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칼럼]슬기로운 기자생활과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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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칼럼]슬기로운 기자생활과 언론개혁
  • 박창희 논설주간
  • 승인 2020.04.20 11: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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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신뢰도 하락 속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충격
언론개혁 ‘누가, 어떻게’가 관건... 슬기롭게 풀어가야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지난달부터 시작된 tvN의 12부작 드라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로병사’가 모여, 수만 가지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곳, 바로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료인들의 고뇌와 애환을 이야기한다. 보아하니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슬기로운~ ’ 시리즈가 ‘~감빵생활’을 끝내고, 코로나 환란 와중에 ‘~집콕생활’ ‘~격리생활’로 진화하더니, 병원에서 또 한번 히트 치는 모습이다. 여기서 대뜸 떠올린 것이 ‘슬기로운 기자생활’이다. 4·15 총선 직전에 지역 일간지에서 일하는 후배 기자를 만난 게 계기라면 계기였다. “선배, 요새 진짜 기자 생활 해먹기 힘들어요!” 후배 기자의 볼멘 하소연을 듣다가 문득 떠올린 게 ‘슬기로운~’이란 말이었다. 헤어지며 이런 말도 해 주었다. “그래도 갓끈 붙어있을 때 잘 해라!”

‘슬기로운 의사생활’ 홍보 이미지. 사진=tvN 제공.
‘슬기로운 의사생활’ 홍보 이미지. 사진=tvN 제공.

요즘 언론 상황이 난해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안팎으로 시달린다. 언론의 신뢰도는 갈수록 뚝뚝 떨어진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9’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22%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신뢰를 잃고 있는 언론, 위기는 일상화된 듯하다.

인터넷이나 SNS에는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란 모욕적인 단어가 일상어처럼 등장한다. 이런 말이 거리낌없이 쓰이는데도 대다수 언론은 오불관언이다. 하기사 딱히 무슨 대책을 세울 수도 없다. 특종이나 단독을 올리고 작은 보람을 느낄 틈도 없이, 한쪽에선 가짜뉴스나 편파·왜곡보도를 빌미로 ‘기레기 타령’이다.

이런 엄혹한 언론 환경에서 ‘채널A의 검언(檢言)유착’ 사건이 터졌다. 채널A의 법조팀 기자가 금융사기로 복역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접근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과의 관계를 미끼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캐려 한 사건이다. 한마디로, 언론이 검찰과 손을 잡고 진보 진영 인사를 죽이려 했다는 것. 심각한 취재윤리 위반이다. 영화 ‘내부자’ 속의 검언유착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문제를 야기한 당사자(채널A)도, 이를 터트린 방송(MBC)도 모두 언론이란 점은 아이러니다. 방송사끼리 치고 받는 모습이지만, 어떤 면에선 한국 언론의 건강한 단면이다. 공익과 대의를 위해 비판하고 고발하는 건 언론의 본령이다. 이 사건 속엔 언론플레이에 능한 검찰조직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이 사건 하나에 검찰개혁, 언론개혁이란 시대적 과제가 엮여 있는 셈이다. 결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국민적 이목이 쏠린 사건은 사후 대응 방식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채널A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언론계의 자정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4·15 총선 와중에 일부 보수언론은 오히려 채널A 기자 사건의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제보자가 문제 인물인데다 여권 편향적이고, 이를 터뜨린 MBC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언유착’ 의혹을 교묘하게 ‘정언유착’쪽으로 초점을 바꾸려 한 것. 이게 한국 언론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다행히 민심은 이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고, 그것이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언론계를 과점하는 보수 언론들의 낡은 프레임이 과거처럼 먹히지 않는 건 촛불시위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세상과 독자는 바뀌었는데 일부 보수언론만 그들의 철옹성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바깥을 보라. SNS 등에는 전문 언론인 못지 않는 식견으로 맹활약하는 강호의 논객들이 부지기수다. 여기서 형성되는 집단지성이 뉴미디어 시대의 '뉴노멀'을 만들고 있다.

총선을 거치면서 언론개혁은 시대적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다. 고민정 한준호 박성준 등 더불어민주당의 방송계 출신 3명은 당선 일성으로 언론개혁을 내세웠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당선자도 고강도의 검찰·언론개혁을 천명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 안팎의 언론개혁 요구와 기대도 어느때보다 높은 것 같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검찰개혁보다 더 힘든 것이 언론개혁이라고 한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언론계, 특히 과점 보수언론들이 자신의 철옹성을 호락호락 해줄리 만무하다. 정면대결? 그건 피해야할 방법이다. 국회와 시민사회의 응원군을 모아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언론계 내부의 자정노력을 이끌어내는 전향적이고 치밀한 개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은 어렵다. 완벽하지도 않다. 딱히 정해진 답도 없다. 공익과 대의, 시대 가치에 충실할 뿐이다. 팩트와 진실, 현상에 대한 해석과 평가, 고발과 공익, 취재윤리와 인권보호 등은 하나 하나가 논쟁거리 또는 쟁점이다. 그래서 ‘저널리즘은 다만,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한국 언론은 지금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레거시(전통) 미디어 외에 유튜브, 팟캐스트, SNS 등 뉴미디어가 난무하고, 그 속에서 좌우 대립, 진영 논리, 자사 이익 등이 혼재한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언론의 신뢰도 제고, 언론자유와 책임의 문제, 언론 수용자 운동도 과제다.

180석의 거대 여당은 이 과제를 풀어낼 것인가. 어떤 면에선 지금이 언론개혁의 호기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거창하게 볼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 언론의 자정노력이 전개되고 있고,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도 이미 언론개혁의 싹이 트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나타났듯이, 한국인의 위기 극복, 긍정 바이러스는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 첫 단추는 취재윤리부터 바로 세우는 ‘슬기로운 기사생활’에서 출발해야 하겠다. ‘슬기’는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을 말한다. 영어로는 ‘wisdom’ ‘sense’ ‘sagacity’, ‘intelligence’ 등으로 옮겨진다. 참 좋은 말이다. 슬기를 끼고 산다면, 쉽게 좌절하거나 무너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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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 또한 2020-04-21 03:40:26
슬기로운 기자들이 좋은 글을 많이 써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