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방치는 사회 책임... 피해자가 살인자 되는 안타까운 일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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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방치는 사회 책임... 피해자가 살인자 되는 안타까운 일 발생
  • 부산시 영도구 이태녕
  • 승인 2020.11.09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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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가정폭력 시달리던 주부가 남편 살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은 선처 요구, 판사는 집행유예 판결
폭력으로부터 약자 보호는 국가의 기본 책무
가정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를 국가가 보호해주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사진 : 구글 무료 이미지.)
가정폭력 피해자를 국가가 보호해주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60대 주부가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0월, 이 사건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고, 피고인인 아내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살인죄는 범죄 중에서도 형법상 가장 무거운 죄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유는 다수의 배심원들이 선처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만약 배심원들이 이번 사건의 책임이 오로지 피고인 개인에게만 있다고 판단했다면 나올 수 없는 판결이었다. 내가 배심원이었더라도 같은 주장을 했을 것이다. 피고인이 살인을 저지른 데에는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 아내는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한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아내가 가해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해자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가정폭력은 가해자를 처벌하기가 까다로운 문제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신고해도 보복이 두려워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가정이 깨지면 자녀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하여 그냥 참고 사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이혼 역시 쉽지 않다. 이혼소송 과정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가정폭력으로 지속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가해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이 자신을 방어하고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배우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정당방위로 인정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다. 2018년, 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있었다. 남편은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만삭인 아내를 삽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결국 남편은 이성을 잃은 아내가 휘두른 돌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이보다 더 전인 1993년에는 14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이 잠든 사이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유죄로 처벌받았다.

앞서 소개한 사건의 경우, 나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선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러한 범죄는 단순히 죄를 저지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했다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가정폭력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나 부부싸움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끈질기게 이어진 폭력이 ‘죽음’ 앞에서야 멈추는 비극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란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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