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살으리랏다!" 직장 다니며 농장일하는 도시농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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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살으리랏다!" 직장 다니며 농장일하는 도시농부의 삶
  • CIVIC뉴스취재기자 김신희
  • 승인 2020.11.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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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진 씨, 직장생활 스트레스 씻기 위해 도시농부의 길 선택
5년 전 낙동강변 50평으로 시작... "큰 농사 큰 농부 꿈 키워"

도시농부 정방진

흙으로부터 치유 받는 사람 정방진(62) 씨는 부산진구 개금동에 살며 유통관리사로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한다는 자아와, 본인의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자아가 충돌했다. 결국, 두 자아의 충돌을 조화시기기 위해 평일에는 유통관리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땀 흘리는 농부가 되기를 결심했다. 결론이 나자, 그는 즉시 낙동강 앞 대저동에 50평짜리 땅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시농부’ 정방진이 탄생한 것이다. 남의 땅을 빌려 주말에 농부 흉내 내는 취미생활 주말농장, 주말 농부가 아니라, 평일에는 유통관리사의 일을, 주말에는 농부의 일을 하는 투잡 개념의 도시농부인 것이다.

도시농부, 그 시작은 소박했다

시골 농지 50평은 좁은 땅이지만, 도시농부에게 농지 50평이란 엄청난 크기다. 5년 전, 정방진 씨의 가족인 아내와 딸은 농사를 짓겠다는 정 씨의 의견에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은 무리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도시에서 오래 직장 생활을 한 사람에게 50평은 너무 큰 땅”이라며 주말농장에서 작은 땅을 빌릴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정 씨는 취미가 아니라 정말 농부가 돼서 제대로 농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아예 땅을 사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그로부터 5년 후 지금의 도시농부인 정방진 씨가 탄생했다.

주말에는 농부로 변신해서 농장을 일구는 도시농부 정방진 씨가 작물에 물을 주며 기쁘게 일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주말에는 농부로 변신해서 농장을 일구는 도시농부 정방진 씨가 작물에 물을 주며 기쁘게 일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그는 왜 도시농부가 됐나?

정 씨가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특별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건 아니었다. 7년 전, 직장을 다니며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재미없는 삶을 사는 것이 정 씨에게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줬고, 이로 인해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됐다. 그는 집에서 작게 키우던 화분을 통해 그나마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면서 “(당시에는) 화분 없이는 못 사는 내 삶이 그나마 다행이면서도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정 씨는 집안의 화분에서 풍기는 흙냄새가 좋았고 이 냄새를 더 많이 맡고 싶어 했다. 정 씨는 작은 화분으로 만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농부의 길로 직접 뛰어들어 흙을 만져야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결심을 하게 됐다. 아예 전업 농부가 되려는 생각까지 했지만, 가족의 만류도 있었고, 가족과의 타협을 통해 주말만의 도시농부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는 “비록 50평을 소유하고 가꾸는 초보 도시농부지만, 농사일은 나에게 직장인으로서 삶의 고해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정방진 씨가 무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주위의 잡초들을 정성스럽게 뽑고 있다. 제법 농부 티가 나는 듯이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정방진 씨가 무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주위의 잡초들을 정성스럽게 뽑고 있다. 제법 농부 티가 난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어린 시절 이야기

정방진 씨가 농사에 마음이 끌리게 된 이유는 단지 삶의 답답함 만은 아니었다. 농부가 되고 싶은 생각은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관계가 있다. 정 씨는 경남 합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초등학교를 입학한 8세 때부터 어머니가 경작하는 토마토와 참외밭에 졸졸 어머니를 따라나서곤 했다. “어머니는 그 고사리손으로 무얼 돕겠냐고 걱정하시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옆에서 농사일을 거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정방진 씨는 말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정 씨의 농사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농사를 짓는 것이 행복했던 건지, 어머니와 함께하던 시간이 행복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농사를 짓던 그 순간이 성인이 되고나서도 좋은 추억으로 자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정 씨는 스무 살이 되자 먹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이후로 흙을 만지는 농사일은 그와 멀어졌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며 일에 치이다 보니 행복했던 어머니와의 농사일이 주마등처럼 아른거렸다”고 말했다.

처음 하는 농사일의 어설픔

과거의 경험치를 살려 시작하게 된 농사일은 시작한 지 처음 한 달이 가장 힘들었다. 전문적인 농인들의 기준에서 50평은 좁은 땅이지만, 정 씨에게는 그 땅이 그렇게 광활해 보일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 땅을 파고 가는 일과 밭에다 물을 대주는 일이 너무 힘들어 내가 미쳤었다며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옆 밭 주인이 도와주겠다고 같이 품앗이를 하면서 농사일을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관개시설을 만지는 정방진 씨의 모습. 처음보다는 많이 농사일이 진전되어 세련된 전문 농부처럼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관개시설을 만지는 정방진 씨의 모습. 처음보다는 많이 농사일이 진전되어 세련된 전문 농부처럼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하지만 품앗이가 해결해줄 수 없는 또 다른 어려움이 정방진 씨를 괴롭게 했다. 그 어려움은 농사일에 가장 필요한 시간 문제였다. 정 씨는 “원래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큰다는 말도 있듯이, 자라나는 농작물들을 매일 같이 봐주고 꾸준히 관리해줘야 하는데, 나는 평일에 직장에 가야 하는 몸이니 주말에만 애들(농작물들)을 보는 것이 미안하기 짝이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5년의 농부 생활, 그리고 중간 결산

정 씨는 5년 전 주말농장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기 땅을 사놓길 잘했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그는 틈만 나면 자기 땅에 가서 농사 짓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는 주말에만 농장에 가야 하는 것이 아쉬워 농사일하러 간 날에는 온전히 농작물에만 시간을 쏟고 있다. “농사일을 하러 가면 물주고, 영양 관리해 주고, 잡초도 뽑고 할 일이 끝이 없다. 완전히 농사일에 집중하다 보면 7시간은 훌쩍 지나간다”며 ‘농사삼매경’ 칭찬에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다.

그의 엄청난 애정을 받고 있는 농작물들은 한눈에 봐도 잘 자라고 있다. 정 씨의 밭에는 많은 작물이 자라고 있으며, 그 종류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정 씨는 “이 좁은 밭에 뭐가 그리 많이 자라고 있나 해도 계절별로 심으면 다 심을 수 있다”며 “봄에는 감자랑 상추, 당근을 수확하고, 여름에는 무랑 배추, 고구마를 심어서 가을과 겨울에 수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정방진 씨가 곧 수확할 배추가 제법 알이 찬 포기를 자랑하며 잘 자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정방진 씨가 곧 수확할 배추가 제법 알이 찬 포기를 자랑하며 잘 자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신희).

정 씨가 기르는 작물 중 가장 애정이 깊은 것은 마늘과 양파다. 그는 평소 나누는 것을 좋아해 본인이 키워서 수확한 것들은 집에 가져가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를 전해줄 때 사람들이 고맙다며 지어주는 그 미소가 좋아서 더 보람차고 뿌듯하다. 정 씨는 “수확물이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정말 행복하고 보람찬 일이지만, 내가 직접 키운 작물들을 맛보고 좋은 평을 해주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도시농부 정 씨는 행복도 하지만 속으로 찔리는 점이 하나 있다. 주말이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있어야 하는데, 그는 계속 손을 봐줘야 하는 농작물 때문에 가족에게는 시간을 쏟지 못하는 것. 정 씨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식구들이 농사일을 도와주러 농장에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아빠 밭에 간다”고 말하면 농사일에 익숙하지 않은 가족들이 학을 뗀다고 한다. 정 씨는 “우리 애들(농작물들)한테는 백 점짜리 농부, 딸한테는 빵 점짜리 아빠”라며 가족에게 미안해했다.

도시농부의 미래 계획

정방진 씨처럼 주말농장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도시농업 참여자 수가 6년 새 15만 3000명에서 159만 9000명으로 늘어났다. 정 씨는 취미로라도 도시 근교 주말농장에 뛰어들려는 사람에게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도시농부의 출발은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힘들더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끈기 있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최근 6년 간 도시농업 참여자수 통계자료(도표: 취재기자 김신희 제작)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최근 6년 간 도시농업 참여자수 통계자료(도표: 취재기자 김신희 제작).

끈기로 바틴 지난 5년은 정 씨의 밭에 풍년을 가져다주었고, 이를 보며 그는 한 번 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됐다. 정 씨의 미래 계획은 회사 은퇴 후 본격적인 농사꾼으로의 직업 전환이었다. 그는 “지금은 비록 좁은 땅에서 적은 시간을 들여 농사일을 하고 있지만, 유통관리사의 일에서 은퇴하고 나면 더 큰 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기르는 것이 내 농사일의 신조이니, 이를 잘 살려서 나중에는 농산물을 내다 파는 장사도 하고 싶다”며 도시농부의 ‘거창한’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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