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관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의료서비스 접근성 고려해 수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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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관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의료서비스 접근성 고려해 수정돼야
  • 부산시 해운대구 조라희
  • 승인 2020.10.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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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해
임신 초기 처벌 없으나, 낙태죄 현행 유지
의료서비스 접근성 낮추는 절차 없어져야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정부가 지난 7일 입법예고했다. 의사의 진료거부권 명시와 주수 제한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여전히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형법 개정안에 따르면, 의사가 개인적 신념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 환자를 임신·출산 상담기관으로 안내해야 한다.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해볼 때 매우 이례적인 부분은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한 후 다른 병원이 아닌 상담기관으로 먼저 안내된다는 것이다.

의사가 손을 내밀고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명시해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 pixabay 이미지).
의사가 손을 내밀고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명시해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 pixabay 이미지).

이 절차는 빠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지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의사가 인공임신중절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 상담기관으로의 권유가 아닌, ‘의사가 환자에게 진료 거부를 불쾌하지 않도록 상황을 설명한 후, 즉시 다른 의사나 기관을 환자에게 소개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돼야만 한다.

프랑스에서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때는 이를 환자에게 통보해야 하며, 거부 시에도 진료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의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다만 응급상황이거나 인도적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경우에는 프랑스 공중보건법에 의해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지를 원하는 경우 보건소 등에 설치된 임신ㆍ출산 종합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 상담사실확인서를 받은 후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친 후에야 병원을 방문할 수 있다. 이는 여성이 낙태 결정을 내리기 전 충분한 숙려기간을 거친 것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조치로 보인다.

의사의 진료 거부 후 상담기관으로 보내지며,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지를 원하는 경우에도 상담 후 24시간 이상 숙려기간을 거쳐야 하는 등의 절차는 여성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숙려기간을 거친 후 병원을 찾아갔으나 진료를 거부당해 다른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24주가 지나버려 처벌을 받는 상황이다.

개정안은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요건이 없어도 임신한 여성이 자기 의사에 따라 낙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임신 15~24주엔 성범죄에 의한 임신이나 임부의 건강위험 등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인정된다. 25주 이상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임신 주수의 기준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생리주기가 항상 불규칙하거나 몇 달씩 건너뛰는 등 사람마다 변수가 있어 스스로 정확한 생리일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4주라는 기준만으로 모든 처벌을 판단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낙태를 결정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혼자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낙태 문제를 여성의 책임으로만 두는 시선도 변화해야할 때다. 낙태죄 완전 폐지 문제를 떠나 낙태가 여성만이 처벌받아야하는 대상이라는 점부터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낙태처벌 수준에 대한 논의 이전에 아이를 낳아 기르기 좋은 세상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미래를 꿈꾸고 싶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할 것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후 올해 말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하도록 했다. 그 이후 1년 6개월 만에 정부가 개정안을 내놓은 지금,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사실상 낙태죄가 그대로 유지되는 법 내용에 대해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여성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절차가 포함돼 있는 형법 개정안에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환자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고려한 후 법안에 마땅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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