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백성이란..." 청와대 게시판 ‘시무 7조’ 놓고 조은산-림태주 첨예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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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백성이란..." 청와대 게시판 ‘시무 7조’ 놓고 조은산-림태주 첨예 공방
  • 취재기자 안시현
  • 승인 2020.08.3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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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태주 시인, “맥락 이해 못하고 사악하다” 반박글
첫글 올린 조은산, “2000만 백성 짓밟는 게 정의냐” 재반박
현 시국 평가 문장가들의 글 솜씨 대결도 관전 포인트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시무(時務) 7조’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린 ‘진인’ 조은산 씨가 자신의 글을 통렬하게 반박한 림태주 시인을 향해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해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 2000만 백성을 짓밟는 게 정의냐”며 재반박하는 글을 게재해 두 사람 사이의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앞서 지난 28일 림태주 시인은 조은산 씨가 올린 ‘시무7조’ 청원 글에 대해 임금의 하교 형식을 빌어 “너의 문장은 화려하였으나 부실했고 충의를 흉내내었으나 삿되었다. 너는 헌법을 들먹였고 탕평을 들먹었고 임금의 수신을 논하였다”며 그의 청원글을 논박한 바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 '시무 7조'를 올린 조은산 씨의 블로그(사진: 조은산 블로그 캡처).
청와대 게시판에 '시무 7조'를 올린 조은산 씨의 블로그(사진: 조은산 블로그 캡처).

이에 대해 조은산 씨는 30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백성 1조에 답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림 시인의 글을 재반박했다. 그는 “너(림태주)의 백성은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라면서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삼천만의 백성뿐이며, 삼천만의 세상이 이천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비판했다. 조 씨는 “나는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상소를 썼다”면서 자신의 처지와 입장도 밝혔다.

림태주 시인의 글에 대해 조 씨는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것은 흉하다”면서 림 시인의 문장력에 탄복하는 심사도 감추지 않았다. 앞서 림태주 시인도 조은산 씨의 글에 대해 복잡한 양가감정을 드러낸 바 있다.

글 말미에서 조 씨는 “건네는 말을 이어받으면서 경어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한참 연배가 낮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말도 남겼다.

‘시무 7조’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되자, 림 시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반박글을 내린 상태다.

조은산 씨는 자신을 ‘다섯에서 스물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난방이 되는 집에서 살아 본적이 없으며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몸을 맞대었고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배달일을 시작해 공사판을 전전하여 살아남은’ 이 땅의 30대 가장이라 소개했다. 이에 반박글을 쓴 림태주 시인은 지난 1994년 계간 ‘한국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시보다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활동을 주로 해왔다. 

 

■다음은 림태주 시인의 반박글에 대한 조은산 씨의 재반박글 전문이다.

너의 글을 읽고 너를 찾았다.

지난 날 네가 남긴 글을 보니 나에게 던져진 독설은 독설이 아님에 고마웠다.

나는 너의 글을 읽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치와 논리를 배제하고 네 글에 담긴 유려함을 먼저 보았다.

문단과 문장의 절묘한 배분을 보았고 일곱의 문단을 나눈 고작 여섯의 공백을 보았다. 읽고자 하는 이의 노고를 무시하는 듯한 너의 기백에 한 발 물러섰으나 장강의 수세와 같은 단절없는 흐름에 나는 압도되어 빨려 들어갔다.

백색의 바탕에 물 들이듯 언어를 채워 너의 이치와 논리를 자박자박 즈려밟음에 접속사는 부러지는 소리 하나 없고 형용사는 그 자리에 오롯이 깊어나는 설산에 이어진 너의 뒷모습을 길게 그렸다.

너는 무엇을 먹고 자랐는가. 너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왔는가. 너의 글을 보니 묻고자 함이 절실하다.

추레한 나의 속곳에 흉적을 남겨 부끄러운 것이 너의 탓임을 알라.

너의 글 앞에 무너진 나는 너를 미치도록 닮고 싶으나, 어찌 거울을 들어 남의 얼굴을 비출 수 있으랴! 너를 닮지 못함이 분통해 거울을 깨트리듯 내 너의 글을 깨트릴 것이니 노여워 말고 새겨 들어라.

너는 나의 글이 부실하고 삿되었으며 감히 임금의 수신을 논하였다 말했다. 호도하며 혹세무민하고 졸렬하여 억지스럽고 작위에 휩쓸려 사실과 의견을 구분 못하였다 말했다.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것은 흉하다.

塵人 조은산이 묻는다.

너의 백성 1조는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 뺏는 쪽이더냐 빼앗기는 쪽이더냐. 임대인이더냐 아니면 임차인이더냐. 다주택이더냐 아니면 일주택이더냐.

네 스스로 너의 백성은 집 없는 자들이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들이고 집이 투기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 했다.

그렇다면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하여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

나는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삼천만의 백성 뿐이며 삼천만의 세상이 이천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

나는 가진 자의 세금을 논하지 않았다. 나는 가진 자의 세율을 논하였고 민심의 척도라 정의했다

나는 백성의 하나됨을 내세웠고, 경상의 멸치와 전라의 다시마를 들어 한 그릇 가락국수로 내 소망을 대신 전했다.

또한 너는 편전에서 분분하고 저잣거리에서 분분한다지만, 정작 너는 지상파 채널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전 대통령으로 분해 대사를 읊는 전 정권의 개그맨들은 어디서 분분하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다.

나의 천한 글이 벽서가 되어 이리 붙고 저리 붙어 사방팔방에 퍼짐이 네가 말한 활짝 핀 헌법의 산물이더냐.

나는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상소를 썼다. 정당성을 떠나 누군가의 자식이오 누군가의 부모인 그들을 개와 돼지와 붕어에 빗대어 지탄했고 나는스스로 업보를 쌓아 주저 앉았다. 너는 내가 무엇을 걸고 상소를 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감히 아홉의 양과 길 잃은 양, 목동 따위의 시덥잖은 감성으로 나를 굴복시키려 들지말라.

네가 아무리 날고 기는 시인이라 한 들 초야에 묻힌 목소리가 더 한이 깊은 법, 나의 감성이 드러나면 너는 물러설 것이다.

나는 다섯에서 스물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난방이 되는 집에서 살아 본적이 없으며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몸을 맞대었고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배달일을 시작해 공사판을 전전하여 살아남았다.

나는 정직한 부모님의 신념 아래 스스로 벌어 먹었으며 가진 자를 탓하며 더 내놓으라 아우성치지 않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 그것이 네가 말하는 조은산의 진실이고 삶이었다.

시인 림태주여! 마지막으로 너에게 꼭 듣고 싶은 것이 있다. 작심하여 물으니 엄중히 답하라.

겨울, 창고를 뜯어고쳐 만든 단칸방에서 언 발을 동동 구르며 형제를 부둥켜 안았던 가난한 소년에게 목동은 왜 오지 않았는가?

너는 나의 가난을 아는가. 목동은 나에게 따스한 구들장을 내어 주었는가?

어두운 차로를 급히 내달리던 어느 소년의 위태로운 밤에 목동은 어디 있었는가. 너라도 하나의 별이 되어 그의 앞길을 비춰 주었는가?

공사장의 매연에 질식해 검은 가래를 토하던 먼지같은 청년의 하루를 목동은 함께 하였는가? 너라도 너의 푼돈을 나누어 공수를 채워주지 않고 어디서 무얼 하였는가?

나는 너를 끝까지 찾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대의이고, 나의 실리이고, 나의 이성이다라고 너는 말하였는 바,

너의 대의와 실리와 이성은 소년의 추위보다 못한 것이고 청년의 가난보다 못한 것인가?

나는 나의 순수했던 가난이 자랑스러워 힘껏 소리 높여 고한다. 비켜라 강건한 양에게 목동 따위는 필요없다.

시인 림태주여.

이 곳 저 곳 너의 글이 올랐다. 나 역시 그렇듯 너의 글에 관한 악평에 상처받지 말라. 너 또한 네 편에 선 내 글을 보았다면, 명문이오 달필이라 평했을 것이고, 너의 글은 내 편이 아니니 다만 천문이자 졸필로 폄하될 것이다.

정치가 무어냐는 너의 물음에 마지막으로 답한다. 지금의 정치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천이십년 팔월

인천 자택의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塵人 조은산이 답하였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시인 림태주 님의 글은 저와 같은 못배운 자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글에 대한 혹평은 저 또한 그렇듯 큰 상처입니다. 정치를 놓고 글을 들어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인 림태주 선생님.

펜과 펜이 부딪혀 잉크가 낭자한 싸움에 잠시 인과 예를 잊었습니다. 또한 건네는 말을 이어받음에 경어를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참 연배가 낮습니다.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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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림태주 시인의 조은산 씨 ‘시무7조’에 대한 반박문 전문이다.

'시무 7조'에 대한 림태주 시인의 반박글(사진: 림태주 시인 페북 캡처).
'시무 7조'에 대한 림태주 시인의 반박글(사진: 림태주 시인 페북 캡처).

내 너의 상소문을 읽었다. 충정이 엿보이더구나. 네가 생업에 일념하도록 평안한 정사를 펼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하고 슬펐다. 국사가 다망해 상소에 일일이 답하지 않는다만, 너의 ‘시무 7조’가 내 눈을 찌르고 들어와 일신이 편치 않았다. 한 사람이 만백성이고 온 우주라 내 너의 가상한 고언에 답하여 짧은 글을 내린다.

나는 바로 말하겠다. 너의 문장은 화려하였으나 부실하였고, 충의를 흉내 내었으나 삿되었다. 너는 헌법을 들먹였고 탕평을 들먹였고 임금의 수신을 논하였다. 그것들을 논함에 내세운 너의 전거는 백성의 욕망이었고, 명분보다 실리였고, 감성보다 이성이었고, 4대강 치수의 가시성에 빗댄 재난지원금의 실효성이었다. 언뜻 그럴 듯했으나 호도하고 있었고,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편파에 갇혀서 졸렬하고 억지스러웠고, 작위와 당위를 구분하지 못했고, 사실과 의견을 혼동했다.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은 너무 멀어서 애달팠고, 가닿을 수 없이 처연해서 아렸다.

너는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선왕들의 어전을 기억한다. 선왕의 출신이 거칠고 칼을 내세워 말하는 시기에는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려 따르고 아첨하기 일쑤였다. 의견이 있을 리 없었다. 문벌귀족과 권문세가들이 왕권을 쥐락펴락 위세를 떨칠 때에는 일치된 하나의 의견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어떠하냐? 아직도 흑과 백만 있는 세상을 원하느냐? 일사불란하지 않고 편전에서 분분하고, 국회에서 분분하고, 저잣거리에서 분분한, 그 활짝 핀 의견들이 지금의 헌법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

너는 명분에 치우쳐 실리를 얻지 못하는 외교를 무능하다고 비난하였다. 너는 이 나라가 지금도 사대의 예를 바치고 그들이 던져주는 떡과 고기를 취하는 게 실리라고 믿는 것이냐? 대저 명분이란 게 무엇이냐? 그것은 백성에 대한 의리를 말하는 것이고, 이 나라의 자존과 주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더냐. 가령, 너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 친구가 있다고 하자. 반성할 줄도 용서를 구할 줄도 모르는 그 친구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바라는 일이 화해를 해치는 일이더냐. 돈 몇 푼 받고 합의하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친하게 지내는 것이 네가 생각하는 정의이고 실리더냐. 나에게 명분은 의의 살아있음이다. 고깃덩이가 아니라 치욕에 분노하고 맞서는 게 나의 실질이고, 백성에게 위임받은 통치의 근간이다. 너희의 평상어를 빌리면, 무릇 백성의 실리는 돈이 아니라 가오에 있지 않더냐. 나도 지지 않으려 버티고 있으니 너도 심지를 꿋꿋하게 가다듬어라.

너는 백성의 욕망을 인정하라고 하였다. 너의 그 백성은 어느 백성을 말하는 것이더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 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 치는 것이냐. 나에게 백성은 집 없는 자들이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들이고, 집이 투기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땅값이 풍선처럼 부풀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수십 채씩 집을 사들여 장사를 해대는 투기꾼들 때문에 제 자식들이 출가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위화감에 분노하고 상심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나의 정치는 핍박받고 절망하고 노여워하는 그들을 향해 있고, 나는 밤마다 그들의 한숨소리를 듣는다.

너는 지금 이 정부가 이성적이지 않고 감성에 치우쳐 나랏일을 망치고 있다고 힐난하였다. 네가 말하는 이성과 감성의 의미를 나는 알지 못하겠다. 열 마리의 양을 모는 목동이 한 마리의 양을 잃었다. 아홉 마리의 양을 돌보지 않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는 목동을 두고 너는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가여워하는 그 긍휼한 상심이 너에겐 감성이고 감상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그것이 지극한 이성이고 마땅한 도리라 여겨지는구나. 그 한 마리를 찾지 않는다면 아홉 마리가 곧 여덟이 될 것이고, 머지않아 남은 양이 없게 될 것이다. 그 한 마리가 너일 수도 있고, 너의 가족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다. 너는 나를 내팽겨 칠 것이냐. 나는 너를 끝까지 찾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대의이고, 나의 실리이고, 나의 이성이다.

세상에는 온갖 조작된 풍문이 떠돈다. 그릇된 찌라시가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나의 자리는 매일 욕을 먹는 자리다. 불철주야 정사에 여념이 없는 나의 일꾼들도 시시비비를 불문하고 싸잡아 비난받는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학문을 깨우치고 식견을 가진 너희 같은 지식인들이 그 가짜에 너무 쉽게 휩쓸리고 놀아나는 꼴이다. 무지는 스스로를 망치는데 쓰이지만, 섣부른 부화뇌동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어 모두를 병들게 한다. 내가 나를 경계하듯이 너도 너를 삼가고 경계하며 살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백성의 한숨을 천명으로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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