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2류대 출신으로 15곳 대기업 동시 합격...어느 ‘취업왕’의 달콤살벌 취업 이야기
상태바
지방 2류대 출신으로 15곳 대기업 동시 합격...어느 ‘취업왕’의 달콤살벌 취업 이야기
  • 취재기자 성민주
  • 승인 2020.12.05 0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시절 유통업 영업직 목표로 백화점·마트·시장 등 판매직 알바만 20여 개
자기소개서에 학점 안 적고 알바 경험만 기술...“학점과 영어성적으로 나를 뽑지 말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한국야쿠르트 취업 후 어려운 영업소 해결사 역할...아직도 매년 버킷리스트 적고 실천하는 노력파
황인 씨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꿈을 얘기하면서 자신감 있게 활짝 웃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성민주).
황인 씨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꿈을 얘기하면서 자신감 있게 활짝 웃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성민주).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기를 쓰고 SKY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대기업 취업이나 의사, 변호사 등 상류층 진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 변호사는 국가고시를 치르는 방식이므로 전국 어느 대학에 다니든 공부로써 국가고시의 벽을 넘을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 취업은 서류전형서부터 SKY대학이 아니면 고배를 마시기 십상이다. 그런데 지방 이류대 출신이 대기업 15곳에 차례로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주인공은 현재 한국야쿠르트에서 대리로 근무 중인 황인(32) 씨다.

황인 씨는 대학 시절 선배와 후배들과 함께 네팔 히말라야 부근 ‘페케이봉’ 정상에 올라가서 각자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서 높이 들었다. 황인 씨가 적은 자신의 꿈은 “영업왕”이었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는 대학 시절 선배와 후배들과 함께 네팔 히말라야 부근 ‘페케이봉’ 정상에 올라가서 각자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서 높이 들었다. 황인 씨가 적은 자신의 꿈은 “영업왕”이었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는 대학 입학 때부터 자신은 기필코 일류기업, 대기업 아니면 취직하지 않겠다는 오기를 품었다. 그리고 그는 무려 15곳의 대기업 영업직에 합격했다. 통신업계의 KT, LG U+, SKT는 물론, 농식품류 업계의 한국야쿠르트, 대상그룹, 오뚜기식품에도 합격했다. 그 외에도 AK백화점, 편의점 업계의 GS, 동원F&B 등에 연이어 합격했다.

황인 씨는 그 중에서 유제품업계의 1등 기업인 한국야쿠르트를 골랐다. 황 씨는 한국야쿠르트가 항상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우량 기업이어서 자신의 직장으로 최종 선택했다.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근무할 수 있고 영업직 사람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찌 보면 15개 대기업 중 한국 야쿠르트가 황 씨에게 낙점을 받은 셈이었다. 황 씨는 “나는 그 업계의 1등 기업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나는 특정 업계의 1등 기업 아니면, 1등으로 올라 갈 수 있는 2등 기업까지는 갈 수 있다고 목표로 삼았다. 3등 기업은 재학 시절부터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황 씨는 2015년 7월 한국야쿠르트에 입사해 시장개척팀 대리로 근무 중이다. 그의 역할은 신규시장 및 판로 개척이며, 흔히 ‘야쿠트르트 아줌마’라고 불리는 프레시 매니저들을 교육시켜 매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황 씨는 지금까지 부산 신평점, 부산 초량점, 울산 남목점, 울산 삼산점에서 점장을 맡았고, 최근에는 시장개척팀이라는 회사 내 TF로 옮겨와 세종신도시, 울산 우정혁신도시, 목포 남악신도시, 경북 김천혁신도시를 각 4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 동안 돌아다니며 시장을 개척하고 매출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는 “나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장에 소방차처럼 달려가 불을 꺼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인 씨는 대기업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지방 이류대 출신이다. 그는 2008년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 황 씨는 “그냥 대학교 1학년은 빈둥빈둥 아웃사이더처럼 수업만 듣고 보냈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황인 씨가 아르바이트했던 롯데마트 사원증이다. 오른쪽 사진은 황인 씨가 롯데마트에서 안내를 도와줬던 고객이 직접 회사 VOC(Voice of Customer, 콜센터 고객불만사항)에 올린 후기 글이다(사진: 황인 씨 제공).
왼쪽 사진은 황인 씨가 아르바이트했던 롯데마트 사원증이다. 오른쪽 사진은 황인 씨가 롯데마트에서 안내를 도와줬던 고객이 직접 회사 VOC(Voice of Customer, 콜센터 고객불만사항)에 올린 후기 글이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 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벌고 사회 경험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런 아르바이트가 결국 그의 인생 전환점이 됐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구를 따라 롯데마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정작 친구는 금방 몇 달 만에 그만 두었지만, 황 씨는 주말만 하던 아르바이트를 평일 근무도 할 만큼 흥미를 느꼈다. 대학교 1학년 때 시작한 롯데 마트 알바 일을 군복무 후 다시 2011년 대학교 2학년 때도 계속했으며, 마트에서 단 한 명만 주는 ‘이달의 최우수 친절사원 상’도 받았다. 그 상은 영업점포에서 근무하는 알바 포함 모든 직원이 받을 수 있는 상이어서, 경쟁률도 높았고, 그만큼 수상자는 영광으로 여겼다. 그는 알바 하면서 그 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받게 되면서 무언가 손님들에게 물건을 파는 유통업계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됐고 남다른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롯데마트 아르바이트는 재미 없던 대학생활로부터 하나의 피난처였다. 또한 내가 경영학과로 전과를 생각하게 해준 전환점이었다”고 덧붙였다.

황인 씨가 대학시절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네팔 해외봉사단에서 활동하면서 팀원들과 현지 아이들이랑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 안경 쓴 한국 사람이 황인 씨다.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현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가 대학시절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네팔 해외봉사단에서 활동하면서 팀원들과 현지 아이들이랑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 안경 쓴 한국 사람이 황인 씨다. 예쁜 미소를 짓고 있는 현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는 대학 시절 SK행복도시락봉사단에도 참여했다. 사진 속에서 황인 씨는 ‘도’라는 글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는 대학 시절 SK행복도시락봉사단에도 참여했다. 사진 속에서 황인 씨는 ‘도’라는 글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 황인 씨 제공).
대학시절 대외활동의 하나로 참여한 롯데백화점 대학 홍보단 활동 중의 하나로 찍은 포스터 사진. 포스터 아래 한 가운데 안경 쓴 이가 황인 씨다(사진: 황인 씨 제공).
대학시절 대외활동의 하나로 참여한 롯데백화점 대학 홍보단 활동 중의 하나로 찍은 포스터 사진. 포스터 아래 한 가운데 안경 쓴 이가 황인 씨다(사진: 황인 씨 제공).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부산 지역 학원 강사, 마트 안전요원, 각종 행사와 대회 진행 보조 등 대학생활하면서 모두 아르바이트만 21개가 넘는 곳을 뛰어다녔다. 한 백화점에서 명품부터 작은 소매품까지 20개의 품목을 돌아가며 골고루 단기 아르바이트 경험도 했다. 비싼 물건과 싼 물건을 판매할 때 손님을 대하고 물건을 파는 다양한 방법을 상세히 몸으로 익혔다. 그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빨리 찾는 것이 졸업 후 진로 설정에 정말 유리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대학 4년 동안 쌓을 수 있는 경험들을 최대한 많이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황 씨는 시장에서 여성 속옷 판매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는 부산진 시장 근처 노점상 트럭에서 속옷과 양말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당시에는 시장의 노점상 트럭 대부분이 스피커를 틀어놓고 고객이 트럭 앞으로 다가오면 그제야 말을 던지는 방법으로 물건을 팔았다. 그러나 황 씨는 고객을 모으기 위해 녹음된 스피커가 아니라 육성으로 소리치고 아줌마들을 일일이 붙잡아가면서 판매했다. 그는 “스피커만 틀어놓은 상인 옆에서 나는 직접 목소리로 호객하면서 아줌마들을 붙잡았다. 열정 넘치는 어린 스무 살 학생이 파는 걸 본 아주머니들이 꽤 좋아해 주셔서 매출을 많이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취업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했던 경험들이고 따라서 그가 하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힘들수록 더 집요하게 영업 일에 파고들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황 씨는 아르바이트할 때 많은 학생이 시간당 금액과 시간 떼우기만을 생각하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알바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왜 똑같은 월급을 주는데 너는 열심히 하냐’고 사람들이 종종 묻더라”며 “나는 아르바이트를 돈벌이가 아닌, 내가 더 얻어 가는 성장의 수단이고 취업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 이런 황인 씨의 알바와 대외활동이 어떻게 대기업 합격으로 이러지는지를 설명할 차례다. 그는 입사 서류를 넣을 때 회사 인사 담당자가 읽을 만한 값어치가 있는 자기소개서, 이력서가 되기 위해 남들 쓰는 방식대로는 절대 쓰지 않았다. 자기가 활동한 ‘화려한’ 알바와 대외활동 경험을 배운 지식별로 상세히 적었다. 어느 것 하나, 어느 한 줄 그의 땀이 배어있지 않은 게 없었다. 그는 학점, 영어점수, 자격증을 쓰지 않았다. 자격증과 학점만을 보고 합격을 결정하는 회사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말고 자신의 살아 숨쉬는 경험만을 보고 자신을 선발하고 싶은 회사만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의도였다.

풍부하고, 알차며, 목적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황인 씨는 입사 면접장에서도 남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학벌을 떠나서 면접관으로 하여금 자신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합격 비법이라고 소개했다. 황 씨는 “처음에 면접 들어가기 전 밖에서 친구들끼리 출신 학교가 어디인지 서로 물었다. 그래서 나는 ‘경대’라고 답했지만, 다들 ‘경성대’가 아니고 ‘경북대’라고 알아들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남다른 내 풍부한 경험으로 판이 뒤집혔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그가 대학 재학 시절 해온 모든 활동이 영업직 업무라는 한 점에 연결되어 맞춰졌기 때문에 기업 면접관들이 그를 선택한 큰 이유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영업직 업무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영업직에 관계 있는 알바와 대외활동에 도전했다. 그는 졸업학점 3.71에 공인어학점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했던 모든 도전과 노력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면접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것은 추측도 아니고 팩트라는 게 황 씨의 생각이다. 황 씨는 “나는 졸업학점이 높지도 않았고 토익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영업직 경험이 풍부했고 내 영업직 경험을 뛰어넘을 사람은 없다는 마인드로 면접을 봤다. 그리고 1등 회사라면 언제든지 나를 뽑아줄 거라는 믿음이 강했다. 과연 내 신념은 맞았다. 15개 대기업들은 나를 합격시켰다”고 말했다.

직장생활하면서도 황인 씨의 활동은 단지 업무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대학 후배인 신부의 결혼식 사회를 맡아 수고해주었다(사진: 황인 씨 제공).
직장생활하면서도 황인 씨의 활동은 단지 업무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대학 후배인 신부의 결혼식 사회를 맡아 수고해주었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가 직접 강연과 결혼식 사회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다. 결혼식 사회의 경우 지인이 아니어도 인스타 계정을 통해 사회를 요청하면 기꺼이 달려간다(사진: 황인 씨 인스타그램 캡처).
황인 씨가 직접 강연과 결혼식 사회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다. 결혼식 사회의 경우 지인이 아니어도 인스타 계정을 통해 사회를 요청하면 기꺼이 달려간다(사진: 황인 씨 인스타그램 캡처).

끊임없이 도전하는 황인 씨는 직장 생활 중에도 강연하러 다니거나 결혼식 사회를 보러 다니고 있다. 그는 취미로 직접 인스타그램에 ‘결혼식 사회 축가는 황인 엔터테인먼트’와 ‘강연은 황인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게시판을 만들었다. 그는 이 게시판에 꾸준히 그가 했던 강연과 결혼식 사회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결혼식 사회의 경우에는 지인이 아니어도 인스타 계정을 통해 황인 씨에게 연락하면, 누구든지 황인 씨에게 사회를 맡길 수 있다. 황 씨는 “가급적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강연이나 결혼식 사회가 더 좋다”며 “결혼식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자리에 내가 그 행사의 중심에 서서 그 순간을 모두 즐기게 해주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인 씨는 매년 버킷리스트를 쓰고 실천한다. 사진 속의 버킷리스트는 그가 2017년에 썼던 것이다. 이루었던 목록에는 밑줄이 그어진다. 이루지 못한 항목은 내년에 이어져서 다시 리스트에 올라간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인 씨는 매년 버킷리스트를 쓰고 실천한다. 사진 속의 버킷리스트는 그가 2017년에 썼던 것이다. 이루었던 목록에는 밑줄이 그어진다. 이루지 못한 항목은 내년에 이어져서 다시 리스트에 올라간다(사진: 황인 씨 제공).

황 씨는 매년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버킷리스트 작성’이다. 황 씨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매해 마지막 날 쓰는 매년 버킷리스트와 10년 주기별로 쓰는 버킷리스트 이렇게 두 개로 나누어 작성하고 있다. 그는 30대 때 시간당 10만 원 강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재 시간당 50만 원 강사가 된 것을 보고 목표가 있으니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에는 대학교 3학년 때 한 학기 목표를 적었는데, 실제로 이루고 나니 나를 뛰어넘어 선 것만 같았다. 버킷리스트를 쓰고 이루면 누군가 상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을 위한 아낌없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황 씨는 대학교 생활을 취업의 장으로 만들지 말 것을 강조했다. 대학생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나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무엇을 하든 박수받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남들에게 하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잘해주라고 덧붙였다. 황 씨는 “후배들에게 항상 물어본다. 넌 널 위해 무엇을 해주니?”라며 “후배들이 자기 자신에게 대학생활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위해 대학 생활을 보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작년 10월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황 씨에게는 아직도 꿈이 고프다. 그는 그의 꿈은 50대 때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성공의 정의는 50대 때 시간당 100만 원짜리 강사, 100억 모으기 등을 이루는 것이다. 황 씨는 “내 꿈은 50대가 되었을 때 누가 봐도 여유 있는 사람, 충분히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성장해서 꿈에 서서히 다가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