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편지… 실상은 출처도 모르는 가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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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편지… 실상은 출처도 모르는 가짜 편지
  • 부산시 수영구 박상현
  • 승인 2020.11.02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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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편지는 이 회장이 와병 중일 때도 떠돌던 것
‘돈이 무슨 소용?’ 건강의 중요성 강조한 가짜 편지
최근 SNS를 통해 확산된 고 이건희 회장의 가짜 편지 내용 중 일부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SNS를 통해 확산된 고 이건희 회장의 가짜 편지 내용 중 일부다(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SNS를 통해 널리 퍼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마지막 편지’가 가짜로 밝혀졌다. 언론에 따르면, 삼성 측은 “해당 편지는 회장이 와병 중일 때에도 온라인에서 돌던 것”이라며 “고인이 쓴 글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럴듯한 내용에 유명인의 이름까지 더해지면 이렇게 손쉽게 대중을 바보로 만들 수 있구나.’ 내가 해당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이다. 속은 것에 대한 분노는 물론, 나아가 경이감이 마저 들었다. 가짜 편지는 실제로 와병 중인 이 회장이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었고, 감명받은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평소 의심이 많아 사기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던 나였으나, 출처도 모르는 가짜 이건희 회장에게 보기 좋게 당했다.

가짜 편지는 대략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 건강을 위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상위 기업 회장의 손끝에서 “돈이 무슨 소용이냐”는 문장이 나왔다. 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인가?

편지를 다 읽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났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어, 엄청난 재화를 갖고 있을지라도 나름의 고충이 있구나. 나는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힘내야지.’ 편지는 내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심어줌과 동시에, 어쩌면 지금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는 나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삼성 측의 해명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꿈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짜 편지 작성자가 얘기한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을 그나마 보상이라도 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돈이다. ‘합의금’, ‘보험금’ 등 사람이 겪은 정신적·신체적 피해도 돈만 있으면 보상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만 있으면 죄도 없어지는 사회에서, 돈을 좇는 이들이 넘쳐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돈을 좇는 이들이 형성한 물질만능주의 사회 속 성공의 표본인 이 회장이 돈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 내용을 접한 사람들은 분명, 잠깐이라도 자신에게 돈보다 나은 가치가 있는지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나마 어깨 위에 쌓인 짐을 내려놓고 가정, 혹은 취미에 집중하는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지는 이 회장이 쓴 것이 아니었으며, 세상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어깨 위에 짐을 짊어지는 이들이 느낀 실망감과 배신감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익명성을 악용해 이 회장을 사칭한 의문의 작성자는 물론, 악성 댓글을 일삼는 몇몇 네티즌이 자신이 던진 돌의 무게를 느끼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자신의 화풀이, 혹은 가벼운 장난이 누군가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서라도 깨닫길 소원한다.

옛말에 ‘세 치 혀로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약 9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혓바닥일지언정,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세 마디 손가락으로 사람 잡는 세상이 찾아왔다. 혀를 놀릴 필요도 없이 손가락 몇 번 구부려 사람을 속이고, 사지로 내모는 사회가 찾아온 것을 보니 속담은 정말 옛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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