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으로 치닫는 미국과 한미 FTA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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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으로 치닫는 미국과 한미 FTA 운명
  • 칼럼니스트 윤삼수
  • 승인 2016.05.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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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윤삼수

11월 8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 그리고 1년 남짓 후엔 한국의 대선이 치러진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대권을 잡아가는 승리의 비결은 '시대정신' 을 부여잡고 국민을 향해 한발 한발 소 걸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 유력 대선 주자들은 민주, 공화당 할 것 없이 '보호무역'을 외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미국을 세계 1위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던 '자유무역'이 오히려 자국민을 밥 굶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호무역’이 지금 미국 대선 국면의 시대정신이 된 셈이다.

멍청한 백인 이미지의 '막말 트럼프'는 중국이 뺏어가는 무역 이익을 되찾아 오겠다며 미국 국민들 마음에 분노의 불길을 부채질하며 대선 불판을 달구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중국, 멕시코 등 주요 교역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최고 45%의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한다는 '극단적 보호주의'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또 '부자인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더 이상 '돈벌어가는 동생들'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다.

꺼져가는 민주당 대선주자 샌더스는 지난해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한·미 FTA가 체결되면서 미국 내 일자리 7만 5,000개를 잃어버렸고 미국 제조업이 쇠락하는데 '나쁜 무역협정'들이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기고했다.

이 말을 하는 샌더스가 무서운 게 아니다. 문제는 클린턴이다. 지금 미국 대학생들은 샌더스 티셔츠를 사서 입고 다니며 지지하고 있다. 그래야 젊은이들의 시대정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젊은이 중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하면 '왕따'가 된다.

클린턴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샌더스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클린턴도 보호무역에 탑승할 채비를 마치고 있다. 클린턴은 이미 8년 전 오바마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트럼프와 클린턴의 본격 대선 경쟁이 시작되면 클린턴은 이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작년 우리나라 대미 무역흑자는 259억 달러였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의 7%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되든, 특히 트럼프가 되면 오래전 도장 찍고 잘살고 있는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촛불'로 온 나라를 불태웠던 미국산 소고기 재협상도 예상된다. 지금은 생후 30개월 미만인 소의 살코기에 한해 수입하고 있으나 늙은 소고기도 들어 올 것이다. 우리의 최대 수출품, 자동차 특혜관세도 폐지될 수 있다.

27세에 영국 캠브리지대 강단에 섰던 장하준 교수는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반대했었다. "60년대 우리가 무역을 개방했으면 포항제철, 삼성전자, 현대차도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이런 기업을 보호무역 장벽 없이 키울 수 있었겠는가," "우리나라 소득수준, 생산성이 미국, 스위스, 일본, 독일과 비교하면 50~60% 수준이다. 우리가 85% 수준이면 개방해서 경쟁으로 더 잘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하면 되겠나"라고 했다.

또 장 교수는 "한·미 FTA 등 자유무역은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하면 자극이 되어 좋은데 수준 차가 나면 후진국한테 손해"라며 "단기적으로는 무역이 확대되지만 장기적으로 후진국이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때 후진국이었던 한국의 산업은 정부의 각종 지원과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성장했다.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정치, 안보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심대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지금 워싱턴의 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트럼프'의 당선도 염두에 두고 미 조야를 상대로 '좋은 한국'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에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은 1871년에 제너럴셔먼 호(General Sherman號)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의 침입에 맞서서 싸우지 않는 것은 화평하자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화평을 주장하는 자는 매국노이다(洋夷侵犯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글을 새긴 척화비를 전국 각지에 세우고, 단호한 쇄국정책을 천명하였다.

또 중국이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봉기, 또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북경 침공 등의 사건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된 것은 문호를 개방한 때문이라 믿었다. 이로 인해 집권 첫 시기부터 청나라와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제외한 모든 대외관계를 차단하였다.

그리고 당시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를 타도하고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일본의 메이지 정부(明治政府)를 서양 오랑캐와 같은 무리로 인정하고, 종래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전통적인 교린관계마저 거부해 버렸다.

미국이 대선 이후 흥선 대원군처럼 '쇄국정책'을 펼지도 모른다.

호안우보(虎眼牛步)란 말이 있다. 호랑이의 눈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그러나 소처럼 서서히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도 매서운 범의 눈을 가지고 느려도 쉬지 않고 결국 말보다 빨리 가는 소걸음으로 예상되는 '무역마찰' 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조선과 해운 구조조정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지금 정부가 미 대선의 결과 여하에 어떤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편집자주: 필자 윤삼수는 경향신문 기획사업국장,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거쳤으며, 현재 시도 쉬핑(홍콩) 한국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한양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경제 칼럼니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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