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 리스트]안락사 전문병원 '디그니타스'의 회원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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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 리스트]안락사 전문병원 '디그니타스'의 회원이 된다면
  • 소설가 조명숙
  • 승인 2020.02.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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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소설가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리며 지낸 것이 한 해 하고도 절반이 넘는다. 미천한 공부를 보충하려고 외국으로 간 딸의 열 살, 여섯 살 두 아이를 맡았기 때문이다. 서른 해 전에 했던 일을 이제 와 다시 하려니 서투르고 조심스럽다. 엄마 마음과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다른지! 엄마일 때는 아이들이 늘 부족해 보여 마구 들볶았는데 할머니가 되어 한 세대를 건너 내 앞에 있는 신비롭고 작은 존재들은 그 자체로 그저 사랑스럽다.

서울로 가게 된 사정을 말하자 주위에서는 많이들 혀를 찼었다. 몸도 변변찮고 늙은 부부가 객지 생활을 하게 된다니 걱정하고 염려해주기도 했지만 당신들도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의 길을 택하는구나 하는 비아냥도 들었다.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어 겨우 반환점을 돌았구나 싶은 때에 덜컥 발목이 잡힌 내 마음이 오죽했겠는지, 서울이라면 먼발치 쳐다보기도 싫다는 남편이 얼마나 불안했겠는지 따위의 엄살은 털어놓을 데가 없어 일단 가슴에 묻었다. 딸의 공부는 내가 등 떠밀어 내몬 길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부산을 떠나 있으니까 부산 바다와 사투리가 자주 그립다. 길을 가다가 부산 사투리가 들리면 멈춰서 돌아본다. 지난 12월에는 딸이 겨울 휴가를 와서 이주일 정도를 부산에서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

여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을 조금은 더 써 보리라 다짐하고 출발했건만, 이래저래 어울려 노느라고 노트북을 켜 보지도 못하고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는 글 쓸 짬을 내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메모장을 들고 다니면서 끄적거리기는 해도 완성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제 쓴 글을 오늘 고치고, 오늘 쓴 글을 내일 고친다. 날마다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니 다시 습작기에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이 글도 여러 번 고쳐 쓴 것이다. 앞서 필자들이 쓴 글을 꼼꼼히 읽고, 그들의 버킷 리스트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감탄 후에는 탄식이 왔다. 여러 필자들에 비하면 내 버킷 리스트는 너무 소소한 것이어서 창피하기도 하다. 이 혼란기가 끝나고 나면 조금 더 새로운 내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꼽아 본다.

소설을 써야지...17년 벼려온 온 소재를 품고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버킷 리스트에서 첫 번째는 당연히 글을 쓰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계속해서 쓰는 것이다. 이번에 쓰는 소설은 석사논문을 쓸 때부터 구상을 했고, 망설이고 두려워하면서 무려 17년을 품고 있던 소재다. 언제 다 쓸지 모르는 작업이라 아득하지만 아무튼 Go on!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글을 쓸 수 있는 체질이라 나는 나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방, 내 책상 앞이 아니면 써지지 않으니 쓰려면 무조건 집에 있어야 한다. 이 버릇은 엄청난 장애를 동반하고 있다. 집에 있으면 내일 해도 될 일이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처럼 눈에 들어온다.

동료가 말하기를 이처럼 당장 급하지 않은 일에 자꾸 신경을 쓰는 일을 두고 ‘소설을 써야 하는데 써지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방어기제가 작동한 상태’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못 쓰는 핑계를 스스로 찾아나서는 꼴이다. 책꽂이의 먼지는 왜 꼭 소설을 쓰려고만 하면 눈에 띄는 건지, 더러운 베갯잇, 거울의 얼룩, 먼지투성이 구두, 세면대 물때 등등,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하면 왜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게 많은지! 이젠 나이를 먹어 체력도 달리는데 핑계거리는 자꾸 늘어나니 여간 곤란하지 않다.

차창에 방충망을 달고...‘차박’을 해 봐야지

지난해부터는 이 체질을 바꿔 보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그 노력 중의 하나로 ‘차박’을 계획하고 있다. 캠핑카 사는 일은 내 주머니로 언감생심, 지금의 승용차를 SUV로 바꾸지 못할 확률도 높지만, 마음을 먹고 보니 방법이 있었다. 뒷좌석을 잠자리로 이용할 수 있는 에어매트가 시판 중이었고, 창문에 장착하는 방충망도 맞춤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었다.

여름에 딸이 방학해서 돌아오면 도전할 작정이다.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해 봐야 한다. 나이를 더 먹으면 체력도 문제가 될뿐더러 운전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남편과 같이 가게 될까, 혼자 가게 될까? 아마도 같이 가게 될 것이다.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며 목적지를 두고 남편과 갑론을박에 티격태격할 게 뻔하지만 차박을 통해서 체질 개선을 하려는 계획이 있는 거나,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끝까지 쓰는 것을 첫 번째 리스트에 적은 것을 보면 소설 쓰는 일에 매진할 작정인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세 번째 나의 버킷 리스트는 소설을 쓰지 않고 살아 보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사진: 구글 무료이미지).
인생이란 무엇인가(사진: 구글 무료이미지).

내 속엔 소설가와 소설가를 싫어하는 내가 산다...‘소설 안 쓰기’란 버킷 리스트

지금처럼 어쩔 수 없이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소설을 쓰지 않고 살아보는 것 말이다. 문예창작과도 없고, 문화센터나 문학 강좌도 없던 시절에 나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습작기를 거쳤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 한 작품을 가지고 스무 번도 넘게 고쳐 본 적도 있다. 덕분인지 약간의 수확을 거뒀다. 그런데도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것은 한 편의 소설을 쓸 때마다 내가 품고 살아야 할 상처투성이 주인공이 하나씩 늘어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과 깊이 교감하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 것이 내 소설이어서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수렁에 빠졌다가 빠져나온 기분이 든다. 더러 즐기기도 했지만 그때의 고통은 근본적으로 끔찍한 것이어서 소설을 안 쓰고 살아 보려고 여러 번 옆길로 빠졌었다. 서예, 바느질, 한지공예, 차 만들기, 다육이 키우기, 자수, 요리, 그림 그리기 등, 딴전을 피우다가 소설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고백하는데, 내 속에는 소설가인 나와 소설가를 싫어하는 내가 함께 있다. 이제까지 소설가로 살았으니 소설가가 아닌 상태로 살아 보는 것도 희망 중 하나.

그런 희망을 품고 있어선지 지난해 여름부터 또 한눈을 팔게 되었다. 그릇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오래 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이사를 하고 보니 가까운 곳에 가까운 이가 가마를 운영하고 있어서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나와 그릇 만드는 멤버들은 제각각 다른 분야에서 베테랑이다. 따지고 보면 모두 외도를 하고 있는 셈이었지만 그 외도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 뒤늦게 합류한 내가 제일 초보인데, 초보는 하룻강아지라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좌충우돌하는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준 멤버들 덕분에 드디어 마음에 드는 그릇 몇 개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만든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차를 마시니 먼 원시의 세계로 회귀해 있는 듯, 보다 근원적인 어떤 것에 실가지를 대고 있는 듯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 그릇 만드는 일로 노년을 보내는 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소설을 쓰지 않고 살아 보기도 성공하는 셈이니 꿩 먹고 알 먹고.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소설로 돌아가 있을지 모른다는 함정을 조심하자.

‘가시나무새’를 잘 불러 보리라

다음으로 나의 버킷 리스트는 노래 몇 곡을 제대로 연습해서 불러 보는 것이다.

지난 해 말 서면에서 몇몇이 모여 장소를 옮겨가며 놀다가 노래방까지 가게 됐는데 노래 잘 하던 고 고현철 선생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그이가 즐겨 부르던 ‘광화문 연가’를 불렀는데 음색이나 음정이 영 그이 느낌 아니어서 좌중이 함께 웃었다. 솔직히 그 노래는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고음에서나 저음에서나 바이브레이션이 절묘했던 그이의 노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그이의 노래 중에서 ‘가시나무새’가 좋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하고 그이가 노래하면 가수 조성모보다 훨씬 짜릿한 슬픔을 전해 주었다.

가고 없는 그이의 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그이가 어쩌면 가시나무새처럼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번 불러 볼까 마음을 먹었는데, 아무래도 내 텁텁한 목청으로 불렀다가는 노래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이에 대한 추억마저 더럽혀질 것만 같아서 그만두었다. 집에 와서는 어떻든 불러볼 걸 후회했다. 노래방에만 가면 작아지는 나, ‘가시나무새’부터 연습해야지.

디그니타스의 회원이 된다면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리스트들과 함께, 또는 제일 먼저, 스위스에 있다는 안락사 전문병원 디그니타스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다.

작년에 엄마가 가셨다. 시골의 모진 겨울을 혼자 견딘 세월이 40년이고, 요양병원에서 비몽사몽 지낸 세월이 5년이었다. 엄마의 몸이 아주 조금씩 기능을 잃어가던 일, 큰 바위가 깨져 모래가 되듯이 엄마의 숨이 죽음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명치가 아프다.

시골집 옆방에서 지켜보았던 아버지의 마지막 신음도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엄마보다 먼저 오빠가 죽었고, 막내 여동생이 죽었다. 며칠 전에는 일흔을 앞두고 유방암 수술을 받은 큰언니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이를 먹은 만큼의 신체적 불안정 상태가 내게도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무도 함께할 수 없는 죽음, 존재의 가장 마지막이고 가장 큰 일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으니, 존엄을 꿈꾸는 일은 염치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감히, 행여 자격이 있을까 하고 문을 두드려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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