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관짝소년단'에 대한 샘 오취리의 비판과 '선량한 차별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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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관짝소년단'에 대한 샘 오취리의 비판과 '선량한 차별주의자들'
  • 논설주간 송문석
  • 승인 2020.08.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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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 행동이 소수자와 약자에게는 차별과 혐오표현 될 수도
'관짝소년단' 사진 인종차별 논란 학교에서 사후에라도 숙고했어야
학생들은 악의 없는 행동이라자만 교육적 차원서 논의 아쉬워
오취리 문제 제기에 우리 사회 폭력적 공격은 또 다른 인종차별 행위

경기도 의정부고 학생들이 찍은 한 장의 졸업사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해마다 기상천외한 분장의 졸업사진으로 보는 사람들을 피식 웃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올해 이들이 아프리카 가나의 상여꾼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사진을 올리면서 인종차별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샘 오취리
방송인 샘 오취리가 의정부고 학생들의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과 함께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밝힌 인스타그램. 오취리는 하루 뒤 일부 표현에 대해 사과 입장을 다시 올렸다(사진: 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캡처).

논란이 확대된 데에는 방송인 샘 오취리의 말이 컸다. 오취리가 학생들의 흑인 분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비판이 인화성을 갖게 된 것은 그의 모국이 ‘가나’이고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호주’ 출신의 ‘백인’ 방송인 샘 해밍턴이 이 문제를 두고 같은 말을 했더라도 그렇게 논란이 됐을까? 오취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옮겨본다.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퍼요. 웃기지 않습니다!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문화를 따라 하는 것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되요?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평소 방송에서 샘 오취리의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면서 건강한 청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와 이국땅에서 문화적응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가 방송에서 흑백 차별 문제나 국가 간 빈부격차 문제가 이야기의 소재로 나왔을 때 언듯 비친 씁쓸하고 슬픈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는 했다.

의정부고 학생들의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이 인터넷에 처음 올라왔을 때 나는 즉각적으로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조금 지나 샘 오취리가 문제의 글을 인스타에 올렸을 때 “이 친구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오취리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빈부격차 지역갈등 세대차이 등 예민한 문제가 테이블에 올려졌을 때 이성적이고 숙의적인 태도보다는 감정적이고 윽박지르며 삿대질부터 먼저 하고 보는 우리의 행태가 또 반복될 것이 눈에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취리를 향한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거의 융단폭격을 하듯 비난과 비판이 그에게 쏟아졌다.

“어린 학생들이 재미로 찍은 사진까지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런 댓글은 점잖은 편이었다. “흑인 피부색이 검어서 검게 칠한 것뿐인데 별게 다 불편하다”, “한국인이 블랙페이스를 모른다고 왜 욕을 먹어야 하냐”, “다른 나라 가면 공장에서 돈이나 벌지 모르지만 한국 와서 좀 뜨니 훈계질을 하고 있다”, “감히 한국 교육을 비하했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샘 오취리가 어떻게 했을까? 이주민 중의 소수자인 그가 선택할 길은 너무나 명백했다. 한국 사람도 이런 무지막지한 소나기 펀치가 쏟아지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텐데 약자 중의 약자에 속하는 ‘가나 흑인청년’을 보호해줄 방패와 갑옷은 이 땅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오취리는 하루만에 인스타그램에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다”는 사과문을 올리고 항복했다.

자, 오취리가 사과했으니 이 문제는 정리가 된 건가? 의정부고 학생들의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은 학창시절 웃자고 한 행동에 불과하고, 흑인이기 때문에 까맣게 분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전혀 문제거리가 안되는가?

일부에서는 샘 오취리의 과거와 현재의 언행을 들어 그가 인종차별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오취리가 과거 동양인 비하를 연상케 하는 눈 찢기 제스처를 했다거나, K팝을 비하하는 해시태그를 직접적 관계도 없는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을 비판하는 인스타그램에 붙였다며 몰아세웠다.

오취리의 눈 찢기 행동은 또 다른 인종차별 요소라는 점에서 분명 비판 받아야 하고, K팝을 비하하는 해시태그 역시 맥락 없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건 당연히 오취리가 비판받고 해명해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이 ‘블랙페이스’ 혐의를 벗는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또 오취리가 그런 전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제기한 ‘관짝소년단’ 논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관짝소년단’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샘 오취리의 문제 제기에 대한 우리의 비판까지 깨끗이 정리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냥 힘으로 눌러 땅속에 묻어버린 건 아닌가.

의정부고 학생들의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이 논란이 막 됐을 때 학교가 먼저 나서서 교육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주길 바랐다. 학생들이 일반인들도 처음 들어봤거나 이해가 부족한 ‘블랙페이스’ ‘흑백차별’ 등 개념을 알고 있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학생들이 악의를 가지고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을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깊은 생각하지 않고 '한번 웃자고' '재미 있으니까' 흑인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을 게 틀림없다.

학생들이야 그럴수 있다지만 학교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이 문제를 늦게라도 교육적으로 접근해 학생들과 논의를 해 볼수는 없었을까?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이 흑인을 희화화한 ‘블랙페이스(blackface)’ 행위에 해당이 되는 건 아닌지, 인종차별의 소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학생자치회와 깊은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리했더라면 이 문제가 한층 성숙한 수준에서 전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과문인지 모르겠으나 의정부고가 그렇게 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도 없고 이날 현재까지 홈페이지에서도 교육적 차원의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김지혜가 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평범한 우리 모두들도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한 이주민에게 우리가 흔히 칭찬과 격려의 의미로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라고 하는 말이 그들에게는 ‘아, 우리를 온전한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구나’ 또는 ‘우리가 언제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나?’ 등으로 받아들인단다. 또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하는 말은 장애인의 현재 삶에 희망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 한다. 말 하는 사람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혐오표현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별을 제기하면 “악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별은 '선의'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른다고 김지혜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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