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차별의 장벽, 한국은 여전히 높고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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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차별의 장벽, 한국은 여전히 높고 두텁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6.03.0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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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지수,' OECD 최하위...500대 기업 여성임원 비율 2.3%에 불과

1908년, 1만 5,000여 명의 미국 섬유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먼지가 자욱한 노동 현장에서 매일 14시간 가까이 일을 하던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당시만 해도 그렇게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이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1975년 UN이 여성을 위한 기념일로 지정했다. 3월 8일, 오늘이 바로 올해로 108주년 되는 세계 여성의 날이다.

2012년, 우리나라는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한 양성 평등 국가에 사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양성 평등 의식이 확립되지 않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일 OECD 회원국의 ‘유리천장(glass ceiling,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지수’를 발표했다. 이 유리천장지수는 성별 임금 격차, 기업 고위직 비율, 자녀 양육비용 등 여성 관련 지표 10가지를 종합해 100점 만점으로 산출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25점을 받았고, OECD 평균은 56점이었다. 1위는 82.6점의 아이슬란드, 2위는 79.3점의 노르웨이, 3위는 79.0점의 스웨덴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올랐다.

유리천장지수가 OECD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한국 전체 직원 대비 여성 임원 비율에서 대한민국이 꼴찌다. 한국 5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임원직이라는 높은 직책까지 오르는 여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여대생 최지언(20,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임금에 대한 불만이 있다. 같은 편의점에 근무하는 남자 대학생이 있는데, 고용주가 그 남학생에게만 시급 500원을 더 주기 때문이다. 남학생이 큰 물건을 옮기는 등 힘든 일을 많이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최 씨는 “사실 그렇지도 않다. 사장님이 몰라서 그렇지, 그나 나나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것을 포함해 노동 강도가 거의 같다”고 말했다.

실험을 주로 하는 화공계 회사에 다니는 이은미(28, 서울시 관악구) 씨는 “눈에 띄게 차별하는 일은 줄었지만 뜯어보면 불쾌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씨는 상사가 남자 사원에게는 적극적으로 주 업무를 시키면서도 여자 사원에게는 커피를 타게 하거나 청소를 시키는 등 잡일을 맡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단순히 여자라서 그런 걸까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기혼 여성들이 더 심하게 겪고 있다. 한 회사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선영(32, 부산시 동래구) 씨는 “확실히 기혼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미혼인 김 씨는 입사 3년째 되던 해에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했다. 김 씨의 한 입사 여성 동기는 입사 직후 결혼했는데 곧바로 임신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해 자리를 6개월간 비웠다. 이 동기는 3년차에 승진을 한 김 씨와는 다르게 아직까지 평사원에 머물러 있다. 김 씨는 두 사람의 업무 능력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여성인력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기혼 여성의 실업률은 2.52%로 집계됐다. 2014년 하반기 1.82%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난 것. 취업 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여성 구직 단념자 역시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3년에 5만 9,000명, 2014년에 16만 6,000명이었던 여성 구직 단념자는 지난해 4분기 21만 2,000명으로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통계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단념한 여성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와 가사다. 육아와 가사 때문에 비경제활동인구가 됐다는 여성 응답자는 지난해 4분기 기준 136만 6,000명으로, 전체 응답자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처럼 많은 여성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사와 육아 등에 따른 경력 단절로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임윤옥 상임대표는 여성의 능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여성을 옥죄는 현실적 부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유리천장을 부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은 낮은 지위와 경력 단절로 어려움을 겪는데 이 두 가지는 원인과 결과가 복잡하게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임 상임대표는 “노동시장에서 낮은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이 단절됐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계속해서 낮은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 상임대표는 저임금과 고용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제도적으로 기회를 보장해주고 개인들은 육아 휴직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나 가부장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등 “구조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유리천장을 깨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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