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우의 사진 이야기]86년 남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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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우의 사진 이야기]86년 남포동
  • 사진가 문진우
  • 승인 2020.01.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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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37
사진가 문진우
사진가 문진우

작가의 말

간식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겨울 긴 밤 출출해진 뱃속을 행복하게 해준 것들 중 으뜸은 군고구마였다.

사랑채 할아버지 방 화롯불이나 저녁하고 남은 아궁이 속 잔불 속에 고구마를 몇 개 던져 놓고 한참 있다 꺼내면 노릇노릇 잘 익은 군고구마가 되었다. 뜨거운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탄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간혹은 불 속에 너무 오래두어 완전히 숯검정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지...

80년대만 해도 겨울방학을 맞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2~3명씩 투자(?)해서 요즘 같으면 아르바이트 삼아 동네 어귀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용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추운 겨울에 언 발 동동거리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군고구마를 사라고 외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친구들이 도와준답시고 몰려오기도 했고, 어쩌다 예쁜 아가씨라도 지나가면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어 호객을 빙자해 접근하는 풍경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군고구마가 있긴 하지만 아궁이 속 잔불이나 화롯불에서 구워져 나온 것만큼은 맛이 못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맛은 똑 같겠지만 추억이 덧칠되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한다.

노점상 리어카 위에 고구마가 담긴 작은 박스가 놓여 있다. 할머니가 고구마를 채 썰어 튀겨서 팔고 있다. 튀김 용기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이 겨울임을 직감케 한다. 추운 탓인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담배 한 모금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젠 추억이 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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