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숨쉴 곳은 과연 어디일까?
상태바
행복하게 숨쉴 곳은 과연 어디일까?
  • 부산광역시 심현욱
  • 승인 2016.04.17 0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지난 2015년, 청룡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정현의 수상소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20여 년 만에 시상식에 다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상을 받을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작이 아니었다. 고작 몇 천 명이나 몇 만 명이 보면 당행이라는 작은 독립영화였다. 출연료를 받을 염치가 없어서 그녀가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는 그 영화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다. 나는 배우 ‘이정현’과 독립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곧장 컴퓨터를 켜고 영화를 봤다.

수남(이정현 분)이 어떤 공간에서 한 여성을 포박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수남의 학창시절로 장면은 바뀌어 본격적인 영화가 전개된다. 공장에 취직한 수남은 어느 날 같은 근로자인 사내 규정과 눈이 맞게 되고, 이내 둘은 미래를 함께 하기로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규정은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돈을 모아 집을 사자는 규정과, 규정의 장애를 고치는 수술을 먼저 하자는 수남은 의견이 충돌했다. 결국 수술을 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수남의 말에 규정은 수술을 결심한다. 수술 후, 일을 하던 규정은 불의의 사고로 한쪽 손가락이 잘리자 수남이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수남은 가정부일, 배달일, 전단지를 돌리는 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결국 집을 마련하지만, 행복은 급격히 멀어진다. 규정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수남에게 일찍 발견되어 규정은 목숨을 건지지만, 그는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그즈음, 수남의 동네는 재개발이 논의되는데, 이를 둘러싸고 수남과 동네 주민들은 갈등을 겪게 된다. 재개발 서명을 받는 수남을 방해하는 주민들을 수남은 한 명씩 죽이게 된다. 살인은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된다. 수남은 결국 자신을 용의자로 생각하는 형사들까지 칼로 무참히 난도질한다. 마지막 희생자가 영화의 처음 장면에서 포박당한 여성으로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 수남은 그 여성을 독살하고 남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지 떠난다.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수남의 살인 장면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영화의 잔인한 살인 장면은 현실의 삶의 잔인성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실에서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죽인다. 높디높은 취업의 문, 낭인을 양산하는 공무원 고시의 벽, 헤어나올 수 없는 생활고라는 덫에 걸려 사회 곳곳에서 ‘수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화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죽인다. 자살이다. 그러나 영화 속 수남은 자신을 죽이지 않고 남을 죽인다. 그녀의 살인은 유쾌하고 심지어 통쾌하게 영화에서 그러지고 있다. 자살률 OECD 1위 국가를 역설적으로 그린 영화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나와 같은 20대 들은 N포 세대라고 불린다. 전에는 3포(연애, 결혼, 출산)를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5포(집, 인간관계)를 넘어 꿈, 희망, 그리고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하는 N포세대가 되고 있다. 열심히 해도 행복할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영화 제목은 ‘성실한 나라’다. 수남은 남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성실한 나라를 떠나서 더 성실한 나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불성실한 나라로 가는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디를 가더라도 남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소원적 상상을 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