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고대 교수산악회 추억의 등산코스 덕유산과 무주구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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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고대 교수산악회 추억의 등산코스 덕유산과 무주구천동
  • 장원호
  • 승인 2020.12.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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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과 1980년 고대교수산악회 활동으로 덕유산과 무주구천동 등산 즐겨
같이 등산했던 김성복 교수 초청으로 남원과 순창 방문 길에 올라

2019년 10월 5일, 우리 내외는 이미 과거에 몇 번이고 다녀 온 <춘향전>의 발상지 남원과 순창 고추장 마을을 다녀왔다. 남원에는 친형제 같은 김성복 교수가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1980년 11월 고려대학교 교환교수 시절 김성복 교수와 필자가 남원 광한루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1980년 11월 고려대학교 교환교수 시절 김성복 교수와 필자가 남원 광한루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남원은 '사랑의 지침서' 역할을 해오고 있는 <춘향전>의 고장이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광한루원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 낸 공간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다.

남원에는 하늘나라 월궁을 본따 '광한루'라는 이름을 지닌 몃진 정자가 있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가 놓여 있으며,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이 연못 가운데 조성되어 있다. 광한루의 전체적인 구성은 천체 우주를 상징하는 전설을 반영한 것이다.

1980년 11월 남원 방문 당시 광한루원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1980년 11월 남원 방문 당시 광한루원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김성복 교수는 나의 고려대학교 후배이며, 고대 원예학과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바로 교수가 됐고, 고대의 중요 요직을 모두 맡아서 모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명예교수다. 그는 학과장, 학장, 학생처장, 고대신문 주간교수, 그리고 고대 체육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필자가 김 교수를 처음 만난 때는 1979년 고대 초빙교수로 한 학기를 고대에서 같이 보내던 시절이었다. 당시 고대 산악회 회원인 김 교수가 무주구천동 덕유산 등반 모임에 필자를 초청하여 동행했으며, 그 이후 나는 방문하는 산야마다 그리운 조국에 대한 가슴 깊은 인상을 갖게 됐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있다.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해발 1300m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을 향해 장장 30여㎞에 뻗쳐있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북쪽의 무주로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에 유입된다. 설천까지의 28㎞ 계곡이 바로 '무주구천동'이다. 구천동 계곡은 폭포, 담, 소, 기암절벽, 여울 등이 곳곳에 숨어 '구천동 33경'을 이룬다.

1979년 11월, 고대 교수산악회 회원들과 덕유산 등산을 와서 백련사를 방문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1979년 11월, 고대 교수산악회 회원들과 덕유산 등산을 와서 백련사를 방문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김 교수 설명에 의하면, 덕유산은 청량한 계곡과 장쾌한 능선,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를 갖고 있어 고대 산악회가 자주 가는 곳이라고 한다

덕유산은 무주구천동을 끼고 있어 여름철에 각광받는 곳이지만 가을단풍으로도 유명하다.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운 단풍경승을 자아내는데, 덕유산은 산속으로 안길수록 더욱 깊고 그윽한 맛을 풍긴다. 대표적인 코스는 구천동 33경을 보면서 북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코스인데, 우리는 이 코스가 좋아서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여러 번 가 보았다.

1979년 11월 고대 교수산악회와 함께 덕유산을 방문했을 때 무주구천동 계곡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1979년 11월 고대 교수산악회와 함께 덕유산을 방문했을 때 무주구천동 계곡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이런 인연이 있어서 나는 1980년 김 교수가 미국에서도 농업 종자 개량으로 유명한 미주리 대학교에 연수 오도록 주선했으며, 김 교수는 1년간 미주리 대학교 연구교수로서 원예육종 분야를 연구했다. 이런 오랜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어 지금도 친형제처럼 지낸다. 

내가 미국에서 은퇴하고 아주대학교에서 3년간 석좌 교수로 있으면서 남원에는 김 교수를 만나러 여러 번 내려갔다. 이번 방문 때,  김 교수는 우리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순창의 유명한 한정식집 '새집'에서 점심을 하고, 고추장으로 유명한 이 지역을 돌아본 뒤, 순창고추장을 사가지고 미국으로 가지고 가라는 계획을 세우고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우리는 바로 당일치기로 버스표를 예약했으니 점심 먹으러 전라도 순창까지 가는 셈이 됐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김 교수를 만난다는 기대를 안고 순창으로 향했다.

김 교수는 남원을 가려면 KTX보다는 고속버스로 내려오는 게 더 편리하다고 했다. 우리는 숙소인 방배동에서 가까운 반포 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경부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한참을 달리다 대전 직전에서 호남 쪽으로 꺾어 내려가니, 바로 공주 근처의 정안 알밤 휴게소가 나타났다.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든 직후 공주 근방에 오면 정안 알밤 휴게소가 나타난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든 직후 공주 근방에 오면 정안 알밤 휴게소가 나타난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공주는 한이 서린 백제의 본거지인데, 언젠가는 이 곳을 다시 와서 부여의 낙화암과 주변을 보고 싶어서 이 곳 관광 안내서를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읽어 보면서 그 옛날 백제의 흥망을 생각했다.

백제는 외국과의 적극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나라였다. 활발한 외교와 국제교류로 인해 우수한 문화를 꽃 피웠다. 근초고왕 시절 백제는 중국 동진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고, 신라에도 사신을 여러 차례 보냈다고 하며, 일본에는 학자와 기술자 등을 파견하여 학문과 기술을 전해주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듣기 싫어하는 얘기지만, 고고학자들의 발견으로 인해서 일본 천왕의 선조가 백제인이라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왕인 의자왕은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신라에 의해 무너지자, 신라와 직접 군사대결에 나섰고, 659년 4월 신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군사력이 부족했던 백제는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에 의하여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을 자초했다. 정안 휴게소는 1500년 전 백제 멸망의 한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본격적인 남원과 순창 방문기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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