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와중에도 '알바생 괴롭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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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와중에도 '알바생 괴롭힘’은 계속된다
  • 취재기자 정수아
  • 승인 2020.05.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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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몬’ 조사, “코로나 여파 2~4월 알바 일자리 30% 급감”
알바생 절반 이상 “업주 등으로부터 괴롭힘 경험했다”

2년 전 부산 해운대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 정 모(22) 씨는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구한 알바 자리에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정 씨는 아르바이트 첫 근무 날에 다른 알바생이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을 들어야 했고, 직원으로부터 “넌 여자니까 이런 것도 잘해야지” 등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었다. 알바 과정의 갑질은 갓 성인이 된 20세에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들거나 ‘매출 강요’, ‘급여 삭감’ 등 알바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늘어났다. 알바사이트 ‘알바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전국적으로 약 30%의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급감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코로나 단기 알바’라는 단기 일자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 단기 알바는 3월 말부터 4월 초 경기, 부산 등의 지자체들이 코로나19로 급증한 행정업무 부담을 해소하고 어려운 청년도 돕는다는 취지로 마련된 단기 알바다. 하지만 이것도 코로나로 인한 전체적인 알바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들면서 알바생들이 부당한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코로나19 사태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들면서 알바생들이 부당한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생활비 마련을 위해 투잡을 뛰고 있는 대학생 박승우(24, 부산시 남구) 씨는 “안 그래도 알바생에 대한 대우가 좋은 편은 아닌데 코로나 때문에 더 심해진 것 같다. 원래 일하던 가게에서 들어가는 시프트가 줄어서 투잡을 뛰고 있는데, 알바생을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고, 직원들도 과도한 업무를 시켜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알바콜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자 12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아르바이트 사업장 괴롭힘 실태’(표: ‘알바콜’ 제공).
알바콜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자 12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아르바이트 사업장 괴롭힘 실태’(표: ‘알바콜’ 제공).

이 같은 알바생 괴롭힘 현상은 전문기관의 실태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아르바이트 앱 알바콜은 지난 2019년 회원 1239명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사업장 괴롭힘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알바생의 절반 이상이 고객 및 점주 등에게 갑질, 폭언, 성희롱 등의 괴롭힘을 당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폭언과 갑질에도 대학생들이 알바를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몬’이 2018년 전국 대학생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 아르바이트 현황’에 따르면, 대학생이 알바를 하는 가장 큰 이유 1위는 ‘생활비 마련’, 2위는 ‘사고 싶은 물건 구매’, 3위는 ‘등록금 마련’ 순이었다. 단지 용돈벌이가 아닌 생계유지를 위한 알바를 하는 대학생들은 쉽게 알바를 그만둘 수도 없다.

‘알바몬’이 전국 대학생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 아르바이트 현황’(표: 취재기자 정수아).
‘알바몬’이 전국 대학생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 아르바이트 현황’(사진: 알바몬 제공).

‘손님이 왕’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알바생은 대체로 을이 된다. 3개월 전부터 마트 알바를 시작한 부산대생 서 모(21) 씨는 한 손님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손님은 서 씨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고, "한 번만 만나달라"는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서 씨는 마트 점주의 대처 덕에 스토킹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알바생이기에 당한 불쾌한 경험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 박 모(22) 씨도 콜센터 알바를 하면서 갑질을 하는 손님들을 더러 접했다. 박 씨는 “콜센터에서는 고객들의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는 직업이 아니라서 짜증이나 화를 내는 손님들이 많아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알바생 괴롭힘을 막아줄 법적 장치도 허술하다. 2018년 10월, 근로자들이 고객에게 폭언이나 폭행에 시달리지 않도록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개정됐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알바생과 고객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에 대한 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 응대 업무 매뉴얼을 마련해야 하며, 고객의 폭언 예방을 위한 문구 등을 사업장에 게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아도 사업주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 법 재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안전보건공단의 직업 건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과도한 고객 제일주의, 고객의 불합리한 요구와 비상식적 행위는 감정노동 종사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어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알바생들이 점주, 직원에게 당하는 괴롭힘, 같은 아르바이트 동료와의 마찰로 인한 고충도 문제다. 경성대학교 문과대 학생 정 모(22) 씨는 해운대구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매니저의 갑질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정 씨는 “일을 잘 하지 못해서 혼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말은 참기가 어렵다”면서 “심심한데 재밌는 얘기 좀 해봐’라거나, 할 얘기가 없으면 윗몸 일으키기나 해봐라는 등의 엉뚱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고, 술자리를 계속 강요하는 등의 불쾌한 언행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A 씨는 경성대 익명게시판에 자신이 일하는 알바 가게에서 점주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한 수제버거집에서 점주가 주방 직원에게 외모 평가를 하고, A 씨의 손을 만지거나 옆구리를 끌어안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는 내용이다.

2019년 7월 직장 내 알바생과 알바생 사이, 알바생과 점주 사이의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법이 시행됐지만, 갑질한 행위자에 대한 마땅한 처벌 규정은 여전히 미흡하다. 전문가들과 네티즌들은 실효성 있는 법 개정, 소비자 의식을 고양하는 캠페인, 직장 내 알바생의 인권에 대한 교육, 알바생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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