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사람만 뽑습니다"... 도 넘은 외모중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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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사람만 뽑습니다"... 도 넘은 외모중시 사회
  • 취재기자 오윤정
  • 승인 2016.03.2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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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주방, PC방 알바 모집 때도 용모조건...채용 후엔 화장 강요하기도

대학생 김푸른(22,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다. 김 씨는 주인의 지시에 따라 처음에는 홀 서빙 업무를 맡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구두를 신고 장시간 움직여야 하는데다  점장의 지시에 의해 화장을 꼭 하고 근무해야 하는 홀 서빙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손님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주방으로 옮겨 달라고 점장에게 요청해 지금은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홀에서 근무할 때)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었다”며 “외모를 꾸미라는 지시를 받을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남자 대학생 김준형(20, 부산시 북구) 씨는 가게 주인이 여성 알바생들에게만 외모를 지적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똑같은 홀 서빙 업무를 맡은 김 씨에게는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지만, 여성 알바생들에게는 안경을 쓰지 말 것, 화장을 필수로 하고 올 것 등을 요구했다. 김 씨는 “남자 직원들은 안경을 쓰고 일을 해도 별다른 말이 없는데도, 여직원들에게만 안경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고 이해가 안 됐다”며 “안경 착용이나 얼굴 화장 여부가 홀 서빙 업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접객업소의 업주들이 알바생을 채용하면서 외모를 따지는가 하면, 채용 후에도 외모를 가꿀 것을 강요해 시대착오적이란 지적과 함께 성차별이 아니냐는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나아가 여성에 대한 외모 차별이 처벌 대상이 된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업주들이 많아 이에 대한 홍보와 계도가 시급한 실정이다. 

남녀고용평등법 7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되고, 근로자를 채용할 때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신체적 조건 등을 제시하거나 요구하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알바노조 앱에 올라온 알바생 모집 공고에는 용모를 차별하는 문구가 적지 않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공고에는 “성실하고 외모가 단정한 분,” 대형마트 안에 있는 푸드코트 홀을 정리하는 업무 공고에는 "외모가 단정한 여성분"이라고 적혀 있다. 손님을 직접 상대하는 업종이 아닌 주방 업무나 약국의 전산 업무 모집 공고에도 “깔끔한 외모”가 자격 조건에 포함되어 있다. PC방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에는 “예쁘시면 환영합니다”라는 노골적인 외모 조건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 자격조건에 외모를 언급하는 알바천국의 구인 광고(사진: 알바천국 앱 캡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김지은(22, 울산 남구 신정동) 씨도 가게 사장이 자신에게 화장하고 외모를 꾸미고 올 것을 요구해 불쾌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카운터 업무를 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인데 화장을 꼭 하고 다니라는 말에 기분이 나빴다”며 “어느 가게에서 알바를 해도 여자들에게 화장을 요구하는 건 다 똑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관 알바생들에게는 염색, 화장, 액세서리 등에 대한 규제가 더 많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대학생 안수진(22,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씨는 여성 알바생들의 머리는 망을 이용해 단정하게 묶어야 하고 스타킹은 필수적으로 신어야 하는 등 많은 규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 씨는 “불편해도 안경이 아닌 렌즈를 껴야 하고 립스틱은 무조건 빨간색을 사용해야 한다”며 “화장을 안 하면 일을 하러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알바노조’가 영화관 아르바이트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87%가 고용주로부터 외모 평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고용주가 여성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스타킹, 머리망 등의 물품들을 사비로 구매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96%나 됐다.

CGV의 한 관계자는 본사에서 내려 보낸 직원 복장지침은 청결한 손톱과 단정한 머리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런 지침은 고객들에게 깔끔한 인상을 주기 위한 회사의 방침일 뿐이며, 아르바이트생을 외모에 따라 차별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정규 직원들은 회사의 서비스 아카데미를 통해 알바생들에게 외모 비하 발언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있다”며 “근무 시 종업원들이 필요한 소품도 회사가 알바생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연 알바노조의 대변인 하윤정 씨는 “서비스로서의 꾸미기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영화관) 관행과 물품구매에 대한 비용 미지급 등의 잘못된 관행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세계여성의 날에 영화관 앞에서 알바노조 회원들이 알바생들에 대한 부당한 외모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하고 있다(사진: 알바노조 페이스북).
 
 

업주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부산시 해운대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1) 씨는 알바생을 채용할 때 외모를 보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일을 하게 되면 알바생들이 가게 사장인 나보다 손님들을 더 많이 만나기 때문에 면접 볼 때 외모를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네일아트를 과하게 하거나 지저분한 차림으로 종업원들이 음료나 디저트를 제조하면 손님들이 불쾌해 해서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진구에서 옷가게를 운영 중인 박모(50) 씨도 옷가게 특성상 직원들의 외모와 옷차림이 가게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에 알바생의 외모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손님들이 판매하는 직원에게 호감이 가져야 매출이 오르기 때문에 깔끔한 외모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옷가게 직원은 가게의 경쟁력이기 때문에 판매력과 말솜씨도 중요하고 감각 있는 옷차림과 깔끔한 외모도 중요하다”며 “개인 옷집은 직원의 역할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해서 어느 정도는 외적 조건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외모 등 성차별은 엄연한 현행법 위반인 만큼 업주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용노동부 등이 나서서 이에 대한 홍보와 계도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여성 취업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아르바이트 채용 과정에서 남녀차별을 하거나 용모 조건을 제시하는 공고에 대해서는 이를 관할 노동지청에 진정서를 접수해서 고발하면, 노동지청은 법을 어겼는지의 여부를 조사한다고 안내했다. 관계자는 모집 공고에 용모 기준을 직접 적어서 남녀를 차별하는 등의 행위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런 모집 공고를) 단속하다 적발이 될 때도 있지만 일일이 모든 업장의 공고물을 항상 단속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알바를 구하는 사람들이 외모로 인해 채용이 거부되거나 업무 배치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외모 등을 이유로 업장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업무 분담에서 차별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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