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슈사쿠의 '위대한 바보'·안치환의 '아이러니'가 외치는 현실의 역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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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슈사쿠의 '위대한 바보'·안치환의 '아이러니'가 외치는 현실의 역설을 보며
  • 김민남
  • 승인 2020.08.0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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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슈사쿠가 그린 '위대한 바보'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자
김수환 추기경도 "나는 바보다'라고 스스로를 낮춰
가수 안치환의 노래 '아이러니'를 들으며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힘을 모아보자

일본 소설가 슈사꾸는 "꾸밈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꾸밈없이 모든 사람을 믿으며, 비록 자기가 속고 배반을 당해도 그 믿음과 애정의 등불을 계속해서 지켜 나가는 사람"을 '위대한 바보'로 그리고 있다. 

일본 카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1923-1996)의 소설 <바보>에 나오는 얘기다. 바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소설의 주인공 프랑스 출신의 가스통은 우선 그의 형편없는 외모(外貌)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늘 무시당한다. 그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속고, 이용당하고 배반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들을 믿고 따라 나선다. 

그를 딱하게 여긴 한 여자가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힐책한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어 그는 "산다는 것 정말 어려워요. 힘들어요. 나 겁쟁이에요. 그래서 평생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돼요." 여자는 그를 떠나보내면서 그 바보 남자가 단순한 바보가 아니라 '위대한 바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 다른 사람을 티없이 사랑하는 것, 꾸밈없이 믿는 것, 배반을 당해도 끝없이 믿음과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 이것이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내는 몸부림이다. 

일찍이 고(故) 김수환 추기경께서 "나는 바보다"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스스로 자신을 진정한 바보라고 믿을 수 있다면 남들이 바보라고 하든, 속이든, 또 배반하든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쉽지 않는 일이다. 우리 주위에서 이런 위대한 바보가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우리는 요즘 세태에서 남을 속이고 미워하고 배반하는 일을 거의 일상적으로 보고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심한 배신감을 느끼지 못한 채,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연유(緣由) 때문이다. 

동물들도 좋은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역설이 가득 찬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아보자(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동물들도 좋은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역설이 가득 찬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아보자(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요즘 장안의 화제(話題)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대중가수 안치환의 노래 <아이러니>(irony, 역설, 逆說)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아이러니 왜 이러니
죽숴서 개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아이러니 왜 이러니 
다 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잘가라, 기회주의자여

안치환의 노래 <아이러니>의 가사 일부다. 기대와는 달리 실망적인 현실을 꼬집은 '역설'의 대중가요다.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삶이 더 팍팍해지고 힘들게 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는 '역설'이다. 경제는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3.3)으로, 역성장 폭(逆成長幅)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큰 편이다. 남북관계나 북핵 문제는 여전히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북한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고, 한미(韓美) 및 한일(韓日)관계는 소음이 작지 않은 듯하다. 

최근에 와서는 무엇보다 집값이 불안정해지면서 내집 장만도 쉽지 않은데다, 내 집 한 채를 갖고 있어도 세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으니, 집 한 채만 갖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걱정이 작지 않다고들 한다. 

특히 집을 새로 장만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들의 실망, 낭패감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다. 이를 전면적-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과 노력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서고 있는 요즘이다.

특히 그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비교적 좋은 경제 환경에서 삶을 꾸려온 국민들은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 경제 여건을 견디고 이기고자 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나 강대국들의 무역전쟁 등 어려운 안보-경제 환경은 더 이상 정부의 '설명' 자료가 되기 어렵다. 국민소득(GDP) 3만 달러대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건 이제 절대적 당위(當爲)다. 달리던 자전거가 멈추면 곧 넘어지기 일쑤다. 경제도 성장(成長) 엔진(engine)이 한 번 꺼지면 다시 가동(嫁動)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다시 한 번 허리끈을 졸라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국인 특유의 '기'(氣)를 펼 때다.

2020년 8월 1일
묵혜(默惠) 김민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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