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가 조명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능력 하나가 남들보다 유별나다. 노래를 맛깔스럽게 잘 한다든가, AI와 견줄만한 바둑 실력을 지녔다든가, 대화를 매끄럽게 잘해 어느 집단이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둥 소위 말하는 ‘재능’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대상이다.
픽사와 디즈니의 신작 영화 '소울'은 이러한 재능을 두고 ‘스파크’라 표현한다. 스파크는 독특한 자신만의 성격과 관심사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불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불꽃 여섯 가지가 모이면 비로소 영혼에게 ‘지구통행증’이 생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은 불꽃 여섯 가지를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얻을 수 있다. 여섯 가지를 매번 미처 채우지 못하고 다섯 가지에만 머무르고 있는 영혼, '22'가 있다.
22는 우연한 계기로 재즈를 사랑하는 남자 조 가드너를 만나게 된다. 지구로 가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22는 우연히 조의 삶을 체험하게 되고 지구의 아름다움을 맛본다. 이윽고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돌아온 22에게 여섯 번째 불꽃이 채워지게 된다. 그렇게 22는 지구통행증을 얻는다.
그런 22에게 조는 “내 삶을 간접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반박한다. 조의 몸으로, 조가 가진 음악적 재능을 지구에서 활용할 수 있었기에 영혼 22가 여섯 번째 스파크를 얻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에게 세상에 나갈 영혼들을 돌보는 제리가 한 마디를 던진다.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니야.”
조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22는 조의 삶을 체험해보며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얻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22의 여섯 번째 불꽃이 무엇인지 영화에서는 밝히지 않았다. 22가 어떤 인종으로, 어떤 성별로, 어떤 성격으로,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조는 22의 여섯 번째 불꽃이 자신의 관심사와 같은 ‘음악’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우리는 22가 조에게 한 말인 "하늘을 보며 걷기 위해 사는 것일지도 몰라"라는 대사로 대강 짐작해볼 수 있다. 영혼 22의 목적은 하늘을 보기 위해서, 걷기 위해서, 낙엽 잎을 줍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말이다.
대부분은 살아가면서 평생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특출난 재능을 지닌 인물들을 보며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이유를 좇아보지만 이내 허망함만 가득 안고 좌절한다. 그런 우리에게 영화 '소울'은 인생의 목적이 재능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어쩌면 우리는 영혼 22처럼 하늘을 보기 위해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삶에 익숙한 조처럼, 우리 역시 영혼 22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목적이 아냐. 하늘 보고 걷는 건 그냥 사는 거야.” 무정한 조의 말이 어쩌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항상 던지던 말이 아닐까. 그냥 사는 삶이란 없다. 영혼의 목적은 본래 ‘불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스스로의 인생에서 불꽃을 강요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슬럼프나 삶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