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가야고분서 금동유물 와르르... 비화가야 실체 밝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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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가야고분서 금동유물 와르르... 비화가야 실체 밝혀지나
  • 취재기자 안시현
  • 승인 2020.10.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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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 교동 63호분 발굴 성과 공개
금동관·은허리띠 등 지배층 차림 원형 출토.. 신라 연관 주목
“키 155㎝ 여성 추정” 순장자 2명 흔적도 확인

도굴된 적 없는 경남 창녕의 가야 고분에서 금동관을 포함한 지배자의 장신구가 고스란히 착장된 상태로 발굴돼, 이 지역 비화가야 연구에 전기가 마련됐다. 창녕은 비화가야의 거점으로 여러 가야 소국 중에서는 가장 이른 6세기 중엽 신라에 복속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9일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 확인된 장신구 유물은 높이 약 21.5㎝의 금동관과 관에 드리운 금동 드리개와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귀걸이 1쌍,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들과 은 허리띠 등 지배자 몸에 둘렀던 상태의 꾸밈유물 일체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지난 9월 발굴돼 큰 화제가 됐던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 일체와 구성이 비슷하다.

또한, 피장자 발치 바닥을 약 40㎝ 정도 낮춘 공간(길이 220㎝, 너비 130㎝)은 2명의 순장자로 추정됐다. 이곳에서는 순장자의 것으로 짐작되는 치아 일부와 다리뼈 일부가 확인됐다.

경남 창녕 가야고분 63호분에서 발굴된 금동관(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남 창녕 가야고분 63호분에서 발굴된 금동관(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장신구들은 피장자에 부착했던 상태로 발견됐다.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으로 만든 관(冠)이, 양쪽 귀부분에서는 금으로 만든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 태환이식) 1쌍이 확인됐다.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3~4줄로 엮어서 만든 구슬 목걸이가,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있었고, 손 부분에는 은반지들이 나왔다. 피장자의 몸을 장식한 꾸밈유물 일체가 온전히 확인된 것은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층 고분에서는 최초의 사례다.

창녕 가야고분에서 나온 피장자의 귀걸이 출토 모습(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창녕 가야고분에서 나온 피장자의 귀걸이 출토 모습(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금동관(높이 약 21.5㎝)은 가장 아래에 관테(너비 약 3㎝)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으로 이루어진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樹枝形 立飾, 수지형 입식)을 세운 형태다.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曲玉, 곡옥)과 금동구슬로 이루어진 금동드리개(金銅製垂飾, 금동제수식)가 양쪽에 있고, 관테 양 측면에는 원통형의 금동막대 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세움장식 밑면에는 관모(冠帽, 모자)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창녕 가야고분 63호분에서 금동관, 귀걸이 등 피장자의 여러가지 장신구가 노출된 모습(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창녕 가야고분 63호분에서 금동관, 귀걸이 등 피장자의 여러가지 장신구가 노출된 모습(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비화가야의 고분은 일제강점기 이후 진행된 약탈과 도굴로 인해 그 전모를 알 수 없었으나, 이번에 발굴된 무덤 유물은 신라와 흡사해 신라와 비화가야가 단순한 교류를 넘어 친연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비화가야는 6가야 중 유일하게 낙동강 동쪽에 있어서 신라화가 빨리 진행됐고, 신라는 비화가야를 점령한 뒤를 이를 교두보 삼아 대가야(고령) 등 가야 전체를 복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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