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인기 타고, 옛시인 초판본 시집 유행
상태바
영화 <동주> 인기 타고, 옛시인 초판본 시집 유행
  • 취재기자 안정호
  • 승인 2016.04.10 2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영화 <동주>를 보고난 뒤 오보영(27, 부산시 남구) 씨는 인터넷 서점에서 윤동주 시인이 일제강점기 시절 출간됐던 시집 초판본을 복간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입했다. 시집 초판본 복간이란 당대에 ‘처음으로 나온 책’을 원본과 똑같이 재출판하는 것을 말한다. 오 씨는 “이미 윤동주 시집을 가

 

▲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복간(사진: 오보영 씨 제공)

지고 있지만 새롭게 나온 초판본을 보자마자 주문하고 싶었다” 며 “겉표지부터 아날로그 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했다. 실제로 윤동주 시인의 초판본 복간 시집 겉표지는 세련되진 않지만, 1940~50년대를 느끼도록 투박하게 디자인되어있다.

이번에 복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첫 장을 넘기면 옛날 타자기 글씨체로 한자와 한글이 섞인 차례가 나타난다. 제일 처음 나오는 시가 바로 <서시>다. 오 씨는 “영화 <동주>를 보고 난 뒤 <서시>를 읽으니 가슴이 뭉클하다”며 “손 때가 묻어 있는 듯한 종이에 그 시대에 출판된 시를 읽으니 윤동주 시인의 고뇌와 삶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차례
 

   
▲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첫번째 시 <서시>(사진: 오보영 씨 제공)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1941년, 우리말 시집 출간을 추진했지만 무산되었을 때 남겨졌던 원고지에 적은 윤동주 시인의 육필(자필)원고 또한 복간되어 부록으로 제공되고 있다. 오 씨는 육필원고를 보고 “윤동주 시인의 글씨가 그대로 쓰여 있어 글씨체 하나하나에서 윤동주 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매하면 부록으로 제공되는 육필원고(사진: 오보영 씨 제공).

최근 출판계에 시집 초판본 복간 열풍이 불고 있다. 처음 소와다리 출판사를 시작으로 그여름, 파란책, 지식인하우스, 더스토리 등 많은 출판사들이 시집 초판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온라인서점 예스24 시 부분 베스트셀러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고, 정지용 시인의 <정지용 시집>과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은 20위 안에 들어가 있다.

▲ 김소월의 <김소원시집, 초판본 진달래꽃>(사진: 예스24 화면 캡처),
▲ 정지용의 <초판본 정지용 시집> 표지(사진: 예스24 화면 캡처)

이렇게 시집 초판본 복간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초판본 열풍은 영화 <동주>나 <귀향〉같은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한 몫 했다고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소설가 나모 씨는 “지금 10대 20대에게 익숙한 영화의 영향을 받아 시집이나 소설이 알려지고 독서로 이어지는 현상이 고무적이다. 영화 <암살>로 인해 독립운동가가 알려지고, 영화 <동주>가 윤동주의 시집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영화와 문학 산업의 더없는 콜라보레이션이다”라고 시집 열풍을 진단했다.

며칠 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입한 박지선(22, 부산 남구) 씨는 “영화 <동주>를 보고 시집을 사고 싶어졌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초판본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김태우(24, 경기도 마포구) 씨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일제 강점기 때 있었던 시인들의 시를 읽고 싶어 여러 시집을 샀다”고 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한 출판사 ‘소와다리’ 관계자는 “영화가 개봉한 뒤 확실히 시집 판매가 시너지 효과를 받았다. 시집 다시 읽기 붐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SNS의 위력도 컸다. 이른바 시집 ‘구매 인증샷’으로 시집을 사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SNS로 시집 이름만 검색해도 ‘구매 인증샷’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초판본 인기는 이렇게 SNS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 홍보가 위력을 더했다.

하지만 초판본에는 한자가 많이 있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들은 쉽게 읽기 어렵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들이 초판본 시집을 구입하는 이유는 바로 소장 욕구 때문이다. 지금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입하면 3주기 초판본과 10주기 증보판, 또 육필원고를 받을 수 있고, 김소월의 시집 <초판본 진달래꽃>을 구입하면 1940년대에 직접 소포를 보낸 형식으로 책이 배달된다. 출판사는 이를 ‘경성에서 온 소포 패키지’라 부른다. 오보영 씨는 “초판본 시집은 소장 가치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 시집 <초판본 진달래꽃> ‘경성에서 온 소포’ 패키지(사진: 오보영 씨 제공).

이렇게 초판본의 인기로 국내 문학도서의 판매량까지 늘렸다. 예스24에 따르면, 2016년 1월 1일부터 3월 22일까지 국내 문학분야 도서의 판매권수가 전년 동기 대비 36.1% 증가했다. 출판사 ‘소와다리’ 관계자는 “증가한 판매량이 다시 줄어들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도록 문학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