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 이벤트', 마냥 ‘해피 이벤트’일 순 없는 임신과 출산의 현실 그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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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이벤트', 마냥 ‘해피 이벤트’일 순 없는 임신과 출산의 현실 그린 영화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20.06.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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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이벤트'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캡처).
영화 '해피 이벤트'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캡처).

레미 베잔송의 영화 <해피 이벤트>는 ‘세상이 엄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오해해왔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엄마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 안정 유지를 위해, 깊게 들어가자면 가부장적 질서를 영속화하기 위해 여성을 착취해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해피 이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성 이데올로기가 내재된 사람 같다. 남편을 비롯해 주변인들은 주인공 ‘바바라’가 독박육아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으며, 심지어 그녀조차 임산부를 성녀라고 칭하거나, “엄마가 됐는데 불행하면 안 되잖아”라고 말한다. ‘바바라’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남편 ‘니콜라스’와 함께 그녀의 본가에서 가진 식사자리에서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두고 그녀의 엄마와 ‘바바라’는 크게 말다툼한다. 이때 ‘니콜라스’는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식탁에서 일어나 TV 앞으로 가 형님으로 보이는 듯한 인물에게 임신축하를 받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는다. 난 해당 장면이 임신이란 남녀 둘 다 원인제공하에 일어난 일임에도 임신 때문에 일어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의무와 책임은 한쪽 성별에 쏠려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생김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상황들을 남자들은 여차하면 모른 체할 수 있지만, 여자는 몸 안에 아기를 품고 있어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여성을 약자로 만드는 큰 요인 중 하나인 것 같다.

임신, 출산 후 점점 더 초췌해져 가는 ‘바바라’의 모습은 영화 속 등장하는 “출산은 아름다운 것” 같은 대사와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평소에도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출산은 아름다운 것’,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해’라는 말들이 남편의 육아 직무유기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는 반면, 엄마들의 어깨엔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우는지 다시 실감했다.

‘바바라’는 본인의 직업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능력 있는 여성인 듯 보인다. 그녀의 담당교수는 논문만 잘 쓰면 그녀를 조교수 자리에 앉히고 싶다는 제안을 한다. 제안을 들은 당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바바라’는 임신이 일에 지장을 미칠까 걱정하며 임신 사실을 숨긴다. 영화는 육아하며 틈틈이 글을 쓰는 ‘바바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 논문은 혹평을 받고 조교수 자리는 다른 남성에게 돌아간다.

1년 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될 나는 ‘바바라’의 사례처럼 임신이 여성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들을 볼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다. 내 주변만 살펴봐도 남자가 임신, 출산 문제로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육아 휴직을 써도 될지 고민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한국은 가임기 여성 수를 지역별로 구분한 출산지도를 저출산극복프로젝트의 일환이라며 공개했고, 3년 전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여성의 고학력이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라는 황당한 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현재로선 정부주도의 출산 후 여성의 사회 복귀를 돕는 여러 가지 훌륭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육아는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에 닿기까지는 역부족인 듯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 레미 베잔송은 영화를 통해 “임신에 대한 진부한 이미지 벗어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기존의 미디어가 임신을 다룰 때 ‘해피 이벤트’로만 그려내는 기존의 클리셰들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적나라한 현실을 그려냈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영화 <해피 이벤트>가 학교 성교육 시간에 반드시 시청각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고 본다. 생명의 소중함, 임신 주기에 따른 몸의 변화, 피임법 등등 말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이 영화 한 편을 다 함께 관람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훨씬 와닿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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