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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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 칼럼니스트 강석진
  • 승인 2016.04.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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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시빅 객원 칼럼니스트, 20대 총선 관전평 및 향후 정국전망
▲ 칼럼니스트 강석진

제20대 총선이 치러진 2016년 4월13일 한국 정치사에 강진이 일어났다. 진도 6은 될 정도다.

제19대 국회에서 의석수 152석으로 과반을 넘던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기지 못한 것은 물론, 122석으로 제1당의 지위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고 제2당으로 주저 앉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지만 서울 수도권과 이른바 낙동강 벨트인 경남 동부와 부산 서부 등 야당 불모지에서 선전하면서 123석을 차지해 원내 제1당의 지위를 거머쥐었다.

안철수, 정동영, 박지원, 천정배 등 머리 굵은 인사들이 선거전에 급히 만든 국민의당은 호남을 석권하면서 38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정의당은 야권 단일화가 부분적으로 이뤄지면서 6석 얻는데 그쳤다.

개표가 밤새 이뤄지고 난 14일, 새누리당 지도부가 줄줄이 사퇴하는 것을 보면 총선 결과가 여당의 참패라는 점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선거전 여론조사나 시중에 떠도는 소문, 어설픈 정치평론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결과라서 놀라움은 더 큰 듯하다. 필자가 4월 3일 게재한 <투표가 망치다>라는 칼럼에서 캐나다의 놀라운 선거 결과를 인용한 바 있는데,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유권자들도 정치권 특히 여권에 대해 KO 펀치를 멋지게 날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선 여당의 패배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하자. 야당 분열로 호기를 맞았지만 참패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정치 분석 기사들은 공천과정에서 보인 친박 세력의 오만에 대해 유권자들이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보수 지지층조차 투표장에 가지 않거나 정당 투표는 국민의당에 던짐으로써 새누리당에 경종을 울렸다고 한다. 맞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심판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친박 세력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준엄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필자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국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여당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양극화, 청년실업, 중산층의 위축, 재벌 위주의 정책, 노동관련법 문제를 다루는 데서 보듯이 남 탓만 하는 청와대의 무책임한 정치적 행태, 경제민주화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점 등이 모두 겹쳐 응징의 칼을 맞았다고 본다. 공천 과정에서 오만했다 하더라도 경제 사정이 좋고 청년들에게 희망이 보이고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고 있었다면, 그리고 늘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면 참패는 면했을 것이다. 두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이번 참패는 박근혜 정부의 자업자득이고 국민은 책임소재를 가려 정확하게 판정을 내린 것이다. 조지훈 시인의 싯구절을 인용하자면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선거에 관한 한 ‘알파고’였던 박 대통령은 이번 참패로 명성에 금이 간 것은 물론 남은 임기 국정 운영에 엄청난 어려움을 맞게 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세 가지 심판론이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한 야당심판론, 국민의당이 주장한 더불어민주당(구체적으로는 친노패권주의) 심판론,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한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다. 이 가운데 호남 유권자는 더민주당 심판론을, 서울 수도권 유권자는 박근혜 정부 심판론에 호응했다. 야당 심판론은 먹히지 않았다. 이 점이 더민주당의 선거 결과를 설명한다.

더민주당은 야당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참패했으나 전국적으로는 박근혜 정부 심판 투표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축배를 높이 들어 마땅한 일이나 호남에서 뿌리가 뽑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호남 대표성과 분열의 책임, 선명성 등을 놓고 국민의당과 쉽지 않은 게임을 벌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더민주당은 야당 분열로 야권이 참패할 수 있다고 국민의당을 압박했으나 결과를 보면 야당이 분열했지만 외연 확장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야당 분열 필패론이라는 더민주당의 프레임도 이번 선거에서는 들어맞지 않았다.

국민의당은 호남 대표성을 차지하고 국회 운영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지만 호남유권자가 친노그룹에 대해 화를 낸 것이지 아직은 안철수 대표를 확실하게 선택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등 거물들이 우글우글한 가운데, 당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전열을 정비하는 게 숙제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두 명(이정현, 정운천) 당선되고, 대구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김부겸,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의락 후보가 당선되는 등 지역주의에 구멍을 내는 성과를 냈다. 서울 수도권, 호남, 대구, 낙동강 벨트 곳곳에서 유권자들은 주권자로서의 판단과 결단을 과감하게 보인 것이다.

아쉬운 점 또한 남았다. 이번 선거에서 각 당은 공허한 정치 슬로건을 내놓고 읍소 전략으로 표심을 자극했지만 정작 우리의 삶과 관련된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선택을 받지 못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것인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경제 위기의 파고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방안을 갖고 있는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심판의 깃발만 4월 봄 하늘에 나부꼈을 뿐이다.

국민 앞에 반성과 결과의 겸허한 수용을 말하는 정치권은 늘 그렇듯이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논쟁, 다음 대선과 당내 권력을 향한 편가르기와 줄세우기로 날을 밝히고 지새울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언제든지 정치권을 응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칼날도 휘둘렀다. 지역주의 극복의 가능성도 열었다. 선거가 개혁이고 투표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한다면 제20대 총선은 의미있는 개혁의 출발점에 정치권을 세워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정부 여당은 물론 제1당이 된 더민주당, ‘호남당’에 그친 국민의당, 세를 확장하지 못한 정의당 등 정치권 전반에 자기 성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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