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여러분이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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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여러분이 호랑이다
  • 편집인 강성보
  • 승인 2016.04.03 21: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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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투표참여를 촉구하는 릴레이 칼럼①]

한국 근대사의 변곡점엔 언제나 청년들의 힘이 있었다.

▲ 시빅뉴스 편집인 강성보

이승만 정권에 종언을 고한 4.19 혁명부터가 그랬다.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에 격분한 학생, 청년들이 노도처럼 거리로 뛰쳐나왔고, 결국 이승만은 백기를 들고 하와이 망명 길에 올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쓰러뜨린 것은 김재규의 독일제 월터 PPK 권총 탄환이었지만, 그 상황은 부마항쟁이 제공했다. 그해 가을 젊은이들이 계엄군의 탱크에 맨몸으로 맞서 목숨을 내팽겨친 시위에 나섰고, 그것이 유신정권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김재규는 재판에서 “나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1986년 전두환 폭압정권의 무릎을 꿇게 만든 6월항쟁 역시 마찬가지다.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기성세대들의 거리 시위사태가 6.29 선언을 이끌어 냈지만, 박종철 등 청년 학생들의 축적된 희생이 없었다면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청년들이 활약한 사례는 쉽게 발견된다. 현대 중국의 기점으로 평가되는 1919년 5.4운동은 당시 20대 청년 진독수(陳獨秀)가 발간한 잡지 <신청년(新靑年)>이 발화점을 제공했다. 여기에 감화를 받은 손문(孫文) 등 중국의 애국지사들이 범국민 운동을 벌였고, 결국 중국에도 비로소 근대적 국민국가가 성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세기 메이지(明治) 유신은 일본 역사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부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근대화의 길을 연 이 유신은 사카모토 료마(板本龍馬) 등 하급 무사 출신 20대 젊은 지사들에 의해 주도됐다. 3년여 활약 끝에 일본 근대 국가의 초석을 마련하고 부국강병의 길을 연 료마가 막부가 보낸 자객에 피살된 것은 1867년 12월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외형적으로나마 정치 체제가 견고하게 자리잡은 21세기, 이전 시대 청년들의 정의감과 추동력을 기대하기는 여려울 것이다. 또 자칫 대대적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그런 물리적 청년 운동을 부추겨서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청년들이 드러내고 있는 정치적 무관심, 사회적 무기력은 격동기를 거쳐온 기성세대들 눈에는 안타까움으로 비쳐진다. 헬조선, 흙수저론, 3포, 5포, 7포세대 등으로 자조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강요한 상황에 납작 엎드려 순응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취업에 목을 매고 스펙 늘리기에 하루하루 분주한가. 디지털 시대 범람하는 오락거리에 몰두하고 있는가. “정치는 어른들이나 하세요. 우리가 나선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나요”라며 냉소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여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면 달라질 수 있다. 과거처럼 굳이 조직을 결성하고 거리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 안에서도 청년 여러분의 의사는 얼마든지 표출할 수 있다. 바로 투표행위다. 지난 1월 스페인 총선에서 신예 좌파정당 ‘포데모스’는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면서 창당 2년만에 일약 제3당으로 도약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뜻의 포데모스는 당 대표와 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가 모두 20대~30대다. 이 정당의 모태는 ‘인디그노스(분노하는 사람들)’ 운동이었다. 기성세대에 분노한 청년들이 거대정당의 과점적 운영으로 지탱해온 스페인의 정치지형을 바꾼 것이다. 작년말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대세로 여겨졌던 국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것도 국민당 실정에 분노한 청년들의 표가 결집됐기 때문이었다.

20대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 각당은 낡은 레코드 소리마냥 청년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앙선관위도 의레적으로 청년투표 촉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은 공허하다. 각자 속셈과 계산법이 따로 놀고 있다. 심지어 선관위의 캠페인 동영상은 남녀 성행위를 패러디한 얄궂은 것으로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들 정치 당사자들의 구호가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유도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여러 시민, 청년단체들의 투표 참여 운동이 신선하다. 한 단체는 “투표를 통해 분노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몇 년전 레지스탕스 출신 프랑스 작가 스테판 에셀의 베스트셀러 <분노하라> 책 제목을 인용한 것이다. 에셀은 당시 90대의 고령이었지만 이 책에서 “정의를 위해, 이상을 위해, 기성세대들의 시스템적 폭력에 저항하라”고 외쳤다.

물론 집권당의 목불인견 막장 공천 파동을 지켜본 젊은이들의 환멸감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당 대표의 ‘자뻑 공천’과 야권의 지리멸렬 분열상을 목도한 청년들의 실망감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들이 내놓은 청년 공약의 공허함은 헛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투표장으로 향한 발걸음을 멈춰선 안된다. 청년들의 한표, 한표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의 ‘나 한표 기권’이 결국 나쁜 정치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무관심이 악마를 키운다”는 명언은 아직 유효하다.

한 노정객은 회고록에서 “국민이 호랑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표심이 무섭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기성세대는 언젠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다. 여러분 자신이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여러분이 바로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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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투스 2017-04-18 18:06:25
그 기성세대가 "그 언젠간" 무대에서 퇴장할때쯤, 청년들은 모두 시체로 변해있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