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칼럼]코로나 사투 속에 돋보인 의료진 희생정신...한국 사회의 가치관∙직업윤리 다시 봐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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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칼럼]코로나 사투 속에 돋보인 의료진 희생정신...한국 사회의 가치관∙직업윤리 다시 봐야 할 때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20.04.06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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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겪으며 의료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긍정적 변화
우리 청소년들도 소명 의식과 가치관으로 무장한 직업정신 필요
위기 속 묵묵히 일하는 숨은 일꾼들의 직업관 새롭게 봐야

서양 기독교 문명권은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 주님의 해, 또는 ‘After Christ’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서양식 연대 계산법을 기원(西曆紀元)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달력의 표준이 됐다.

최근 뉴욕 타임즈 컬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새로운 연대 계산법을 제시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을 BC(Before Corona) 1년, 코로나19 창궐 원년인 2019년을 AC(After Corona) 1년, 2020년을 AC 2년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 이는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비대면 소통 증가, 사회주의적 기본소득 실행, 의료시스템 유효성 논쟁, 국경 폐쇄 역 세계화 현상 등을 대변혁의 사례로 지적했다.

당연히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거창한 사회구조적 변화보다도 당장 내 눈에는 코로나 이전(BC)과 이후(AC)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더 크게 와 닿는다.

코로나와 싸우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의 투철한 직업 정신이 돋보인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코로나 19와 싸우는 의사 간호사 등 우리 사회 의료진의 투철한 직업 정신이 돋보인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200개가 넘는 국가의 의료진들이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마와 콧잔등에 일회용 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한국 간호사들의 웃음 짓는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다. 중국 우한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처음 외부로 알린 ‘리원량’이란 의사가 있었다. 그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소환돼 입을 다물라는 협박을 받고 풀려난 뒤 본인도 코로나 환자 치료 중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대구 지역 의사협회 회장이 ‘의병(義兵)’을 모집하는 심정으로 손이 모자라니 와서 도와달라고 동료 의사들에게 호소하니, 하루만에 300명이 모였단다. 그 중에는 “나 같은 늙다리 의사는 필요 없냐?”는 은퇴한 노 의사도 있었다고 한다. 폭증하는 코로나 확진자를 처리하느라 보건소 업무가 마비된 경북 경산시의 한 내과 의원 원장은 보건소가 의뢰한 코로나 무증상 환자들을 흔쾌히 받아 치료하다가 본인이 그만 코로나에 감염돼 숨을 거뒀고, 우리나라 코로나 첫 번째 의사 희생자가 됐다.

스페인에서는 의료진들이 노인요양원 환자들을 방치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노인들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 스페인에서도 3월 말 기준으로 의료진 5400명이 감염됐고, 이태리에서는 전체 의료진의 15%에 해당하는 7000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감염되어 격리됐다고 한다. 이런 살벌한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의사란 목숨을 걸고 일을 수행하는 위험천만한 직업이란 생각을 이번에 처음 하게 됐다. 그들의 목숨 건 사투를 날마다 몇 달째 생생하게 보고 있자니, 의사와 간호사들이 새삼 달리 보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했다. 몇 해 전 2월, 단골 식당에 들르니, 주인이 잘 생긴 청년을 나에게 인사시키면서, 이번에 의대에 합격한 알바생이라고 자랑했다. 늘 진로 지도하는 선생 버릇이 있어서, 난 그 학생에게 “자네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지?”라고 물었다. 그는 “돈 잘 벌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의사 공부를 시작도 하지 않은 젊은이가 환자를 돈으로 보면 되나? 남이 물으면 말이라도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의사가 되겠습니다’라는 정도로 대답하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덕담해줬다. 알아들었는지 알 턱은 없었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 똑똑하게 공부시켜서 문과 출신이면 변호사, 이과 출신이면 의사 만드는 게 부모들의 ‘최대’ 희망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 오래다. 한 번은 특활 시간에 진로 지도를 받겠다며 고등학생 10여 명이 내 학과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각자 자기 희망 진로와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중 한 학생이 검사가 되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와!” 했고, “얘, 전교 1등이에요”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내가 검사되려는 이유를 묻자, 그 학생은 “폼 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영천세이(潁川洗耳), 차라리 내 귀를 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사회정의 세우기가 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고등학생을 접하니, 그게 우리나라의 솔직한 세태인 듯했다.

미용 성형외과는 병을 고치기보다는 사람(요새는 남자 고객도 많아서 여성으로 한정할 수 없다고 한다)의 외모를 돋보이게 도와주는 성형수술로 수입이 좋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성형 건수가 16건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2010년 통계가 있다. 지금은 더하면 더 했지 뒤로 순위가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울 강남 신사동 사거리에 가면 10층 넘는 건물 전체가 성형외과인 빌딩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고 의대 간다던 그 알바 청년도 아마 지금쯤 성형외과 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몇 해 전, 나는 TV에서 성형외과 분야의 명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그 의사는 손가락을 절단당한 환자들을 접합하는 국내 1인자였다. 그의 환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손가락이 잘릴 만큼 위험한 3D 업종 일을 요즘 한국 사람이 잘 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성형외과 영역이 코를 높이고 가슴을 키우는 미용 시술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절단된 손가락을 붙이는 것도 '재건 성형'이라는 성형외과 영역 중 일부임을 처음 알게 됐다. 문제는 그런 재건 전문 성형외과 의사는 힘들고 돈도 되지 않아 하겠다고 나서는 의대생이 드물다는 거였다. 이국종 교수도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사경을 헤매는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전쟁터 같은 외상외과를 전공하겠다는 후계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은퇴 1년을 남긴 교수 생활 30년 동안, 그래도 학생들 인성과 진로를 가르치기 위해 나름대로 정리한 나의 방식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나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의 교육 목적을 갖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나는 사는 이유,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를 배워야 한다는 거다. 이것은 사람의 가치관, 인생관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이를 ‘life plan(인생 계획)’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먹고 사는 수단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이것은 ‘career plan(직업 계획)’이라고 부른다.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먼저 자기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 다음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직업으로 먹고 살지를 찾는 게 순서라고 가르쳤다. 마치 어느 사범대학 건물 입구에 붙여 놓은 “교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경구처럼, 나도 우리 학생들에게 “기자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을 정하고, 그 다음 그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라고 말이다. 

돈을 벌고 싶으면, 사업하는 게 맞다. 그러나 사업가(또는 자영업자)란 직업을 갖기 전에 가치관을 먼저 가져야 한다. 사업해서 돈을 벌면, 나중에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바로 가치관이다. 요즘 학생들은 무슨 직업을 고르든 가치관이 없다. 아이돌, 배우, 검사, 의사, 스포츠 스타 등 제 눈에 멋지게, 또는 ‘폼 나게’ 보이면 무조건 그 직업을 되고 싶어 한다. 그 외에는 별 이유도 없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물질적인 욕구는 40세가 정점이라고 했다. 가치관은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치관은 독서, 여행, 대화, 사색, 그리고 좋은 스승을 만나야 길러진다. 내 제자들의 가치관에 스승으로서 내가 제 몫을 했는지는 늘 고민거리다.

직업과 가치관의 조화를 종교에 근거해서 설명한 사람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그가 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고전이 있다. 원래 이 책은 신의 구원을 교회와 사제 중심으로 설명하는 예정설(구원 받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교리)에서 벗어나, 성실한 노동과 윤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면 누구나 신의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개신교적 생활양식을 설명하고 있다. 베버는 여기서 사람은 각자의 직업은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召命, calling)이므로 성실히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의식을 강조했다. 베버의 이런 직업윤리는 기독교를 떠나서 근대 서구 사회의 건전한 직업윤리의 기초가 됐다. 베버는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적 소임을 다할 때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공리적 삶을 살게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교육을 통해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기 가치관에 충실한 직업윤리를 가졌으면 좋겠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을 ‘전환의 기술’이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철없는’ 직업관을 갖게 하고 그들의 '무가치한' 가치관을 바꾸지 못한 채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아닌지, 교육자로서 늘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헌신적인 직업윤리를 가진 의료진들을 목격하면서, 역시 세상은 소수의 의인(義人)들이 지킨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구슬땀 흘리는 택배 아저씨, 사재기 걱정 없도록 채소, 육류, 생선을 공급하는 농부∙어부들, 선별진료소 공무원들, 밤을 지새우고 있을 백신 개발자들, 진단키트 연구원들, 환자들을 이송한다고 분주한 119구급대원들, 소방관들, 자가격리 위반자 감시하는 경찰들, 대학의 화상 수업 조교들, 마스크 공장 노동자들, 두려움에 떠는 교민들을 돌보는 전 세계 한국 대사관 직원들 모두가 작지만 귀한 가치관과 직업윤리에 충실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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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2020-04-17 02:11:15
곱지 않다에서 바로 스크롤 내림ㅋㅋㅋㅋㅋ 의사 못해서 안달 났는데 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