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홍도의 절경,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그리고 '자산어보'의 정약전 사당과 유배문화공원을 둘러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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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홍도의 절경,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그리고 '자산어보'의 정약전 사당과 유배문화공원을 둘러 보다
  • 장원호
  • 승인 2020.12.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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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해안일주의 절경에 심취하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를 구경하고
자산어보로 유명한 정약전 선생의 유배지를 돌아 보며 조선 역사의 아쉬움을 느끼다

나는 바다와 작은 섬을 좋아한다. 내가 태어난 충청북도 음성은 한반도 남쪽 한 가운데 있고 남한에서 유일하게 해변이 없는 도다. 생애 처음으로 가본 바다는 고려대에 입학한 첫 여름에 대학의 연수원이 있는 대천해수욕장이었다. 수영을 좀 했던 나는 대천해수욕장에서 수 십리가 떨어져 있는 섬까지 헤엄쳐 가 보겠다고 하다가 반도 못 가서 되돌아 온 적이 있다. 그리고 30년 교직을 마치고 은퇴한 미국 미주리 주도 충청도처럼 바다가 없다.

세상은 돌고 돈다. 홍도와 흑산도는 조선 왕조 시대의 대표적인 유배지다. 조선은 벼슬을 하다가 밀려난 죄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지 않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귀양을 보냈다. 지금 육지에서 쾌속정으로 2시간 이상 걸리는 이 멀리 떨어진 섬을 조선시대에 작은 돛단배로는 하루 종일 걸렸을 것이다. 유배지였던 이 아름다운 섬들은 지금은 훌륭한 관광지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도는가 보다.

미국의 백인들이 서부를 개척하면서 반항하는 인디언들을 산속 깊은 데로 몰아넣었는데, 현대에 와서 그곳으로 길이 뚫리고 자동차가 생기면서, 지금은 훌륭한 휴양지가 되고 인디언들이 카지노를 열어 큰 돈을 벌고 있다. 미국에도 돌고 도는 세상 이치가 들어 맞고 있다.

흑산도와 홍도에 가 보겠다고 여러 번 꿈을 꾸었으나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가, 2018년 10월 18-19일, 1박2일 여행을 인터넷 여행사에 예약하고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동생 원흥이와 함께 18일 아침 8시 20분 서울역을 출발해서 KTX 열차로 목포역에 내리니 여행사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포역 근처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남해고속 2400톤급 쾌속선으로 흑산도를 거쳐서 홍도로 가는데 2시간 40분이 걸렸다. 거리가 약 100km 정도라고 한다. 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서 많은 승객이 뱃멀미로 고생했다. 배가 흑산도를 거쳐 홍도에 도착해서, 우리는 정해진 '엘도라도'라는 모텔에 자리를 잡고 홍도 선착장 근처를 돌아보았다.

홍도 유람선에서 동생과 함께 아름다운 홍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9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홍도 유람선에서 동생과 함께 아름다운 홍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홍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자동차가 다닐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삼륜차를 만들고 뒤에 짐칸을 붙힌 형태의 운반수단이 있었다. 이 삼륜차가 우리들 짐을 모텔로 싣고 갔다. 단단한 돌덩어리 산위에 모텔이 있어서 올라가는 데 힘이 들었다.

짐을 풀고 우리는 산 위로 올라가니 해변과 부두가 아름답게 펼쳐져 보였다. 우리는 해변 밑으로 내려갔으나 비수기인데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횟집에는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산 위로 올라와서 남해 횟집에 들어가 자연산 광어회 정식을 시키고 보해회사가 만든 소주를 마셨다.

홍도 산 위에서 내려다본 홍도 부두 전경(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홍도 산 위에서 내려다본 홍도 부두 전경(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홍도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전남 신안군 홍도면이다. 섬 전체가 홍갈색 규암질 바위로 되어 있어서 바다에서 보면 섬이 붉은 보석 같다고 홍도라고 한단다. 본래는 붉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의미로 '홍의도'라고 불렸다고 한다.

무척 고단하게 자고 있는데, 새벽 6시에 안내원이 깨워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아침 첫 관광 유람선을 7시에 탔다. 홍도와 흑산도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제일 늦게 진다고 하는데, 아침 7시의 맑고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2층으로 된 꽤 덩치 큰 유람섬이 바다로 출발했다.

배가 출발한 지 200m도 안가서 남문 앞의 아름다운 절경에 배를 세우고 안내원이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선원이 찍은 사진이 너무 멋있게 나와서, 나는 거금 1만 5000원을 주고 그 사진을 샀다. 두 시간 반을 도는 유람선에서 연속되는 절경의 경치를 기억하려고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홍도 해상일주는 남문을 떠나서, 실금리굴, 석화굴, 탑성, 만물상, 슬픈녀독립문, 부부탑, 거북바위, 그리고 공작새 바위 등을 안내방송과 함께 보여주었다. 방송 내용이 흥미로운 듯했으나 바람 소리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경치가 워낙 아름다워 유람선 여행 내내 즐거웠다. 어느 작은 선착장에 도착하니 작은 낚싯배가 유람선과 연결해서 우리가 보는 데서 회를 떠서 관광객들에게 팔았다. 아침인데도 일부 손님들이 소주와 회를 즐겼다.

홍도 유럼선이 보여주는 홍도의 절경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유람선을 타고 홍도의 절경들을 돌아보는 홍도 해안일주 여행은 일품이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홍도 유람선을 타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홍도의 절경(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섬 전체가 홍갈색 규암질 바위로 되어 있어서 바다에서 보면 섬이 붉은 보석 같다고 홍도라고 한단다. 본래는 붉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의미로 '홍의도'라고 불렸다고 한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다시 선착장으로 와서 오전 11시에 남해고속 배를 타고 멀리 보이는 흑산도로 갔다. 홍도에서 흑산도는 가까운 거리여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흑산도에 도착하니, 이 섬은 흙이 있어서 농사짓는 밭이 많이 보였다.

나는 지금도 이미자의 서글픈 노랫가락을 좋아한다. 그중에는 이미자가 아주 구성지게 부르는 <흑산도 아가씨>가 있다. 흑산도에 내리자 45인승 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다가 바로 우리를 태우고 '상라 고개'로 갔다. 꼬불꼬불 12번이나 돌며 올라가니, 산마루에 주차장이 있고,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흑산도에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흑산도 바닷가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흑산도에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흑산도 바닷가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상라 고개를 내려오니 <자산어보(玆山漁譜)>를 쓴 정약전의 사촌서당이 복원되어 있었다. '자산'이란 검다는 뜻을 가진 '흑산'이란 섬 이름을 싫어하는 이 섬사람들이 쓰는 표현이라고 하며, 과학자인 정약전도 흑산이라는 표현을 싫어했다고 한다. 18세기 중반에 천재적인 정약전은 서해남쪽 바다의 어류 생태를 조사연구하여 <자산어보>라는 책으로 뛰어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자산어보>를 찾아보니, 정약전은 이 과학적인 연구서를 한문으로 썼다. 지금 내가 보아도 어려운 이 과학서를 정작 어부들이 읽지 못하였을 터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 역사의 일면이었다. 정약전과 동생 다산 정약용을 귀양 보낸 정조는 조선왕국의 비참한 역사로 남아있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다른 왕들에 비하여 사고의 폭이 넓었던 정조도 사색당쟁의 정치싸움에 얽힌 이 훌륭한 실학자, 즉 과학자를 활용하지 못하고 유배시켰으니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흑산도에는 '자산어보'로 유명한 정약전의 유배지가 잘 보존되어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돼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흑산도에는 '자산어보'로 유명한 정약전의 유배지가 잘 보존되어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돼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은 1756년에 태어 난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정약전은 동생 정약용과 함께 19세기 중엽 조선왕조에서 서양문물을 아는 개혁 학자였다. 고리타분한 한문과 중국의 문물을 신봉한 왕족과 신하들에게 잘 보일 수 없는 개혁파였다. 이 개혁파가 좀 자랄 수 있었다면, 왜놈들의 찬탈을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1만 5000원이나 내고 탄 관광버스는 흑산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선착장 부두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아주 비싼 관광이었다. 택시 문짝에 흑산도 경치 그림을 부치고 다니는 관광택시가 몇 대 보였지만, 가격이 비싸서 택시로 관광하는 이는 없었다.

흑산도 부두에는 홍도와는 달리 제법 큰 상가, 당구장,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나는 수산물 판매장에 들어가서 흑산도 명물인 홍어포를 샀다. 홍어잡이 성수기는 12월에서 2월이어서 우리가 간 10월에는 산 홍어를 볼 수 없었다. 우리는 대신 홍어를 말려서 잘게 썬 것을 한 봉지 샀다.

버스 운전사이며 여행 안내인에게 우리가 산 말린 홍어에 대해 물으니, 운전사도 솔직히 이 말린 홍어가 어디서 잡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중국산이거나, 아니면 남미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대형 선박이 육지로 왕래하는 흑산도는 이제 토종 어류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어물시장을 가보니, 산 것은 아나고와 손바닥만 한 생선을 햇볕에 말리는 것만 보였다. 회로 파는 광어가 있으나 양식된 것이라고 한다. 흑산도 근처는 전복 양식장이 많은데, 질 좋은 전복은 육지로 판다고 한다.

우리는 오후 3시 반에 다시 고속정으로 목포항으로 떠났다. 목포 근처의 두 섬을 거치면서 아주 잔잔한 바다를 달려서 우리가 탄 배가 목포항에 도착하니, 안내인이 작은 버스로 다시 우리를 목포역에 내려주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예약된 KTX는 저녁 8시 편이어서 한 시간 이상 시간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목포역 주변을 돌아보았다. 역 청사도 작았고 상가들도 동대구 역에 비하면 아주 초라했다. 그만큼 전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많이 뒤져 있었다. 한국정치에 뚜렷한 표식을 남긴 전라도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용산역에 내려 택시로 방배동에 돌아 오니 자정이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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