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묻지마 살인'의 충격..여성용 호신용품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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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묻지마 살인'의 충격..여성용 호신용품 품절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6.05.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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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 희생자 추모 물결 속 여성들, "나도 언제 당할지" 앞다퉈 구입
▲ 지금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기 위해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사진: 서울시 이시완 씨 제공).

현재 온·오프라인상에서는 호신용품 품절사태가 일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의 한 공중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3세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파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한 남성이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자신과 전혀 무관한 여성을 해친 ‘여성혐오 범죄’로 드러나면서 여성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살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런 감정이 실제 움직임으로도 나타나고 있는데, 강남역 10번 출구는 추모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졌고, SNS상에서는 여성혐오 문제를 주제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 여러 쇼핑사이트에는 호신용품들이 인기 검색어를 차지했고, 호신용품을 검색하면 다양한 관련 제품들이 나온다(사진: 쿠팡 홈페이지 캡쳐).

이같은 분위기를 타고 SNS와 여성 커뮤니티 중심으로 휴대하기 편한 호신용품 리스트가 작성돼 공유되고 있다. 호신용품은 경보음을 울리는 휴대형 경보기, 호루라기, 상대방 얼굴에 뿌리는 스프레이, 급소를 노려 공격할 수 있는 작은 막대, 반지처럼 끼고 가격할 수 있는 너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가격대는 3,000원에서 3만 원대까지. 사건이 있고 이틀이 지난 지금, 호신용품 정보 공유 글들에는 “당장 사야겠다,” “실제로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불안하니까 뭐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정보나 공유하고 있으니 어이 없고 슬프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쿠팡,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홈페이지에서 판매되고 있는 많은 호신용품들이 일시 품절돼 재고가 없다는 알림 문구가 해당 홈페이지에 뜨고 있다.  

항상 호신용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닌다는 여대생 최가인(23, 서울시 종로구) 씨는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남자였다면 죽임을 당했을까? 만약 내가 거기 있었다면 나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타깃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남자들이 호루라기 가지고 다니는 것 봤냐? (여자들은) 왜 이런 불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작은 막대기 모양의 호신용품 쿠보탄을 구매한 정세라(31, 인천시 남구) 씨는 “너무 안타깝다”며 “여자든 남자든, 낮 12시든, 새벽 1시든, 사람이 길을 가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없는 곳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학생 조민환(25,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처음 사건을 접했을 때 안타까운 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동생에게 “오빠는 모른다, 오빠는 피해자를 엄마, 여자친구, 여동생에 대입해야만 자신의 일로 느끼지만 나는 당장 나 자신의 일로 느껴진다”라는 말을 듣고 그때서야 충격을 받았다. 조 씨는 “여동생이 친구들과 헤어질 때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까지 서로 확인한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남자들끼리는 오히려 ‘사고 치지 말고 들어가라!’ 농담하기도 하는데... 여자와 남자가 느끼는 것, 사는 것이 너무 다르단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소셜커머스 쿠팡에 올라온 호신용품들(사진: 쿠팡 홈페이지 캡쳐).

이런 이유로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호신용품이 만능은 아니라고 말한다. 체육관에서 호신술을 가르치는 박완(33, 부산시 중구) 씨는 “호신용품은 사용 전 본인의 대비와 연습이 중요한데, 갑작스런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당황하면)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양성평등 운동 활동을 하는 여성운동가 박미혜 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호신술을 배운다거나 공중화장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우리나라는 '여성 혐오'라는 말 자체를 두고도 혐오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난 범죄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는 추모 포스트잇 붙이기, 헌화 등이 이뤄지고 있다. 추모 장소는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와 ‘여성시대’ 회원들이 주최하고 있고, 지방 곳곳에도 피해자의 명복을 비는 추모 장소가 만들어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더 이상 혐오범죄, 분노범죄, 묻지마 범죄가 없도록 이 병든세상을 치유해 가겠다”며 “현장과 기억보존 조치도 함께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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