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빅뉴스의 일요 터치]명을 거역하다니...네 죄를 네가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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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의 일요 터치]명을 거역하다니...네 죄를 네가 알렸다?
  • CIVIC뉴스
  • 승인 2020.01.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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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쪽에서 조선시대를 방불케 하는 봉건적 단어들이 튀어나와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추미애 법무부장관(사진: 더 팩트 임세준 기자, 더 팩트 제공).
정권 쪽에서 조선시대를 방불케 하는 봉건적 단어들이 튀어나와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추미애 법무부장관(사진: 더 팩트 임세준 기자, 더 팩트 제공).

영화 <변호인>에서 노무현 변호사(배우 송강호 분)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역설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항이 의지하는 곳이 있으니, 제1항이다. 제1항은 이렇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뜻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주권의 운용이 국민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이다. 왕이나 독재자가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국과 반대되는 말이다. 후자에서는 당연히 ‘짐’이나 '본인' ‘거역’ 같은 권위적 단어가 애용된다.

그런데, 무려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전제군주국을 연상시키는 불온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지난 9일 검찰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야당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묵살한 인사’라고 비판하자 “인사에 대한 의견을 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명(命), 거역(拒逆)...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도 가세했다. 그의 트위터 글은 그가 전제군주국인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형조판서가 입조했다. 의금부도사·포도대장은 이제 집포(緝捕·죄인을 잡는 일) 같은 원래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본인도 망측했던지 이내 글을 삭제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추임새를 넣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태도를 비판한 장문의 성명서에서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고색창연한 표현을 썼다.

그러니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앞으로 대통령이 왕처럼 직접 친국(親鞠/親鞫)을 하고,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고신(拷訊, 고문)을 하면서 “이노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호통 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건 아닌가? 대통령이 특별사면이라도 하면 성은이 망극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여기에 대한 답을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부장검사)가 내놓았다. 그는 사표를 쓴 뒤 내부 통신망에 글을 남겼는데, 조선 선비의 기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깟 인사나 보직에 연연하지 말아 달라. 봉건적 명에는 거역하라. 추악함에 복종하거나 줄탁동시(啐啄同時) 하더라도 겨우 얻는 것은 잠깐의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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