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펜트하우스’ 보고 비혼주의자 됐다”...우리 사회 비혼주의 이유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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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펜트하우스’ 보고 비혼주의자 됐다”...우리 사회 비혼주의 이유 백태
  • 취재기자 정은희
  • 승인 2020.12.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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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자금·생활비 부담된다는 금전적 이유 꼽는 젊은이 비율은 78%
“나만의 꿈 이루고 싶다” “누구 엄마로 불리고 싶지 않다”는 자아 실현파도 등장
기성세대는 자녀 비혼에 기절초풍, 결사 반대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결혼을 필수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변화로 가족의 의미도 바뀌고, 가족 중심 가치관이 약화되면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비혼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시빅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모가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비혼 출산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부모와 자식 체계로 이뤄진 이른바 ‘정상가족’ 구성 인식의 편견을 깨고 결혼으로 개인의 삶을 희생한다고 생각해 출산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 모니터’가 2020년 전국 만 19세~45세 미혼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결혼’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사진: 트렌드모니터 자료 캡처).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 모니터’가 2020년 전국 만 19~45세 미혼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결혼’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사진: 트렌드모니터 자료 캡처).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0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젊은 층에서 결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비혼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인식은 201720.3%보다 줄어들어서 2020년에는 조사 대상 미혼남녀 중 18.1%만이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가 점점 더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모니터가 결혼을 주저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결혼자금이나 전세나 월세 마련 등 대부분 돈이 그 원인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트렌드모니터 자료 캡처).
트렌드모니터가 결혼을 주저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결혼자금이나 전세나 월세 마련 등 대부분 돈이 그 원인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트렌드모니터 자료 캡처).

같은 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조사대상자의 78.2%가 돈을 꼽았다. 이들은 전세나 월세, 결혼 자금 등 대부분 돈이 비혼주의의 원인이라고 응답했다. N포 세대라는 유행어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어 결혼 비용이나 결혼 후 자녀 양육 비용이 부담되어 비혼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대학생 황 모(21, 대구시 북구) 씨는 “취업난이 상당한 것도 맞지만, 결혼하게 되면 자녀 양육과 동시에 양가 집안을 챙겨야 해서 경제적 여유가 없어질 것 같다. 이런 예속된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 모(26, 서울시 노원구) 씨는 “가정을 꾸리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단 주거비가 비현실적이고, 자녀의 사교육이 너무 일찍부터 많이 이뤄진다. 이러한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것에 비해 노동 안정성은 갈수록 불안해 진다”고 말했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 비혼주의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생 최 모(24, 부산시 동구) 씨는 “나는 뮤지컬 배우라는 꿈이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아마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전까진 내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 결혼하게 된다면, 이런 계획들이 무의미해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윤 모(24, 부산시 수영구) 씨는 “결혼하고 출산과 동시에 당연시되는 가사노동과 육아를 하며 자기관리를 포기하게 되는 게 싫다. 내 이름이 아닌 ‘00 엄마’로 불리며 나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무섭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여성 중 다수는 가부장제 등 양성 불평등 문화 등을 이유로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이 모(23, 부산시 남구) 씨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고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변화된 사회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변할지 의문이 들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풍요로운 미디어 콘텐츠, SNS, TV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비혼자가 많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생 임 모(22, 용인시 수지구) 씨는 “화제가 된 인기 드라마 <펜트하우스>와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심각성이 와닿았다. 가상의 구성이지만 현실 속 사회 문제를 반영한 것이므로 결혼은 무엇을 위함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한 언론매체에 실린 이혼률 증가 사례를 접한 대학생 윤 모(21, 대구시 수성구) 씨는 “난 비혼을 택했다. 결혼하면 삶의 질이 추락할 것 같다. 시댁과 처가와의 갈등과 배우자의 외도 사례를 보니 결혼을 마주하기 싫다”고 말했다.

이렇게 비혼주의를 추구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기성세대들과의 인식 차이 간극은 좁혀지기 어렵다. 매년 다가오는 명절 가족모임에서 “언제쯤 결혼하니?”와 같은 잔소리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명절 잔소리 대처법을 묻거나 공유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직장인 한 모(54, 대구시 달서구) 씨는 “요즘 젊은이들의 비혼 추세가 높아진다는 기사를 보면 기가 찬다. 우리 때도 그랬듯이 모든 세대는 전통을 따라 대를 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주부 김 모(49,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내 자식이 비혼주의자라면 만류할 것 같다. 자기 가정을 꾸리고 의지할 수 있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과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엔 편할 수 있지만 늙어서는 외롭고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선한(20, 부산시 금정구) 씨는 “비혼이 젊은 층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는 순간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비혼을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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