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의 ‘플렉스(flex)’ 열풍... 너도나도 명품 구매에 부모들은 등골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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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플렉스(flex)’ 열풍... 너도나도 명품 구매에 부모들은 등골 빠져
  • 취재기자 정수아
  • 승인 2020.10.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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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또래 집단에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플렉스 열풍의 가장 큰 이유” 분석
유튜브 등에 물건 대량 구매 뒤 동영상 품평하는 하울(haul)도 경쟁적으로 올려
명품 소비문화 확산으로 인한 학내 따돌림·도난 사고 등의 부작용도 많이 발생

명품이 경제력 있는 중년층들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값비싼 물건들을 사고 과시한다는 용어인 ‘플렉스(flex)’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플렉스는 사전적으로 ‘구부리다’, ‘몸을 풀다’라는 뜻이지만,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부나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에서 유래돼 자신을 ‘과시하다’, ‘뽐내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10대들의 명품 구매 영상과 인증샷들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여러 SNS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명품을 산 뒤 SNS에 올려 자기를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이미지).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명품을 산 뒤 SNS에 올려 자기를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이미지).

‘스마트학생복’에서 중고등학생 358명을 대상으로 2019년 12월에 실시한 청소년 명품 소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수가 ‘명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10대와 20대 42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대 33.6%가 추석 이후 새로운 명품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10대의 명품 구매 계획이 20대(26.1%)보다도 높아 청소년들의 명품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10대들의 소비 패턴 변화에 맞춰 명품업계도 트렌드를 따라가는 추세다. 구찌는 지난 2015년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디자이너로 임명된 이후, Z세대가 선호하는 디자인으로 이미지를 바꿔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했다. 현재 구찌 총 매출의 절반 이상이 젊은 소비자층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매출 또한 급증했다.

마케팅 방식 또한 10대들을 겨냥해 인스타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시즌 컬렉션 홍보와 해시태그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청소년들의 플렉스 문화를 확산시켰다.

 

유튜브에 ‘명품 하울’이라고 검색어를 치자 수 많은 '하울'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사진: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명품 하울’이라고 검색어를 치자 수 많은 '하울'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사진: 유튜브 캡처).

특별한 소득이 없는 청소년들이 값비싼 명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SNS 효과 때문이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가장 파급력이 큰 SNS인 유튜브만 봐도 수많은 ‘명품 하울’ 영상이 올라와 있어 10대들이 명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울(haul)’은 ‘세게 끌어당기다’ 또는 ‘차로 나르다’는 뜻의 영어 단어로, 인터넷 방송 등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이 물건들을 품평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언서들을 따라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또래 집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10대들의 명품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박지연(17, 부산시 금정구) 양은 “유튜버나 인스타 셀럽들은 연예인과 달리 우리와 같은 또래라는 느낌이 확 든다. 일반인이었던 사람도 명품을 사고, 입는 것만으로 유명해지는 세상인데 명품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SNS 효과에 더해 ‘코로나 블루’ 또한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다. ‘코로나 블루’란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해소하기 위해 충동적인 구매를 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대학생 강주은(2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나가질 않으니까 돈도 쌓이고 그만큼 웹서핑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사고 싶은 것들이 잔뜩 생긴다”며 “성인인 나도 최근 들어 과소비가 많아졌는데, 유행에 민감할 시기인 학생들은 바람직한 소비가 더욱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본인의 소득을 저축하여 명품을 구매하는 성인과는 달리 10대들이 명품을 사는 방법은 꽤 다양했다. 앞선 청소년 명품 소비 설문조사의 ‘주로 명품을 어떻게 구매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39.1%는 ‘부모님께서 사주신다’고 답했다. 뒤이어 ‘용돈을 모아 구매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구매한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10대들의 과도한 플렉스 문화에 많은 사람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고등학생인 자녀를 둔 주부 김미정(47, 부산시 북구) 씨는 “요즘 학생들 사이에 나이에 맞지 않는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입장에서 마음이 아프다”며 “이런 소비문화를 바로 잡지 못한 어른들의 문제도 크다”고 비판했다.

명품을 착용하고 다니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명품을 사지 못하는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수진(18, 부산시 해운대구) 양은 “우리 학교는 잘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발렌시아가 후드티, 구찌 신발 등 명품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 솔직히 부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명품 소비문화가 심해져 학생들끼리 계급을 나누거나 도난 사고를 일으키는 등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원생 권영우(29, 경남 창원시) 씨는 “10대들의 플렉스 문화가 단순한 과시가 아닌, 자기만족이라면 문제 삼을 수 없다”고 전했다. 권 씨는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가족에게 무리한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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