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진해 군항제에서 아름다운 왕벚꽃 절경과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 정신에 심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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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진해 군항제에서 아름다운 왕벚꽃 절경과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 정신에 심취하다
  • 장원호
  • 승인 2020.11.14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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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꽃 만개한 진해에서 벚꽃의 아름다움 만끽
이순신 장군 추모제에서 시작됐다는 진해군항제 이모저모 둘러도 보고...
인근 김해 봉하마을 둘러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2017년 4월 2일, 나는 진해군항제를 보러가려고 했으나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진해에 들어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다음 날인 월요일 처남 영수 내외와 함께 승용차로 진해 구경에 나섰다.

대구에서 창원으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은 아직 봄 향기를 내기에는 이른 듯했으나, 창원 관광 고등학교에 도착하니 온 시가지가 벚꽃 천지였다. 창원과 마산, 그리고 진해를 통합하여 창원시로 만들었고, 이제 진해는 창원시 진해구가 된 것을 나는 여기에 와서 처음 알았다.

나는 벚꽃이 일본 국화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벚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벚꽃은 일본 국화는 아니고 일본 무사 사무라이를 상징한다고 하며,  벚꽃은 히말라야가 원산지라고 한다.

벚꽃은 그 종자가 개량되어 수십 종류가 있으며, 진해지역에 피는 왕벚꽃은 크고 화려한데, 1962년에 식물학자 박만규와 부종휴에 의해 진해 왕벚꽃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다시 진해에서 벚나무 살리기 운동이 일어났고, 여기에 힘입어 현재의 왕성한 벚꽃 축제가 지금처럼 그 화려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진해에는 가로수를 비롯해 공원, 산지를 포함해 모두 수십 만 그루의 왕벚꽃 나무가 매년 봄 만개한다.

우리 일행은 창원에서 장복산 안민고개 십리 길을 거쳐 진해로 갔다. 우리는 십리길 주변에 가꾸어진 왕벚꽃을 한껏 즐겼다. 구석구석 차를 세워놓고 꽃구경과 사진 찍는 인파로 차가 밀리지만, 그런대로 우리도 차안에서 봄 풍경을 즐겼다.

진해군항제가 벌어지고 있는 기간에는 진해 곳곳에 벚꽃이 활짝 만개해 있다. 진항군항제 꽃장식 앞에서 우리 일행이 포즈를 취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군항제가 벌어지고 있는 기간에는 진해 곳곳에 벚꽃이 활짝 만개해 있다. 진해군항제 꽃장식 앞에서 우리 일행이 포즈를 취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경화역 800m 철로길 양옆으로 잘 가꾸어진 벚꽃 길은 진해의 명물이다. 그리고 여좌천으로 가서 돌아보았으나, 이곳은 야경이 더 좋다고 한다.

진해 경화역 철길 양옆으로 핀 벚꽃은 천하절경을 이뤄 많은 상춘객들이 사진을 찍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 경화역 철길 양옆으로 핀 벚꽃은 천하절경을 이뤄 많은 상춘객들이 사진을 찍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를 벗어나서 그리 멀지않은 김해 봉화 마을로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바위를 보고, 그 아래편에 잘 가꾸어 진 묘소와 기념관을 둘려 보았다.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나는 봉화 마을을 가기 전에 한겨레 신문 불로그에 올라온 '노무현 지지 안 해도 노무현 묘역에 가 볼 이유'란 글을 자세히 읽었다. 사실 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국 정치의 아노말리(anomaly, 이단아)라고 알고 있었다.

역설적인 삶과 역설적인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은 역설적인 죽음을 택했다고 이 블로그 글은 표현하고 있다. 또 이 한겨레 불로그는 노무현 묘역을 “묘하고 역설적”이라고 부르면서 꼭 가 보라는 이유를 아주 자세히 올려서 흥미로웠다. 이 글에는 노무현 묘역을 설계한 얘기가 나오는데, 인도의 라즈 카트 간디의 추모 묘역을 참고했다는 설계자인 승효상 건축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승효상 건축가는 아주 독특했던 전직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다시 돌아봤다고 한다. 승효상 씨는 “자발적 추방인으로 노무현이란 독특하고 특별한 인물의 무덤은 자신을 스스로 추방한 정치인의 무덤이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필자 부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필자 부부(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다시 해가 지자 우리는 여좌천으로 가서 전기 장치와 자연벚꽃으로 호화롭게 치장한 장엄한 경치는 정말 대단하다.

진해 여좌천 주위의 아름다운 왕벚꽃(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 여좌천 주위의 아름다운 왕벚꽃(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 군항제는 지난 1952년에 한국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북원 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하여 온 것이 계기가 됐다. 초창기에는 이 충무공 동상이 있는 북원 로터리에서 제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행사 규모와 내용이 점점 커지고 발전함에 따라 1983년부터는 '이 충무공 호국 정신선양회'가 사단법인으로 발족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군항제 행사를 주관해 오고 있다.

진해군항제는 이순신 장군 추모행사가 모태가 됐다고 한다. 사진은 진해 시가지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군항제는 이순신 장군 추모행사가 모태가 됐다고 한다. 사진은 진해 시가지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진해 군항제는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 문화예술을 진흥하는 본래의 취지를 살린 행사와 더불어 문화예술행사, 관람 행사, 팔도풍물시장 등을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봄 축제로 발전하게 됐다.

이순신 장군은 서울 세종로 제일 앞에 우뚝 선 동상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이 제일 숭상하는 역사 인물로 단연 1위다.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은 최초 해전인 옥포 해전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꼽히는 한산대첩과, 장군이 최후에 전사한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전에서 공을 세웠다. 한 때 원균의 모함으로 세 번의 파직과 옥중생활을 겪고, 두 번의 백의종군이란 시련도 있었지만, 정유년 일본이 재침략하자 복위됐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전략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해서 학익진법을 비롯하여 많은 전투 진법을 개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실전에 적용해서 한 번의 패전도 없이 전승을 기록했다. 또 기존 전함 판옥선을 변형하여 거북선을 개발, 제조해서 실전에 투입시킴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 등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철저한 준비와 탁월한 전술, 그리고 거북선과 화포 등 뛰어난 무기를 잘 사용했기 때문이며, 장군은 임진왜란 중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나라와 민족을 왜적으로부터 방어하고 격퇴함으로서 한국 역사상 가장 추앙 받는 인물로 역사에 남게됐다.

진해에서 위대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서 조선 왕조가 일본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할 생각은 못하고 고리타분한 중국 문자와 유학숭배로 사색당파에 몰두한 역사가 무척 한스럽다. 지금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적폐 청산이란 엉뚱한 일에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한심스런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진해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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