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밥은 펜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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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밥은 펜보다 강하다?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0.12.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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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사회 다룬 방송 드라마 인기 몰이... 언론 이슈 반영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 드라마'의 역설
언론의 사실, 진실보도 추구가 신뢰 회복의 지름길

기자 사회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 몰이다. 지난 10월말부터 방송된 SBS 금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 이어, 지난 11일 첫 방송된 JTBC의 새 금토 드라마 ‘허쉬’가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에 앞서 tvN에서는 사회적 핫이슈인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를 다룬 ‘비밀의 숲2’를 방송했다.

이 시국에 왜 기자인가? 참 기자의 역할과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언론개혁? 너무 심각한가?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고 시작해보자. 

드라마에 그려진 기자상은 일단 명랑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전통적 기자상과 많이 다르다. 전통적이라고 해야 불과 10~20년 전일 텐데,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드라마가 주는 쏠쏠한 재미와 별개로, 행간에 흐르는 메시지들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드라마에 비친 기자

JTBC의 ‘허쉬’는 첫 장면부터 도발적이다. 이지수(임윤아 분)는 ‘매일한국’ 신문사의 인턴 시험에 응시해 최종 면접을 본다. 이지수는 "기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다.

JTBC 금토 드라마 '허쉬'(사진: JTBC 제공).
JTBC 금토 드라마 '허쉬'(사진: JTBC 제공).

“제 좌우명은 ‘펜은 총보다 강하지만 밥은 펜보다 강하다’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세상 모든 일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라는 것입니다. 기자도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니까. 기자는 거짓말을 하면 안되지 않느냐. 밥이 세상 무엇보다 우월하다는 팩트를 알게 된 이상 기자가 되겠다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 그게 제가 생각하는 기자의 정의입니다.”

당돌하고 솔직한 답변에 면접자들은 순간 움찔하지만, 그는 합격한다.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일들은 아버지의 말씀처럼 ‘먹고사니즘’ 힘겨움을 체험적으로 일깨운다. ‘밥은 펜보다 강하다.’ 이지수가 한 말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서 맴돈다. 펜보다 밥을 강조하는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밥보다 더 중요한 현실가치는 없지...  

#언론개혁의 어려움

총 20부작으로 제작된 SBS의 ‘날아라 개천용’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대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자, 변호사, 판사, 검사가 다 나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초기 반응이 뜨거웠다.

‘날아라 개천용’의 박상규 작가는 독립언론 ‘셜록’의 대표기자다. 과거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재심 3부작을 연재해 독자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방영 초반, 언론은 현직 기자의 작가 데뷔와 드라마에서 기자의 역할이 어떻게 그려질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날아라 개천용’은 우리 사회에 나쁜 언론 보도가 많은 것은 "좋은 언론, 좋은 기자가 적어서"라고 말한다.

SBS 금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사진: SBS제공).
SBS 금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사진: SBS제공).

좋은 언론은 어떤 것인가? 사실 보도와 정의 지키기, 권력 견제, 진실 추구.... 언론학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만으로는 현실적 답이 되지 못한다. 진실은 정의감, 정확성, 객관성으로 닿을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객관성은 기계적 균형인가? 작금 한국 언론을 휘감고 있는 정파성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권력 견제라고 할 때, 권력은 현 정권과 여권뿐인가? 검찰·법원 등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은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가?

질문이 가지를 치고 꼬리를 물게 되면 현실적으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언론이란 게, 현대의 매스미디어라는 게 이렇게 복잡다단하다. 언론개혁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게다가 언론이 기득권 위에 앉게 되면, 균형과 정의조차 기우뚱거리게 된다.

#드라마와 현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겐 트렌디한 하이컨셉이 먹힌다. 빙빙 돌리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간다. 그런데 드라마가 아무리 극적 장치를 잘 갖춰도 '현실 드라마'를 이길 것 같지는 않다. 보라, 목하 펼쳐지고 있는 정치판의 숨막히는 활극을! 현실 드라마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각본 없이(아니면 각본 짜놓고?) 펼치는 활극 앞에 방송 드라마는 설 자리를 잃는다.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빚어진 현실 드라마는 최근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 개정안 국회 통과와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징계로 이어지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조국사태’부터 추미애 법무장관의 사퇴까지, 현 정부와 검찰의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징계하고 대통령이 재가하자, 검찰총장은 불복해 소송을 건다. 임명제 공무원이 대통령을 들이받는 형국이다. 무소불위 검찰 권력이 ‘살아있는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모습이다.

이를 놓고 정가에선 친윤·반윤, 니편·내편하며 대놓고 싸운다. 한쪽은 검찰개혁을 말하고, 다른 쪽은 검찰장악이라 주장한다. 검찰개혁의 대의는 ‘추·윤(추미애 윤석열) 대결’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여권 일각에선 검찰의 ‘스텔스적 쿠데타’를 진압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야권에선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인과응보를 거론한다. 이보다 더한 리얼리티, 리얼 드라마가 또 있을까.

#진실보도가 살 길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들이 정파적이다, 편파적이다 하는 비판을 받는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검찰 권력이 세다지만, 펜의 권력은 더 센 것 같다. 펜의 권력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언론의 신뢰 위기 담론이 횡행하는데도 일부 중앙지들은 끄덕도 않는다. 최근 SNS상에서 벌어지는 ‘You Are Not 언론!’ 해시태그 운동은 경고 수위가 임계점을 넘었음을 말해준다.  

현실 드라마는 국민(시청자) 다수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국민은 솔직히 더 이상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 정부와 검찰, 언론 모두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판을 뒤집어버릴 지도 모른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라는 말을 무겁게,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드라마 ‘허쉬’에서 이지수 기자가 한 말, ‘밥은 펜보다 강하다’ ‘거짓말 하지 않는 기자’라는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돈다. 밥이든 펜이든 중요한 전제는 언론의 진실보도다. 진실을 좇는 힘은 편파보도, 왜곡보도, 거짓보도를 물리친다. 언론의 신뢰 위기를 극복하는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현실 드라마의 활극을 막는 길도, 나라의 격을 세우는 길도 진실보도에 있다. 방송 드라마가 추구해야 할 가치도 이런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목숨 걸고 지키려 한 것은 국가나 정부가 아니야. 오로지 진실, 진실보도야!” 언론인으로, 학자로 살다 돌아가신 이영희 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죽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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