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속 인기 인플루언서, 알고보니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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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속 인기 인플루언서, 알고보니 '가상 인물'
  • 취재기자 김수빈
  • 승인 2021.01.0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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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국내 첫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ROZY)’ 공개
네티즌들, "사람처럼 행동해 얼떨떨하고 신기하고 충격적" 반응
가상인물 이용한 딥페이크 등 각종 성범죄 우려... 법규 정비 시급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그녀는 인스타그램 개설 3개월 만에 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모았다(사진: ‘rozy.gram’ 인스타그램 캡처).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그녀는 인스타그램 개설 3개월 만에 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모았다(사진: ‘rozy.gram’ 인스타그램 캡처).

당연히 실제 사람인 줄 알았던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알고 보니 가상인물, 즉 CG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면? 콘텐츠 크리에이티브그룹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는 소통이 가능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를 최근 공개했다.

‘인플루언서’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형태의 SNS가 유행하면서 떠오른 단어다. 인플루언서는 SNS에서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게임, 뷰티, 먹방, 일상,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인플루언서 로지(@rozy.gram)는 최근 인스타그램 개설 3개월 만에 1만 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모아 큰 화제를 일으켰다. '그녀'는 매력적인 얼굴과 남다른 신체비율, 감각적인 패션 센스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너무 아름답다”, “만화 주인공처럼 생겼다”, “모든 사진이 화보 같다”고 칭찬했다. 로지는 이에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30일 로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었다. 그녀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가상 인플루언서’였던 것이다. 가상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란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인간 모습을 흉내 내고, 일반 인플루언서처럼 활동하는 캐릭터를 말한다. 그들은 가상 세계에 존재하지만, 실제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로지는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공개한 국내 최초의 가상 인플루언서다. 로지는 일반적인 인플루언서와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개인 일상을 공유하고, 댓글이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녀가 가상 인물이라는 소식에 네티즌들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진짜 그냥 사람 같았는데...  신기하면서도 얼떨떨하네"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로지가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지만, 이미 해외에는 유명한 가상 인물이 많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플루언서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293만 이상을 보유한 ‘릴 미켈라(@lilmiquela)’다. 또 세계 최초 디지털 패션모델로 손꼽히는 ‘슈두(@shudu.gram)’, 가상 뮤지션 ‘버뮤다(@bermudaisbae)’ 등도 인기다. 이들은 각종 패션 및 뷰티 브랜드 등과 협업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미국의 경제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업들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용 중 상당 부분이 가상 인플루언서에게 집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 간 대면이 부담스러워지면서 가상 인물이 과거보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가상 인물은 위험이 적고, 보상이 크게 돌아온다는 장점이 있다. 가상 인물은 언제 어디서든 활동할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활동이 어려워졌지만, 가상 인물은 기술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또 어떠한 장면도 연출할 수 있다. 교통비, 의상, 메이크업 등 부가적인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또한 가상 인물은 기업이 원하는 만큼 무궁무진하게 활용 가능하다. 가상 인물은 일반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처럼 브랜드 모델은 물론이고 화보 촬영, 광고, TV 출연, 음반 활동 등 모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은 아프거나 늙지도 않으며, 기업에서만 주의한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손해를 가져올 각종 논란에도 안전하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걸그룹 ‘에스파’. 현실세계의 인간 멤버와 가상세계의 인공지능 아바타 멤버가 함께 활동하는 AI 컨셉이다(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해 11월 데뷔한 걸그룹 ‘에스파.’ 현실세계의 인간 멤버와 가상세계의 인공지능 아바타 멤버가 함께 활동하는 AI 컨셉이다(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반면,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크다. 특히 아이돌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렇다. 네덜란드 사이버 보안 연구 회사 딥 트레이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유통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CG처럼 합성한 편집물)는 총 1만 4698건이다. 이 가운데 96%가 포르노로 소비되고 있으며, 한국 여성 연예인(특히 K팝 여자 가수)이 이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중에는 연예인을 소재로 한 ‘성인 딥페이크물’ 전용 텔레그램 비밀방도 다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여성 아이돌 가수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물이 올라와 있는 방에는 최대 2000명이 넘는 회원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딥페이크 음란물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못한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은 ‘사람의 얼굴, 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촬영물’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캐릭터의 경우, 딥페이크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되더라도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셈이다.

또한 컴퓨터가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저작권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 문화’에서 김명주 바른AI연구센터장은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들수록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역할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인공지능의 창작활동이 소프트웨어 개발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기에 인공지능 시대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재정의도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가상 인물을 접한 한 누리꾼은 “가상 인플루언서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그래픽”이라며 놀라워했다. 또한 “가상 인물이 포르노나 각종 범죄에서 악용되지 않도록 기업은 물론 당국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며 “해당 범죄에 대한 처벌이나 관련 법안도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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