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말무덤(言塚)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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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말무덤(言塚)에서 배운 것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0.09.0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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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폭언, 말폭탄이 일상화된 사회
경북 예천의 ‘말무덤’에서 자아 성찰 기회
‘신이 인간의 입에 마스크를 씌운 뜻’은 뭘까

바이러스가 인간 세상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팬데믹(pandemic)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허둥대는 인간들. 코로나 마스크 너머 과속, 과밀, 과잉의 시간들이 오버랩된다. 코로나19 앞에 하늘님도, 나랏님도, 그 누구도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됐다. 2020년은 코로나19가 이미 삼킨 형국. 2021년, 2022년은 괜찮아질까? 글쎄다. 앞날을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문명세계, 인간의 시간을 멈춰세울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이 와중에도, 인간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할 말, 못할 말, 쓸말, 버릴 말, 말장난을 하거나 무책임한 말들이 마구 뒤섞인다.

지난 4일 정치권에선 ‘패륜 공방’이 벌어졌다. 경제 회생을 위한 국채 발행을 두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패륜 정부’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그게 왜 패륜인가, 경제회생을 외면하는 게 도리어 패륜”이라고 맞받았다. 이 정도는 점잖은 말싸움이다.

지난해 3월, 당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퍼부었다.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같은 당 민경욱 대변인은 되레 “표현의 자유까지 훼손하나”라며 나 의원을 두둔했다.

경북 예천의 말무덤 안내판과 고분을 방불케하는 말무덤(사진: 박창희)
경북 예천의 말무덤 안내판과 고분을 방불케하는 말무덤(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코로나19의 원인과 재확산, 의사 파업, 검찰·언론개혁 등을 둘러싼 논란과 시비가 끝간 데 없이 이어진다. 상식과 합리를 앞세운 의견보다 진영 논리와 좌우 이념에 갇힌 논쟁이 주류다. 삿되고 헛된 말들이 난무한다.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다니고, 막말 바이러스가 횡행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적·사회적 해법을 찾기보다,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목소리들이 매체의 확성기를 타고 더 크게 전파된다.

세간에 화제를 몰고온 ‘시무(時務) 7조’는 말과 글의 소통과 불통의 현실을 보여준다. 자신을 ‘먼지같은 사람’ 진인(塵人)이라 소개한 조은산 씨는 청와대 게시판에 현 시국의 문제점에 대해 공박하고 대책을 청원했다. 이에 대해 글쟁이로 알려진 림태주 시인이 반박하고 진인이 재반박하면서 논쟁이 격화됐다.

진인의 글에 대해 림태주가 “너의 글은 맥락을 이해 못하고 삿되고 사악하다”고 반박하자, 진인은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의 것은 흉하다”고 맞받았다.

주고 받은 언어는 격렬했지만, 모처럼 읽을거리·생각거리를 던져준 사회적 논쟁이라 할만 하다.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논쟁에 풍류가 있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논쟁의 품격이 다소 떨어졌고, 무엇보다 끝이 찜찜했다. ‘상소(上疏)-하교(下敎)’의 형식은 그럴 듯했지만, 현란한 수사와 과도한 풍자, 삭지 않은 날것의 표현 등은 비수가 되어 독자에게 다가왔다. 이 논쟁의 뒤끝은 악성 댓글로 채워졌다. 블로그와 SNS, 언론 지상을 달구던 두 사람의 글은 이후 지독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한차례 공방 후 진인은 이런 글을 남겼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글에 대한 혹평은 저 또한 그렇듯 큰 상처입니다. 정치를 놓고 글을 들어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펜과 펜이 부딪혀 잉크가 낭자한 싸움에 잠시 인과 예를 잊었습니다. 또한 건네는 말을 이어받음에 경어를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참 연배가 낮습니다.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에, 림태주 시인도 댓글을 올렸다. “조 선생의 글이 그러했듯이 내 글도 무분별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좌든 우든 상식과 교양의 바탕에서 견해를 나누고, 품위를 잃지 않는 논쟁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림 시인은 “(페이스북에 올렸던) 하교 글은 내린 게 아니라 친구보기로 돌려 놓았다. 이유는 낯선 계정에서 몰려와 하도 막말과 쌍욕으로 도배를 해서 방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뜻하지 않게 겪었을 고뇌와 낭패는 보지 않아도 절로 짐작된다.

경북 예천 말무덤 공원에 세워진 석비(사진: 박창희).
경북 예천 말무덤 공원에 세워진 석비(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지난달 일행과 함께 경북 북부 영주-안동-예천으로 돌다가 ‘말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저런 시국 이야기 끝에 언성이 높아졌고, 누군가가 ‘말무덤’ 이야기를 꺼냈다. “무신 말들이 이리 많노. 씰데없는 말은 싸그리 말무덤에 갖다 묻어뿌자!”

말무덤? 처음엔 마총(馬塚)인줄 알았다. 실제 국내엔 전설을 베고 잠자는 말무덤이 충주, 보은, 달성, 거창 등에 산재해 있다. “말(馬)이 아니고, 말(言)이라니까!” 같은 말이지만 발음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말. 색다른 느낌이 들어 일행은 가 보기로 말을 모았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다소 한갓진 농촌마을이었다. 마을 들머리의 도린곁에 아닌게 아니라 ‘말무덤’이라 적힌 비석과 왕릉 같은 무덤이 눈앞에 나타났다.

"약 500년 전, 예천 지보면에 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성씨가 다른 각성바지가 모여 사는 마을이었는데, 작은 일에도 패를 이루어 자주 싸웠다. 말로 인한 싸움과 분란이 계속되던 어느날, 과객이 비책을 일러주니 그게 말무덤이었다. 이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싸움을 일으키는 거짓말, 남을 헐뜯고 상처 주는 말, 쓸데 없는 말, 안해도 될 말 등을 종이에 써서 장례를 치르듯 한데 묻었다. 그후 마을의 분쟁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

전설에 기대어 경북 예천군은 몇 년전 이곳에 정자와 조형물을 만들고 말과 관련한 속담·경구를 적은 석비들을 세워 ‘말무덤 공원’을 조성했다. 말무덤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하니, 스토리텔링 거리로도 제격이다.

말무덤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초등학생이라도 금방 알아차린다. 아이들 교육현장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둘러볼 필수 코스로 홍보해도 좋을 것 같았다. 갑자기 귓전에 환청, 아니 이명 같은 아우성이 쏟아졌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맨날 싸움박질에 여념이 없는 국회에서 쏟아지는 막말들이었다. 귀를 막았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말이 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정파와 진영, 좌우로 나뉘어져 물어뜯고 싸우는 저 입들, 저 표독한 언사들, 끊이지 않는 막말과 말폭탄들….

자고로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三寸之舌)’고 했다. 사람 입에서 나온 독은 뱀독보다 무섭다고도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짓는 죄업(罪業)은 누구나 피할 길이 없다. 몸으로 짓는 죄업이 신업(身業), 마음만으로 나쁜 뜻을 품는 것이 의업(意業), 쏟아내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구업(口業)이다. 세 가지 죄업 중 가장 안좋은 것이 구업이라고 한다. 말조심, 입조심하라는 말이다. 누군가 시 한수를 가져왔다.

"서로 가까이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며/ 신은 인간에게 채찍 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입을 가만히 두라는 뜻이었을까…(이병률의 시 <‘숨> 부분)"

말무덤을 돌아나오는 길은 적막했다. 누가 제안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묵언수행이 이어졌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예천 말무덤 공원에 세워진 조형물. 하늘을 배경으로 입술에 손을 가리고 있다(사진: 박창희).
예천 말무덤 공원에 세워진 조형물. 하늘을 배경으로 입술에 손을 가리고 있다(사진: 논설주간 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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