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 산다'... 코로나 시대 더 춥게 느껴지는 노점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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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야 산다'... 코로나 시대 더 춥게 느껴지는 노점상 이야기
  • 취재기자 박대한
  • 승인 2021.01.07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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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비난과 비판을 온몸으로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상
당국은 '거리가게 허가제' 통해 노점상 양성화 유도하지만 '효과 미미'
"아무리 어려워도 버텨야 살아남는다"며 강추위 속 '오늘도 거리로'
불법노점상이 있다는 민원에 노점을 철거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가게 안에서 붕어빵을 판매한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한 노점상은 민원에 밀려 어렵게 차린 노점이 철거당하는 상황을 지켜봐야했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지난해 6월 퇴직 이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1억 2000만 원을 마련해 술집 장사를 시작한 자영업자 K 씨. 그는 “가족끼리 가게를 운영해 인건비 부담 없이 8월까지는 그나마 장사가 됐지만, 코로나19가 확산돼 이제는 임대료를 갚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 사이 매출은 10배 정도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K 씨는 고민 끝에 자신의 가게 앞 공간에서 붕어빵 노점을 차려 거리를 오가는 손님들을 상대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붕어빵을 판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구청에 불법노점상 신고가 들어가 판매시설이 철거되고 말았다고 한다. 

K 씨는 “내 가게 앞에서도 노점을 못하게 해 충격을 받았다”며 “어떻게든 수입을 내야 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안에서 조금 길가 쪽으로 튀어나오게 가게를 리모델링하여 마치 노점처럼 길가는 사람들에게 가까이서 붕어빵과 분식을 팔며 임대료를 갚아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상황에 날씨마저 추워졌지만, 이처럼 노점상이 갈 곳은 마땅치 않다. 노점상을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설업자 L 씨는 “남들은 세금, 월세 내면서 정당하게 일하며 세후 소득으로 먹고 사는데, 불법 노점상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교통·보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장사하는 노점상이 많지만, 구청 단속은 어쩔 수 없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교통·보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장사하는 노점상이 많지만, 구청은 민원을 이유로 노점상 단속을 벌인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노점상의 불법 도로점용은 시민들의 민원 대상이다. 노점상들도 시민의 불편함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노점상은 "떳떳하다 할 수 없어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취재를 거절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한 노점상 P 씨는 트럭을 몰고 다니며 17년째 노점 행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단속에 관해 물어보니 “단속이 뜨면 그날 장사는 끝난다”고 말했다. 구청에서 단속이 나오면 트럭에 실린 모든 물건은 압수당하고, 이후 과태료를 낸 영수증을 챙겨 가면 압수된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P 씨는 “허가받지 않았기에 과태료를 내는 건 당연하다”며 “최대한 교통과 보행에 지장이 없는 위치에서 장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딸이 있다고 말하는 P 씨는 “돈만 있다면 떠돌이 노점상을 접고 자리 잡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19로 거리에 사람이 없고, 대면으로 사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며 “노점상도 매출이 반토막 나면서 재산을 모으는 건 사실 꿈도 못 꾼다”고 전했다.

노점상에서 점포, 속칭 ‘박스’ 주인이 된 그들의 삶도 여느 가게처럼 평탄치 않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노점상에서 점포, 속칭 ‘박스’ 주인이 된 그들의 삶도 여느 가게처럼 평탄치 않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합법적인 노점은 불가능할까. 2년전 서울시와 구청의 도움으로 석촌시장 몇몇 노점이 ‘생계형 거리 가게’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노점상의 상품적치 등이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고 도로 경관을 해친다는 일반 민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인근 동네에서 쭉 살아왔다는 74세 주민은 “노점이 바뀌면서 경관도 훨씬 나아졌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노점이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여전히 길은 좁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실제로 ‘생계형 거리가게’ 중 문을 연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문을 연 한 노점상 말에 따르면, “언론에서는 구청에서 다 해준 것처럼 하는데 실제로는 도로만 내줬을 뿐, 박스(판매할 수 있는 점포)와 관리비 전부 자비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송파구청에 문의해보니 거리(장소)를 제공해주는 것 외에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또 해당 거리에 소유권 이전이 올해 이뤄지면 추가로 도로점용료를 거리가게에 부과할 것이라고 전했다.

석촌시장의 한 노점상은 “거리가게에 대해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았음에도 노점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노점상이 거리가게로 탈바꿈했지만, 인근 주민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심 두는 것을 꺼렸다.

노점상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개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노점상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개선하기 쉽지 않은 사회 문제다(사진: 취재기자 박대한).

백화점과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등 비교적 장사가 잘 되는 요지의 노점상도 사정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 여성 노점상은 “겨울 시즌 한철 장사인 옥수수, 꿀화빵, 오뎅 등을 팔아 300만~400만 원 정도 벌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며 “올해 여름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벌써 걱정"이라고 말했다. 노점 반대 민원에 대해, 그녀는 “구청에서 지정한 구역이지만, 민원은 계속 들어온다”며 “특히 여름에 햇볕을 가리기 위해 창을 넓히면 구청에서 단속이 나와 바로 철거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노점상은 거리에서 장사하기에 경기가 나빠지면 직접적으로 체감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담담하게 말했다. "약자는 언제나 힘들다. 비난과 비판을 받는 노점상이지만 그래도 버텨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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