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타임 '댓글 자살' 파장...익명제 찬반 양론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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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타임 '댓글 자살' 파장...익명제 찬반 양론 팽팽
  • 취재기자 조봉선
  • 승인 2020.11.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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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앓던 여대생의 극단적 선택... 에타 익명 이용자가 자살 부추겨
에타 익명제 여론 갈려... “익명성 피해 안돼” vs “의사표현 자유 필요”
학생들 다양한 대안 제시... 쓰리 아웃제, 익명글 횟수 제한제 등 도입 주장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에 달린 익명 악성 댓글로 인해 한 여대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에브리타임의 익명성에 대한 대학생들의 찬반 여론이 뜨겁다.

S여대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A 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괴로웠던 A 씨는 심리적 위안을 얻고자 지난해부터 에브리타임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로를 받고자 했던 A 씨의 마음과는 다르게 에브리타임 이용자들은 A 씨를 향한 비난의 말들을 쏟아냈다. 익명으로 댓글을 쓴 이용자들은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거나, “죽고 싶다는 말만 하고 못 죽네” 등과 같이 A 씨의 죽음을 부추기는 댓글들을 달았다.

이러한 악성 댓글들로 인해 A 씨의 우울증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A 씨는 지난 10월 8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발견된 A 씨의 유서에는 에브리타임에서 자신에게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을 찾아내 처벌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에 A 씨의 유족 측은 A 씨에게 익명으로 악성 댓글을 단 이들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지난달 서울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자신에게 익명으로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지난달 서울 S여대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자신에게 익명으로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이와 관련, 지난 2일 전국 25개 청년·인권·시민사회단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에브리타임과 대학 측에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단체 측은 “A 씨는 생전 같은 대학 구성원이 익명성에 기대어 남긴 ‘어서 죽어라’ 식의 악성 댓글과 게시글로 괴로움을 호소해왔다. 기업의 무책임한 방치와 대학 당국의 외면으로 악성 댓글이 계속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앗아갔다”며 에브리타임과 해당 대학을 비판했다. 또한 에브리타임 내 혐오 표현의 타깃이 되는 피해자들을 보호할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도 시작됐다. 지난 10일 경찰은 에브리타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IP 주소 등 용의자를 추적할 수 있는 서버 기록을 확보했다”며 “관련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국내 최대 커뮤니티로, 전국의 약 400개 대학의 455만 명 학생들이 가입되어 있다. 강의 시간표, 학점 계산기를 비롯해 강의평가, 취업·진로 상담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많은 대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또 자유게시판, 비밀게시판 등 목적이나 필요에 따라 다양한 게시판을 생성할 수 있어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교류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에브리타임에도 문제가 있었다. 청년참여연대가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에브리타임을 이용하는 대학생 3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9.1%가 에브리타임을 이용하는 도중 게시글이나 댓글로 인해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쾌감을 느낀 이유로는 막말이나 비방글로 인한 불쾌감이 38.3%로 1위였고, 여성혐오 등 소수자 혐오 표현이 27.4%로 뒤를 이었다. 이 외에도 음란표현과 정치적 편향성, 허위정보, 사칭, 사기 등이 이유로 제시됐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용자들이 불쾌감을 조성하는 글을 쓰는 데에는 익명성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이야기했다. 대학생 조주현(25, 경남 창원시) 씨는 “실명제라면 쓰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함부로 나불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희(21, 부산시 사상구) 씨는 “에브리타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다 익명으로 게재되기 때문에 나쁜 이용자들이 자신을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런 망측한 글들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대학생들은 에브리타임의 익명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김현수(22, 경남 창원시) 씨는 에브리타임이 익명성을 보장하는 게 문제라며 익명제 폐지를 주장했다. 김 씨는 “이번 여대생 자살 사건도 있지만, 평소 에타에 들어가면 하루에 하나쯤은 욕설이나 패드립이 난무하는 게시글이나 댓글들을 보게 된다”며 “익명성을 악용해 논란이 되는 글을 게재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익명성을 없애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 모(22, 경남 창원시) 씨는 익명 댓글로 인해 상처받았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이 씨는 “조별과제 때문에 타과 학생들의 협조가 필요해 에타에 글을 남겼었다”며 “그런데 익명으로 도와준다고 댓글을 남긴 사람들 대부분이 막상 쪽지를 보내니 ‘나는 그 학과 학생이 아닌데?’라거나 나를 조롱하는 글을 써서 보내줬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 씨는 “나는 당장이 급하고 간절한 상황인데 익명을 이용해 이를 조롱거리로 삼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 눈물까지 흘렸다”며 “나처럼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닌 만큼 에타 익명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 대학생들은 익명성으로 인한 에브리타임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익명제 유지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대학생 김해영(23, 부산시 사상구) 씨는 에브리타임이 활성화된 데에는 익명성 보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학생들이 정보를 공유하거나 학교에 건의사항이 있을 때 의견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에타의 익명성 덕분”이라며 “이러한 장점이 돋보이는 익명성을 없앤다면 에타는 아마 지금처럼 활발하게 운영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강은혜(21, 경남 거제시) 씨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해서라도 익명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씨는 “나와 같은 소극적인 학생들의 경우, 익명이 보장됐기 때문에 에타에서 더 자유롭게 질문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이러한 익명성이 사라지면 내성적인 학생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에브리타임 익명제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익명 악성 댓글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생 김수현(22, 경남 창원시) 씨는 신고를 기반으로 게시물을 처리하는 에브리타임의 기존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씨는 “현재의 신고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일종의 ‘쓰리 아웃제’를 만들자”며 “세 번 이상 신고를 받게 될 경우, 그 계정은 영구 삭제되도록 하며, 만일 해당 계정의 주인이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내면 익명 사용을 금지하게끔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강은혜 씨는 익명 대신 학번을 아이디로 사용하게끔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강 씨는 “본인의 학번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학번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가능하다”며 “그러나 게시글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는 경우에는 학번으로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 더 실질적인 처벌이 가능해질 것이며, 덩달아 악성 댓글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대학생 손 모(21, 경남 거제시) 씨는 ‘익명글 횟수 제한제’ 도입을 제안했다. 손 씨는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익명의 횟수를 3회 정도로만 제한하는 방법”이라며 “아무래도 익명의 횟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이용자들이 글을 함부로 쓰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씨는 “익명성은 유지하면서도 글을 조심스레 쓸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압박을 줄 수 있다”며 “익명글 횟수 제한제가 도입돼 피해자들이 익명글로 상처받는 일들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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