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과 <삼국지>, 그리고 민심의 간지(奸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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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과 <삼국지>, 그리고 민심의 간지(奸智)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6.04.2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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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강동수

4‧13 총선이 끝난 지 열흘이 더 넘었다. 요란한 확성기 소리와 시끄러운 로고송이 멈춘 거리는 무덤덤한 일상의 소음으로 다시 채워졌다. 그래도 총선이 남긴 여진은 있다. 여야 각 정당은 민의가 바꾼 새로운 지형도에 속에서 또 다른 셈법으로 부산하다. 내년 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노린 이합집산이 일으키는 먼지는 정치판을 황사처럼 뿌옇게 뒤덮을 게다.

숱한 매체에서,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이번 총선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이미 백가쟁명, 백화제방으로 쏟아놓은 터다. 하지만, 나 역시 이 시대를 사는 장삼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소회가 없을 수는 없다. 해서 늦은 대로 이미 쏟아진 숱한 말 더미에 한 마디 더 보태놓는다. 글쎄, <삼국지>에 비겨 이번 총선을 되짚어 보면 어떨까.

일찍이 후한(後漢)이 쇠망한 자리에 위(魏), 오(吳), 촉한(蜀漢), 세 나라가 들어섰듯 총선이 끝난 이 나라에도 새누리, 더불어민주, 국민의당이라 이름 하는 세 개의 군벌이 솥발처럼 정립(鼎立)했것다. 이 세 군벌이 적벽대전, 아니 4‧13대전에서 병마와 창검을 총집결해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펼쳤던 거다.

이번 ‘4‧13 적벽대전’에서 가장 실익을 거둔 이는 누가 뭐래도 유비 아닌 안철수, '안비(安備)'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터다. 유비가 도원결의로 몸을 일으킨 이래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을 거느리고 원소와 조조 등 당대 군벌에게 의탁해 동가식서가숙, 눈칫밥을 먹었던 것은 다들 아는 일. 마침내 유비는 제갈량을 얻어 오의 손권과 손을 잡고는 조조를 적벽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라는 근거지를 얻어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했것다. 혈혈단신으로 대선전에 뛰어들었다가 세가 달려 ‘문권(文權)’에게 후보를 헌납했고, 새민련에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는 등 유랑하던 안비는 ‘4‧13 적벽대전’에서 더민주와 함께 '박조조(朴曹操)'를 협공해 대승을 거두고 호남이란 근거지를 확보해 천하삼분지계를 이뤘던 거다.

작으나마 오너 대표가 되었으니 천하 제패를 위한 토대는 마련한 셈. 그러나 대세는 중원이다. 자고로 중원을 손에 넣지 못한 자가 대업을 이룰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안비는 근거지 마련에 성공했지만, 유비가 한중(漢中)에 갇히듯 호남에 고립된 형세가 되어 버렸다. 황사 바람을 타고 더불어민주의 문권이 중원을 차지했으니 중원 진출이 호락호락하진 않을 게다. 제갈량을 등에 업은 유비가 오의 뒤통수를 치고 형주와 익주를 얻었으나 결국엔 장비와 관우를 잃고 그 알토란 같은 땅을 오에 도로 빼앗겼듯 호남 영지 사수가 그렇게 쉽진 않을 게다.

그렇다면, 안비의 선택은? 당분간은 캐스팅보트를 쥐고 박조조와 문권 사이를 오가며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호시탐탐 민심이란 이름의 중원 정벌을 노릴 게다. 그러나 중원 정벌이 그렇게 쉬운 일이겠나. 제갈량이 중원을 정벌하겠다고 여러 차례 군사를 일으켰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촉한의 사직이 ‘2대 천자’로 끝난 전례가 있지 않은가. 안비 역시 천하의 대의를 놓치고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박쥐 전략’을 채택한다면 결국은 중원 정벌은커녕 ‘당대 천하’로 끝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이겠다. 벌써부터 일각에선 다가올 ‘대선 대전’에서 안비가 박조조와 ‘보수대연합’이란 깃발을 내세우고 연합전선을 구축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판이다.

‘더불어민주’ 군벌에서 투항한 천정배, 정동영 같은 노회한 장수들을 어떻게 다스려 자중지란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지, 호남 영지의 민심을 어떻게 굳건히 붙잡아 놓을 수 있을 건지도 안비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포인트.

그렇다면 문재인, 손권 아닌 문권(文權)의 운명은? 더불어민주는 이번 ‘4‧13대전’에서 중원을 차지하고, 영남의 일각을 허물어 제1군벌로 부상했으니 겉으론 기세등등하다. 하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주머니 속의 구슬’ 같기만 했던 호남 영지를 안비에게 빼앗겨 버렸고, 민심 쟁탈전에서 ‘국민의당’이 턱밑까지 쫒아왔으니 승리했어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터. ‘더불어민주’의 최대주주이자 대표 장수인 문권 역시 ‘상처뿐인 영광’이랄까, 승리를 만끽할 처지가 아니다. 

‘더불어민주’에 몸담고 있던 호남 출신의 ‘난닝구파’ 제장들이 ‘친노 빽바지’ 파의 등쌀에 못 살겠다며, 줄줄이 안비의 막하로 투항하는 바람에 일대 위기를 맞았던 문권이 아니던가. 손권이 주유(周瑜)에게 대도독을 맡겨 ‘적벽대전’에서 승리했듯 김종인, 김주유에게 병마의 대권을 넘겨주고 위기를 넘겼으나 아직 갈 길은 첩첩산중이던 것이었다.

호남 영지가 ‘국민의당’군에 함락 직전이란 급보를 접하고 단신 호남에 뛰어들어 한바탕 유세전을 펼쳤던 문권이다. 제갈량이 단신으로 오에 찾아가 현하지변으로 조야를 휘어잡아 병마를 빌려온 고사를 본뜬 일이었으나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나버렸다는 건 다들 아는 일. 게다가 더 치명적인 것은 유세를 벌이다가 ‘오버’를 해 버린 것. 강동의 병마를 빌려 주지 않는다면, 천하쟁패의 꿈을 접고 초야에 은거해 버리겠다고 폭탄선언을 했건만, 야속할 손 강동자제(江東子弟)들은 끝내 그를 뿌리치고 안비의 손을 잡아 버렸다. 문권이 천하의 유세가 소진, 장의도 아닌 바에야 이미 돌아서 버린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던 거다.

이것은 두고두고 문권의 발목을 잡을 악재가 될 것인 바 문권에겐 ‘호남 고토’ 수복과 ‘중원 사수’란 절체절명의 과제 두 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셈이다. 어쨌거나, 안비와 경쟁하며 박조조를 몰아붙여야 할 터이지만 매사는 과유불급, 지나치게 몰아붙였다가는 까다롭고 사나운 민심이란 이름의 호랑이에게 제가 오히려 물릴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 아무쪼록 더도 덜도 말고 민심에 반걸음쯤만 앞설 일이다. ‘4‧13대전’의 승리를 앞세워 봉토와 훈작을 내놓으라고 빚쟁이 오복조르듯 투정하는 김주유의 욕심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건지도 관전 포인트의 하나.

‘천하 쟁패’의 또 하나의 주역이 있으니 이름 하여 박근혜, 박조조(朴曹操)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예로부터 도읍을 차지하고 사직을 낀 군벌이 장땡이다. 일찍이 3년 전 ‘대권 대전’에서 조조가 원소를 멸하듯 문권을 격파하고 천하를 접수해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박조조가 아니었던가. 그만 승리에 도취해 독주하는 바람에 조변석개하는 민심의 변덕에 치명상을 입었으니 상전벽해랄밖에. 무정할 손 민심이로다.

박조조가 ‘친박,’ ‘진박’이란 이름의 직할 장수들에게 부월(斧鉞)을 쥐여 주어 ‘4‧13대전’에 백만 대군을 출병시켰을 때의 기세야말로 호호탕탕, 천하에 무서울 게 없던 것이었다. 적벽에 진을 쳤으되 병마가 일으킨 흙먼지가 자욱하고 기슭에 정박한 병선의 깃발이 끝을 모르게 나부끼지 않았던가.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자중지란(自中之亂)’이란 역병이었것다.

박조조가 ‘진박’이란 직할 장수만 총애하여 ‘비박(非朴)’ 장수들의 직첩을 빼앗으려 하니 진중에서 적전분열, 이전투구의 아우성이 메아리(?)쳤던 거다. 나중엔 조조에게 투항했지만 완성(宛城)에서 조조를 야습했던 장수(張繡)처럼 유승민과 김무성이란 막후의 제장들이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지 않나, 믿었던 친박 장수들이 연일 호가호위하며 오히려 주군을 구렁텅이에 빠트리지 않나, 그런 야단법석이 없던 것이었다.

박조조는 언제나 제 편 같기만 했던 천하 부로(父老)들의 ‘콘크리트 민심’에 의지해 배신자들을 척결해 달라고 사자후를 토했으나 민심이 이번엔 되려 자신을 심판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마침내 ‘4‧13적벽대전’에서 안비와 문권 연합군의 ‘화공지계’에 말려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그 숱한 병선과 병마를 잃었다. 살 길을 찾아 허겁지겁 퇴각했던 조조처럼 중원을 잃고 영남 북부로 쫓겨 간 처지가 되었으니 민심의 변화무쌍이 이와 같던 것이었다. 더 치명적인 대목은 이번 대전에서 숱한 장수를 잃어 후계자로 내세울 재목조차 씨가 말라 버린 것.

문제는 박조조의 향후 행보일 터. 오‧촉 연합군에게 쫓겨 퇴각하던 조조는 청개구리처럼 제장들이 가지 말라는 길로만 골라 갔다가 제갈량이 묻어놓은 복병에 이리 당하고, 저리 채이다가 마침내 화용도(華容道)에서 관우에게 무릎 꿇고 목숨을 빌어야 하는 처지가 되지 않았나. 민심에 순응하여 올바른 퇴각로를 찾아야 할 판에 공연히 오기를 내세워 가서는 안 될 길을 고집한다면 박조조 역시 화용도에 빠지지 말란 법이 없을 게다. 출구전략을 제대로 세우란 이야기다.

민심에 귀 막고 불통의 길을 계속 가거나 정치공학적으로 정국을 다루려는 유혹에 빠진다면 다음 대선 대전에서 애써 쌓아올린 사직이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조조의 후손이 후한의 헌제를 밀어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후일 권신 사마의의 후손에게 천하를 빼앗겼던 고사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 때문에 하는 소리다.

우리의 박조조께서 귀 담아 들어야 할 비책(?) 하나 소개하겠다. 적벽대전에서 패퇴해 구사일생 생환한 조조는 내치에 전념한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등용한다는 '구현령(求賢令)'과 자신의 봉토 대부분을 황제에게 반환해 제위 찬탈의 야망이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술지령(述志令)'을 반포했다. 이로써 조조는 패전이 불러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숙고해 보시기를 권한다.

다시, <삼국지연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천하대세(天下大勢)는 합구필분(合久必分)이요, 분구필합(分久必合)이라." 무릇 천하대세는 합쳐지면 반드시 흩어지고, 흩어지면 반드시 다시 합쳐지는 것이 만고의 진리라는 거다. 우리 정치판에서도 모인 것이 흩어지고, 흩어진 것이 다시 모이면서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게다. 그 쟁패전을 국민들이 엄격한 심판처럼 지켜보고 있다.

헤겔이 일찍이 설파한 '이성(理性)의 간지(奸智)'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성, 혹은 세계정신은 인간의 배후에 숨어 인간을 서로 싸우게 하면서 누군가를 희생시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게 헤겔의 역사철학이다. 인간은 꼭두각시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치고 받는다는 거다.

정치가 국민을 속인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국민이 정치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희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라.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이란 이름의 '간지'가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란 이름의 '이성의 간지'가 드러내려 한 절대정신이 과연 무엇인지 우둔한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민심의 ‘간지’의 향방을 조용히 지켜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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