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교촌마을 최 부자댁 육훈(六訓)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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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교촌마을 최 부자댁 육훈(六訓)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배우다
  • 취재기자 김유경
  • 승인 2020.11.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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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의 찬란한 야경은 과연 천하 제일 포토존
곳곳의 체험과 공연은 여행 재미 ‘듬뿍’
교리김밥 이전 소식 알고 가야 실망 덜 할 듯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이것은 12대 400년간 부(富)를 이어온 경주 최 부자의 가훈이다. 조선 부자의 모범적 정신이 살아 있는 곳 최 부자 고택과 경주 향교를 중심으로 조선 시대 전통한옥마을을 복원한 곳이 경북 경주시 교촌길 39-2번지에 위치한 ‘교촌마을’이다.

경주 교촌 마을 길목에는 교촌마을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교촌마을 길목에는 교촌마을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역, 첨성대, 대릉원, 그리고 경주교촌마을 보여주는 경주 대표 유적지 안내도(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역, 첨성대, 대릉원, 그리고 경주 교촌마을 보여주는 경주 대표 유적지 안내도(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교촌마을 내부를 그림으로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마을 안내지도(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교촌마을 내부를 그림으로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마을 안내지도(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교촌은 ‘요석궁’으로부터 그 역사를 시작한다. 요석궁은 신라 태종무열왕(654~661년)의 둘째 공주인 요석공주가 머물렀던 궁으로, 원효대사와 사랑을 나눴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신라 신문왕 때 요석궁 터에 교육기관인 ‘국학’(682년)이 세워졌고, 고려 시대 ‘향학’을 거쳐 조선 시대에는 이 자리에 ‘향교’가 지어졌다. 향교는 크게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곳인 ‘대성전’과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했던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은 방문 당시 도리(목조 건축물에서 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얹은 나무) 부분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자세히 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경주향교 명륜당이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향교 명륜당이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최 부자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별당채 공사 중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최 부자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별당채 공사 중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설상가상으로 향교 바로 옆의 최 부자댁 고택도 별당채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고택을 다 볼 수 없었다. 공사 중 팻말을 따라 들어가면 가장 먼저 최 부자댁의 곳간이 나온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목제 곳간이라는 명성에 맞게 곳간 하나가 웬만한 한옥 집 한 채와 그 크기가 비슷했다. 그 곳간에 곡식이 그득했다니 그 부의 크기가 압도적이다.

경주 최 부자댁 마당에는 쌀 창고로 쓰였던 곳간으로 왠만한 한옥 한 채보다 크다. 최 부자택의 부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최 부자댁 마당에는 쌀 창고로 쓰였던 곳간으로 왠만한 한옥 한 채보다 크다. 최 부자택의 부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곳간 앞에는 경주 최 부자가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연유을 밝혀주는 이 집 가훈인 육훈(여섯 가지 교훈)이 걸려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곳간 앞에는 경주 최 부자가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연유을 밝혀주는 이 집 가훈인 육훈(여섯 가지 교훈)이 걸려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그리고 이 곳간에서 최 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이 곳간의 문을 열어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가훈으로 정해둔 것. 100리는 현재 기준으로 약 40km 정도 된다. 곳간 앞에는 쌀을 담아두는 통인 ‘뒤주’가 하나 있다. 최 부자는 가훈을 받들어 집에 오는 손님들을 늘 후하게 대접했고, 사랑채는 늘 손님으로 붐볐다. 손님이 많아 머물 곳이 없을 때, 최 부자는 근처 하인 집에 머무르게 했는데, 이때 이 뒤주에서 쌀을 한 줌 가져가면 하인들은 잠자리와 식사를 내주었다.

안에 쌀은 없지만, 손을 넣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쌀 나오는 입구가 있어, 방문객들은 당시 최 부자댁 손님 체험을 해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안에 쌀은 없지만, 손을 넣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쌀 나오는 입구가 있어, 방문객들은 당시 최 부자댁 손님 체험을 해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최 부자댁의 안채와 장독대, 굴뚝의 모습. 그 모습이 정갈하고 단아하여 기품마저 느끼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최 부자댁의 안채와 장독대, 굴뚝의 모습. 그 모습이 정갈하고 단아하여 기품마저 느끼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곳간을 지나 더 들어가면 안채가 나오는데, 굴뚝과 장독대가 기와집과 어우러져 폭의 단아한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최 부자댁과 경주향교를 같이 보면 최 부자가 신분에 상관없이 ‘상생’하려 노력했던 모습들이 보인다. 최 부자댁은 다른 양반집에 비해 집이 낮은데, KBS1 ‘역사저널 그날’에 따르면, 그 이유는 최 씨네가 처음 교동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지을 때, 유림의 반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부자가 향교 옆에 집을 짓는 것을 향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긴 것. 그래서 처음 교촌에 터를 잡은 7대 최 부자 최언경(1743~1804년)은 지혜를 발휘해 집의 높이를 낮춰 그들에게 도전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고 함께 사는 길을 찾았다. 또, 최 부자는 시집온 며느리에게 삼 년간 무명옷만 입게 했는데, 이는 만석꾼의 아내지만, 서민의 고단함을 옷을 통해 느끼라는 의도였다.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는 가훈에서처럼 부자라고 해서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 최 부자의 행동은 명문가로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최 부자댁을 설명해주는 여러 팻말 밑에는 ‘영남대학교 총장’이라고 꼭 적혀있다. 최 부자와 영남대학교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최 부자댁 입구에 붙어있는 관람 안내 팻말. 팻말 밑에는 ‘영남대학교 총장’이라고 적혀있다. 최 부자 고택은 이 집안이 영남대학교에 기증했기 때문에, 현재 소유가 영남대학교임을 말해준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최 부자댁 입구에 붙어있는 관람 안내 팻말. 팻말 밑에는 ‘영남대학교 총장’이라고 적혀있다. 최 부자 고택은 이 집안이 영남대학교에 기증했기 때문에, 현재 소유가 영남대학교임을 말해준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KBS1 ‘역사저널 그날’에 따르면, 12대 마지막 최 부자 최준(1884~1970년)은 나라가 튼튼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를 위해선 교육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육영 사업에 전 재산을 환원했고, 토지와 선산, 집까지 학교 설립에 보탰다. 이것으로 1947년 대구의 사립대학인 ‘대구대학’이 세워졌다. 대구대학은 1967년에 대구의 ‘청구대학’과 통합돼 우리가 알고 있는 영남대학교로 개편된 곳으로, 우리가 아는 현재의 대구대학교와는 관계가 없다. 최준은 대구대학을 국가에 헌납했고 그것이 오늘의 영남대학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고 했던 가훈을 뛰어넘어 부강한 나라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놓은 것이다.

샤이니 키가 KBS2 ‘배틀트립’ 129회에서 혼자 떠나는 여행지로 경주 교촌마을을 방문해 한복을 대여해 입고 교촌 거리를 유람했다(사진: KBS 2TV 화면 캡처).
샤이니 키가 KBS2 ‘배틀트립’ 129회에서 혼자 떠나는 여행지로 경주 교촌마을을 방문해 한복을 대여해 입고 교촌 거리를 유람했다(사진: KBS 2TV 화면 캡처).
세 자매가 경주 교촌마을을 찾아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모습이 귀엽다. 왼쪽부터 김이솔(5), 김미솔(10), 김예솔(8) 양(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세 자매가 경주 교촌마을을 찾아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모습이 귀엽다. 왼쪽부터 김이솔(5), 김민솔(10), 김예솔(8) 양(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관광안내소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샤이니 키’도 다녀간 한복대여점 ‘경주를 입다’가 눈길을 끈다. 마을 곳곳 한복을 입고 한옥을 거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마을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세 자매는 한복을 입어 즐겁지만 오랜만에 입어본 한복이 어색했다. 김예솔(8, 경남 창원시) 양은 “한복을 입은 건 좋지만, 치마끈이 조여서 조금 불편하다”고 말했다. 또, 세 자매는 경주 교촌마을 내 ‘교촌가람’에서 떡메치기 체험을 통해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몸소 배웠다. 맏언니인 김민솔(10) 양은 “떡 만들 때 쓰는 망치가 무거워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누비공방’ 벽에는 다양한 색의 실과 구슬로 만들어진 예쁜 매듭 팔찌가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누비공방’ 벽에는 다양한 색의 실과 구슬로 만들어진 예쁜 매듭 팔찌가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누비공방에서 한 관광객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세 갈래의 실을 땋듯이 묶어서 팔찌를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누비공방에서 한 관광객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세 갈래의 실을 땋듯이 묶어서 팔찌를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한복대여점 건너편에는 ‘누비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체험료를 지불하면 매듭 팔찌와 발찌, 머리끈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곳이다. 그중 매듭 팔찌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여러 예시 중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고르고, 전문가를 기다리면 준비가 끝난다.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세 가닥으로 늘어뜨린 튼튼한 실을 머리카락을 땋듯이 묶으면서 어울리는 색의 구슬을 꿰면 된다. 실을 꿰는 작업은 은근히 어렵다. 실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예시처럼 매듭의 모양을 예쁘게 하기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팔찌를 잘 만드는 비법에 대해 누비공방 사장 김혜원(63) 씨는 “구슬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매듭이 눈에 잘 보이려면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주 교촌마을은 전통과 문화가 합쳐진 곳인 만큼 문화공연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는 경주 관현악단이 버스킹 공연을 하고, ‘예악당’에서는 국악인 김소라 X 현승훈 듀오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타악기 공연 ‘리듬 커넥션 - 다섯 번째 마당’이 진행됐다.

발열체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히 지키며 진행된 ‘리듬 커넥션’은 총 여덟 곡을 연주했다. 공연은 우리나라 대표 타악기 장구, 북 외에도 가야금, 태평소, 생황 등이 함께 어우러져 국악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특히, 공연 중간 연주자 현승훈의 북채 돌리기는 관객들의 감탄을 끌어냈다. 또, 공연 내내 연주자들의 추임새와 호응 유도는 추운 날씨와 모기를 잊을 만큼 국악에 푹 빠져 즐기게 했다.

다양한 국악기로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 리듬 커낵션의 연주자들. 왼쪽부터 김지혜, 현승훈, 김소라, 홍지혜 씨(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다양한 국악기로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 리듬 커넥션의 연주자들. 왼쪽부터 김지혜, 현승훈, 김소라, 홍지혜 씨(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예악당 관객 중 유독 한 사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누구보다 국악에 빠져 감탄하고 열광했으며, 연주자들이 ‘척’하고 호응을 유도하면, 그 관객은 ‘착’하고 환호했다. 그 관객은 경주에 살면서 주민센터에서 풍물을 하는 황명자(55, 경북 경주시) 씨다. 예악당 공연에 거의 빠지지 않고 올 정도로 국악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황 씨는 “그냥 저절로 손이 모아질 만큼 공연이 신비로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주 교촌마을에는 모든 연령층이 즐길 다양한 체험장이 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해갈 순 없다.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주말의 누리공방 수입이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공방 주인 김 씨는 “평일에는 마을이 텅 빈다”고 말했다. 수입이 줄어든 건 교촌마을 내에 있는 마트도 마찬가지다. 교촌마을에서 월정교로 가는 길목에 있는 월정거리마트 사장 성혁준(36) 씨는 “경주시에서 방역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관광객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가 지기 직전의 월정교 모습. 월정교는 지붕을 이고 있어서 특이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는 다리다. 조명이 막 켜진 월정교는 달과 어울려 더욱 영롱한 모습을 자아낸다. 최근 이곳은 포토존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해가 지기 직전의 월정교 모습. 월정교는 지붕을 이고 있어서 특이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는 다리다. 조명이 막 켜진 월정교는 달과 어울려 더욱 영롱한 모습을 자아낸다. 최근 이곳은 포토존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마트를 지나면 빨갛고 커다란 기와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해가 지면 더 빛나는 ‘월정교’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월정교는 통일신라 시대 경덕왕 19년(670년)에 지어진 지붕 있는 다리로, 조선 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4월 복원한 것이다. 해가 지면, 월정교의 야경을 찍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월정교 앞, 새로 만들어진 징검다리의 중간 지점은 월정교의 모습을 담는 포토존이 됐다. 다음 사람을 위해 좁은 다리 위에서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찍고, 조심히 한 발을 내디뎌 건넌다.

월정교 앞 징검다리 중간 지점에서 찍은 월정교 야경. 지붕을 이고 있는 다리의 야경은 과연 사람들의 탄복을 자아낼 만하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월정교 앞 징검다리 중간 지점에서 찍은 월정교 야경. 지붕을 이고 있는 다리의 야경은 과연 사람들의 탄복을 자아낼 만하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월정교 내부는 2층으로 나뉜다. 1층은 넓은 통로가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원활하고, 양옆에는 의자가 난간에 붙어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월정교 양 끝의 ‘올라가는 길’ 계단을 오르면 월정교 복구 과정을 영상을 보여주는데, 앞에 작은 평상이 있어 잠시 앉아 숨을 골랐다. 최근 아름다운 야경으로 관광객이 몰리기에 안전이 중요해졌다. 경주시청 왕경조성과 김재호 주무관은 안전수칙을 꼭 지켜주길 당부했다. 김 주무관은 “난간에 붙어 있는 양옆 의자에 올라가서 사진 찍는 것과 월정교에 자전거나 전동킥보드를 타고 오는 행동은 조심해달라”고 말했다.

월정교 1층은 벽과 지붕을 가진 건축물이므로 다리를 건너는 느낌보다는 회랑을 거니는 느낌을 갖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월정교 1층은 벽과 지붕을 가진 건축물이므로 다리를 건너는 느낌보다는 회랑을 거니는 느낌을 갖게 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이처럼 경주 교촌마을은 전통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역사만 있다면 지루할 수도 있는 곳에 체험장이 들어서면서 지식과 즐거움을 함께 잡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김밥에 달걀이 가득 들어가 맛이 기가 막혀 손님들이 가게 앞에 하루 종일 줄을 선다는 ‘교리김밥 본점’이 경주 탑동으로 이전해 먹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가게 앞 골목을 사람들로 가득 채웠던 곳이 사라진 자리는 허전하고, 조용했다.

경주 교촌마을의 명물 ‘교리김밥’은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현수막만 걸리고 사라지고 없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경주 교촌마을의 명물 ‘교리김밥’은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현수막만 걸리고 사라지고 없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교촌마을에는 교리김밥 외에도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정식 식당도 있다. 한복대여점인 ‘경주를 입다’에서 교리김밥 본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정식 명가(名家)’ 앞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손님을 맞고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더라도 강아지의 애교에 많은 관광객이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식당에서 걷느라 피곤한 다리를 쉬면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경주 최 부자댁의 고귀한 정신과 월정교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 경주 교촌마을 여행은 나름 남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정식 식당인 ‘한정식 명가’ 입구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손님을 맞고 있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둠뿍 받고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한정식 식당인 ‘한정식 명가’ 입구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손님을 맞고 있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둠뿍 받고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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