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한국의 명산 덕유산과 무주 구천동 33경 찾아 인생을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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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한국의 명산 덕유산과 무주 구천동 33경 찾아 인생을 반추하다
  • 장원호
  • 승인 2020.11.21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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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산 4위에 오른 명산
덕유산 속 무주 구천동 33경은 비경과 절경의 연속
백련사, 세심대, 구천폭포 등 경치 즐기며 인생을 반추하다

나는 한국의 산이 너무 좋다. 외국의 유명한 산처럼 크지도 않으면서 아기자기하게 아름답다. 한국의 예쁜 산들은 모두 아름다운 계곡을 가지고 있다. 산도 좋고 계곡이 뛰어난 곳으로 나는 무주구천동 덕유산을 제일 좋아한다.

한국 산악회가 조사한 국내 인기 명산으로 지리산이 최상이고, 두번째가 설악산, 세번째가 북악산이며, 네번째가 덕유산이었다. 내 고향 충청도 속리산이나 제주도 한라산은 한참 뒤에 있었다.

이처럼 덕유산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무주구천동 33경'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동해안 관동 8경도 유명하지만, 덕유산 밑에 33경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덕유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산 4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있는 산이다. 그 이유는 무주 구천동 33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덕유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산 4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있는 산이다. 그 이유는 무주 구천동 33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과거에 경상도 대구에서 전라도 무주까지 가는 길 멀고 험했으나, 경상도와 전라도를 뚫어놓은 전두환 대통령의 88고속도로로 이제는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한국전쟁 말기에 지리산 골짜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악명 높았던 경남 거창 인터체인지에서 88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시골 길로 얼마를 달리니 바로 무주 구천동이 나타났다.

지금이 10월 하순이니 화려한 단풍철은 좀 지났으나, 아직도 화사한 단풍의 자연풍경을 보면서 네 시간 정도 등산을 즐긴다는 것은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나는 무주 구천동을 전에 몇 번이나 갔다.

덕유산 단풍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10월 하순, 단풍철이 최고조에 달한 듯 은행나무가 노란 빛깔을 뽐내고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덕유산 단풍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10월 하순, 단풍철이 최고조에 달한 듯 은행나무가 노란 빛깔을 뽐내고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내가 처음 이곳을 와서 덕유산 정상을 오른 것은 1979년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객원 교수로서 고려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고대 산악회에서 덕유산으로 등산을 간다는 사실을 농과대학 김성복 교수가 알려 주어 동참했던 것이다.

미국 미주리 대학 부교수로 승진하면서, 나는 한 학기 안식년을 받아서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왔다. 당시 미국에는 아이들 셋이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가족을 동반해서 한국에 올 수가 없었다. 혼자 한국에 와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내 이후 생애를 조국에서 활동할 것인가를 신중히 생각할 때,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 왔고, 이에 대해  아주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 나는 이 무주 구천동을 가게 됐던 것이다.

당시 전두환 캠프에서 미국 언론을 알고 또 대응할 인사를 찾으면서 내가 추천된 모양이었다. 내가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받아 주겠다면서 같이 일 하자는 오퍼가 제시됐던 것이다. 이런 기회는 내가 고려대학교 정치학과를 다니면서 청년 시절에 꿈꾸던 정치에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미주리대학교 테뉴어(종신직)를 받은 교수로서 교수직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어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덕유산을 찾게 됐던 것이다. 덕유산에서 돌아온 나는 언론학 교수로 내 커리어를 마치려고 한다면서 그 제안을 사절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덕유산 등산길에서  선 필자(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덕유산 등산길에서 선 필자(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우리 일행은 구천동 33경 중 하나인 세심대에 머물렀다. 맑은 물에 씻긴 기암이 흐르다 멈춘 담수에 자락을 드리운 채 우뚝 솟아 구천동을 오가는 행인들의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무주 구천동 33경 중 하나인 세심대.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주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무주 구천동 33경에는 곳곳에 절경인 계곡과 계곡물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주는 곳이라는 의미의 세심대를 비롯해서 인월담, 비파담 등이 줄곧 이어진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수 억만 년 지켜 온 산과 계곡은 사람들의 순간적 황당한 욕심을 역시 수만 년 내내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가 미국의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 정치에 뛰어 들었다면, 지금 나의 형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무서운 생각이 앞선다. 이런 이유로 나는 덕유산과 백련사, 그리고 무주 구천동의 아름다운 계곡을 좋아한다.

구천동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32경 백련사를 목표로 네 시간 정도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1932년생 동서 성 교장과 1933년생 처형과 함께 1937년생인 우리 내외가 찬찬히 걸어 올라가는 구천동 계곡은 노년의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덕유산 백련사 입구(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덕유산 백련사 입구(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구천동 계곡 중에서 유일하게 트인 하늘과 덕유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한 구조와 경관은 단연 뛰어난데, 신라 때 인월화상이 인월보사를 창건하고 수도한 곳으로 폭포와 반석 등이 절묘한 승경을 이루고 있으며, 숲속엔 인월정이란 정자가 숨은 듯 앉아 있다.

우리는 전에 걸어 본 넓은 등산로를 피해서 계곡을 끼고 혼자 걷기에 족할 정도로 좁은 자연의 길을 따라 올라갔다. 인월담, 비파담, 구천 폭포 등을 지나면서, 나는 자연의 신비에 감탄했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고 비천한가를 새삼 느꼈다.

덕유산 등산 중 무주 구천동 계곡에서 일행이 먹은 김밥은 집에서 준비해 간 것으로 그 어떤 맛나는 음식보다도 더욱 맛이 좋았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덕유산 등산 중 무주 구천동 계곡에서 일행이 먹은 김밥은 집에서 준비해 간 것으로 그 어떤 맛나는 음식보다도 더욱 맛이 좋았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넓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 온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에게 제일 맛 있는 음식은 이곳에서 유명한 한우 갈비도, 산나물 비빔밥도 아닌, 집에서 만들어 온 김밥이라며 우리 넷은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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