇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시부야역 부근의 기노쿠니야라는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이나 할까 마음먹었다. 긴자선 전철을 타고 시부야 역에 내려 역사 밖으로 빠져 나왔다. 당연히 쉽게 찾으리라 기대했는데, 웬걸, 역사를 나서니 동서남북이 분간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치코라는 유명한 개 동상 앞에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도 눈에 안 보이고, 시부야 역사를 빙빙 돌아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결국 경찰관에게 물어 보았다. 경찰관이 한 공사터를 가리키면서 “예전에 저 건물에 기노쿠니야 서점이 있었는데, 지금 그 건물을 헐고 새 건물 신축 공사중”이라고 말해 준다. 길도 못 찾으면서 머릿속에 담긴 건물 모습만으로 찾다가 낭패를 본 셈이다.

불과 몇 년만인데도 길도 못 찾을 정도로 도쿄는 변하고 있었다. 아카사카 거리의 즐겨 찾던 라멘집 자리에도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심바시 역 부근 모습도 꽤 변해 어디가 어딘지 찾아 다니기 쉽지 않았다. 일본 청년들은 취업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을 여러 군데서 들었다. 그런가 하면 과거 일본에 가면 아키하바라에 들러서 워크맨, 카메라, 코끼리표(조지루시) 전기 밥솥을 사던 한국인들이 이제는 "일본에서 살 물건이 별로 없다"며 양판점 앞을 심드렁하게 지나간다.

일본에 있는 동안 신문 지면에는 아베 총리 지지율이 50%를 넘어섰고 G7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방문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히로시마에 함께 가서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찾게 만들면 지지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청년 실업률이 12%를 넘었다, 가계 부채가 1,200조 원을 넘었다면서 걱정하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해운 조선 업계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다른 산업 분야와 부동산 위기가 차례를 기다리고, 2017년과 2018년 무렵 꽤 힘든 시기를 지나가야 할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들이 SNS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못지않은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3% 성장률을 이야기했지만 마치 내가 시부야에서 과거의 잔상에 매달려 길을 못 찾듯 과거의 경제 패러다임이었던 성장률에 매달려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길을 못 찾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만 하다.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 글을 읽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아버지가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이 풍비박산나던 쓰라린 경험, 어린 자녀(학생)들이 겪었던 심적 물적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외환 위기를 일본에서 겪었다. 그리고 그 위기의 모습과 현재의 우리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방정맞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지평선 멀리서 진한 먹구름이 몰려오는 느낌이다. 1997년에도 정부는 괜찮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역적자, 경상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외환 보유고가 부족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적자 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이내여서 외환보유고로 방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차라리 속였다는 표현이 나을까?). 그 이전 시대에는 적자 폭이 GDP의 10%를 넘었다고 친절하게 비교하면서. 지금은 외환보유고는 꽤 비축했지만 산업과 금융, 부동산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국민이 엄청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결과치가 비슷하게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나 그 때나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는 긴장감은 느슨하고, '내가 크게 피해를 보지는 않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만연해 있는 점도 비슷하다.

결국 당시 우리는 치욕적인 국제 구걸 행각에 나서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물론 유수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돈 빌리러 전 세계를 쏘다녔다. 일본에도 무수한 인사들이 들렀다. 돈 꾸러 온 인사들을 따라 취재에 나섰다. 멀리 시골 농협 단위조합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돈을 꿔 줄 리가 있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양복 입은 거지 신세였다. 마지막으로 서로 난처해하며 헤어지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양쪽 인사들의 옷차림이었다. 서울에서 온 분들은 윤기가 흐르는 양복에 구두코가 거울처럼 반들거렸다. 일본 측 인사들은 그냥 스스로 솔질한 듯한 구두를 신고 양복도 수수한 편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나만이라도 한국에 돌아가면 평생 구두를 내가 솔질해서 신고 다니겠다고. 그래야 양복 입은 거지 신세가 되지 않을 거라고.

옛 이야기가 길어진 걸 보면 필자도 ‘쉰 세대’인가 보다. 그래도 요즘 데자뷰(기시감)를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가계부채가 태산만큼 쌓이고 있는데도 정부로부터 저축하라는 캠페인을 최근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소비가 경제를 활성화한다고 하지만 빚내서 소비한 돈이 나중에 나를 잡아먹지 않을 리 없다.

총선이 끝나고도 정신 차리기를 거부하던 정치권에서 경제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도 가끔 이야기하고 있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한 기자회견에서 청년실업률과 성장률 하락 등 최근의 어두운 경제 상황을 언급하고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한 대응 노력을 주문했다. 또 새누리당 복당을 신청해 놓고 있는 유승민 무소속 의원도 서울 성균관대 강연에서 “지금 대한민국만큼 총체적인 국가 개혁이 필요한 나라도 없다”면서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해소를 위해 따뜻한 공동체와 정의로운 사회 구축이 이 시대의 목표”라고 화두를 던졌다. 유 의원의 말을 좀 더 인용하면 “한국의 자유시장경제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가 아니다.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관심없고 오로지 성장지상주의로 수십 년 간 해 왔는데 지금 갖고 있는 결과는 꺼져가고 죽어가는 경제”라는 것이다. 유 의원은 “그래서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기득권 세력”이라고까지 강한 주장을 폈다.

20년 전 경험 때문인지 지금 김종인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의 지적에 눈길이 간다. 총선 후유증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한 번 다녀가니 대선판이 흔들거리는 정치 공학의 시절이 돌아오고 있지만, 다가올 대선에서는 각 정당과 주자들이 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붙잡고 시대에 유효한 메시지를 발신해 주길 기대하고 싶다. 그래야 우리 정치공동체의 길을 찾는, 의미있는 선거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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