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차별 구조 등 페미니즘 의미 일깨워
페미니즘 운동이 더는 생경한 것이 아니고 거의 일상화된 현재,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법한 책이 있다.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20세기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도했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 꼽히는 울프는 여성인 자신을 위해 글을 썼던 여성 작가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만일,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면, 그녀는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셰익스피어만큼 성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봤다. 그 시대의 어떤 여성도 남성인 셰익스피어의 마음 상태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누이는 셰익스피어만큼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했을지라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문법과 논리학에 무지했을 것이다. 또한, 부모의 강요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해 타인의 삶을 풍부하게 관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셰익스피어는 사회적 차별이나 결혼 등의 방해 없이 오롯이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최고의 작품을 써낼 수 있었다고 울프는 말한다.
울프가 역사에서 여성의 부재를 상상력으로 메우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누이동생을 가상으로 내세워 여성차별의 구조적 속성을 드러낸 시도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도 남성이 누리는 것들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는 페미니즘 운동을 향해 ‘여성이 남성이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남성보다 실력이 없기 때문이지 여성이 차별받고 있어서가 아니다’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울프는 개인이 아무리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사회구조가 한쪽 성을 배제한다면, 이는 개인의 노력과 결과와도 무관할 수 있음을 비유를 통해 말하고 있다.
국내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이 대두하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출간된 지 100여 년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여성 독자가 울프의 책을 읽고, 공감하고 배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혹자는 요즘 같은 시대에 살면서 1929년에 쓰인 책을 읽고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공감하고 제 일인 것처럼 느끼는 90년대생들에게 ‘너희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는 조롱 섞인 시선을 보낸 일부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성 화장실·탈의실의 몰래카메라 설치, 여성을 향한 묻지마 폭행, n번방 사건 등 굳이 흉악 범죄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임신, 출산으로 인한 기업의 여성 고용 기피 현상, 맞벌이 가정 내 여성의 독박 육아 문제 등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차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에 관한 문제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독자 투고입니다. 글의 일부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