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과 세계 문명 양분한 한자 가치 찾아 문화적 확장성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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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과 세계 문명 양분한 한자 가치 찾아 문화적 확장성 재조명한다”
  • 취재기자 이성혁
  • 승인 2019.12.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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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 경성대 'HK+한자문명연구 사업단장' 인터뷰

상형문자인 한자 응용하면, 창의적 스토리텔링, 디자인, AI에도 접목 가능
각종 한자 시민강좌 개설, 국제적 연구 네트워크 구축으로 한자문명권 유대감 느끼며 보람
한자 강의 유튜브는 곧 개설, 한자박물관∙한자문명창의 체험관 건립이 미래 꿈

경성대 문화관 1층에는 한자연구소가 있다. 그 아래에는 ‘HK+한자문명연구 사업단’이란 명패가 돋보인다. 겉은 소박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21세기 한자문명권인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을 아우르는 지역을 한자라는 공통된 문화 코드로 묶어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미래 문화를 연구하는 곳이다.

HK란 Humanities Korea의 약자로 인문학 육성을 위해 교육부가 연구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부지원사업으로, 이곳 한자연구소가 2017년부터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현재까지 HK+한자문명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다. 지원액수는 7년간 84억 원으로 연간 12억 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여기에는 국내 9명, 해외 9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고, 20명의 연구 보조원들이 일하고 있다.

이 사업을 처음부터 신청하고, 수주하고, 진행하고 있는 사업단장이 경성대 중국어과 하영삼 교수다. 하 교수는 1984년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부터 1994년까지 대만 국립 정치대학 중문과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1년 3월 동의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그 사이 1997년 1년 간 중국 국무원 초청으로 화동사범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그후 동의대에 복직했다가, 2001년 3월부터 현재까지 경성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영삼 교수는 2008년에 생긴 경성대 한자연구소 소장을 창립 때부터 줄곧 맡아 탁월한 연구 업적을 쌓았다. 하 교수가 대형 HK+ 정부지원 사업 수주를 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그가 쌓은 연구 실적이 지렛대 역할을 한 것. 인터뷰의 물꼬는 과연 한자연구소에서 무슨 업적과 성과를 만들어냈는지를 묻는 것으로 틀 수 있었다.

경성대학교 한자연구소의 하영삼 교수(사진: 취재기자 이성혁).
경성대학교 한자연구소의 하영삼 교수(사진: 취재기자 이성혁).

Q. 한자연구소의 연혁, 구성, 조직, 그동안의 연구 활동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A. 한자연구소는 2008년에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으니 중국 대학들과 국제 협력을 하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 다음은 저널, 학술지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한자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신청해서 선정돼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초기 단계의 성과 중 하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것이었다. 한자 연구의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각 나라에만 있는 한자 연구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연구해왔다.

한자연구소 구성은 초기에는 조교와 연구원 한두 명이 고작이었으나, 지금 HK+사업을 수주하고 나서 한자연구소가 사업단의 중심 조직이 됐다. 그래서 현재 연구소가 있고 그 산하에 HK+한자문명사업단이 속해 있다. 사업단 안에는 한자 연구 등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국내 9명, 해외 9명의 연구 인력과, 20명 정도의 연구 보조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비 규모가 큰 만큼 인원이 방대해졌다. 책임감도 더 커졌고, 다들 열심히 연구에 임하고 있다.

Q. 특히 한자연구소에서 그동안 쌓은 저술 사업을 설명해달라. 무슨 책을 발간했고, 그 책들은 왜 중요한지를 말해달라.

A. HK+ 사업을 시작하기 전, 한자 연구소에서 많은 일을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업은 한자사전 즉 자전(字典)을 총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었다. 보통 사전을 찾을 때, 지금은 네이버 사전을 통해서 찾는데, 조선시대에는 네이버 같은 게 없었으므로 자전이 매우 중요했고 발달돼 있었다. 옛날 학자들이나 선비들은 조선말 개화기에는 중국어를 공부해야 했고, 일제강점기에는 한자와 일본어를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사전이 굉장히 발달했다. 그중 한자자전들을 모아서 데이터베이스화하자는 게 처음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하늘 ‘천(天)’자를 찾으면, A사전에선 이렇게 설명이 나와 있고, B 사전에선 또 다르게 설명이 나와 있다. 또 일제강점기 초기의 사전에는 또 다르게 나와 있는 등 모든 자전들이 제각각 특색이 있다. 이 모든 우리 과거 자전들을 모아 이름 하여 <한국역대자전총서>라는 책을 발간했다. 나아가 중국에는 방대한 <강희자전>이 있고, 일본도 일본의 자전들을 모아 만든 일본만의 책이 존재하는데, 우리 연구소는 이들을 다 모아서 하나의 총서로 만드는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이 작업이 이뤄지면,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한자의 독창적 용법도 알 수 있고, 특정한 한자가 중국에서 들어와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 왔다는 등의 한자의 유래와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學校(학교)’라는 한자는 배우는 곳이라 해서 한자권 어느 나라나 그 뜻이 같지만, ‘時計(시계)’는 한국과 일본에선 시계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鐘表(종표)라고 한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동노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왜 같은 시계라는 단어를 쓰며, 한일 중 누가 먼저 시계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왜 중국과 베트남에선 시계를 각각 종표와 동노라고 할까? 같은 한자 문화권인데 왜 차이가 날까? 이런 문화적 차이까지 파악하려고 한다.

Q.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의 사업비 지원 규모와 진행 연도를 말해 달라.

A. 7년에 84억 원이니까, 연간 12억 원 정도가 되겠다. 2017년도에 처음으로 HK+지정이 됐으니 올해로 3년째다.

Q. 한자문명연구사업단이 달성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A. 인류가 태어나서 세계 문명을 발전시켜 오면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됐다. 그게 가능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만이 고도의 소통 수단인 ‘말’을 만들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말을 통해서 소통하니까 인간 사회는 고도의 협력 사회가 된 것이다. 한 개인은 코끼리, 호랑이보다 약하지만,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고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말이 있으니까, 인간은 계속해서 사유하게 되고, 자가 학습을 통해 더욱 성장하게 된다.

말이 존재하는 것은, 즉 문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문자는 기록이 가능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남겨놓은 문자를 보고 그 후손들은 지식을 책 한 권으로 고스란히 넘겨받게 되고, 이런 게 몇 세대가 계속 되면서, 인류는 엄청난 지식을 축적해왔다. 문자는 인류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세계 문자의 두 가지 축은 영어 알파벳과 한자다. 이 양대 세계 문명 속에서 한자의 가치를 알아내는 것이 한자문명연구 사업단의 최종 목표다. 다들 ‘한자가 어렵다’, ‘우리 것이 아닌데 왜 배우느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알파벳만 있는 서구 문명과 달리, 우리 민족이 한글과 한자 둘 다 깨우친다면 더 위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자라는 문자는 상형 문자이기 때문에, 현재 산업화 시대에 맞춰 한자가 지칭하는 사물로부터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고, 디자인도 되고, 애니메이션도 되고, AI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자가 전 세계적인 문화의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여러 발전 방향을 찾고 싶다.

Q. 한자문명연구 사업단의 주요 사업과 그 상세한 활동 내용을 설명해달라.

A. 한자와 관련된 여러 시민강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한자 보급 유튜브를 만들 계획이다. 대면 접촉으로만 할 수 있는 시민강좌의 한계를 넘어서, 한자의 어원, 어휘, 한자 문화사를 유튜브를 통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쉽게 한자를 접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한자를 더 재밌고, 쉽게 알게 하기 위해, 한자연구소에서 만든 한자카드(사진: 취재기자 이성혁).
한자를 더 재밌고, 쉽게 알게 하기 위해, 한자연구소에서 만든 한자카드(사진: 취재기자 이성혁).

시민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주기 위한 시민강좌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기 힘든 갑골문자를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하영삼 교수와 함께 하는 갑골문 강독’을 비롯하여, ‘한자로 읽는 동아시아’라는 제목으로 동아시아의 진수인 술, 차, 영화, 관광, 춤, 교육 등에 사용되는 한자를 통해서 이들 다양한 분야를 쉽게 이해하도록 지식을 제공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또한 과거 문화를 알아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자가 어떻게 문화 콘텐츠와 잘 융합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한자로 문화 콘텐츠를 만든다고?’라는 이름의 특강도 진행했다. 또한 한자연구소가 부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부산의 지명, 역사적 인물, 역사유적 및 유물 등을 한자를 통해서 재밌게 알 수 있는 ‘부산의 한자로드’라는 행사 도 진행했다.

‘하영삼 교수와 함께 하는 갑골문 낭독’과 ‘부산의 한자로드’ 포스터(사진: 한자연구소 홈페이지).
‘하영삼 교수와 함께 하는 갑골문 낭독’과 ‘부산의 한자로드’ 포스터(사진: 한자연구소 홈페이지).
‘한자로 문화콘텐츠를 만든다고?’ 특강을 소개하는 안내문(사진: 한자연구소 홈페이지).
‘한자로 문화콘텐츠를 만든다고?’ 특강을 소개하는 안내문(사진: 한자연구소 홈페이지).

Q. 한자문명 연구를 하면서 힘든 점과 보람찬 점을 소개해 달라.

A. 힘든 점은 딱히 없다. 우리 사업단이 만든 한자 카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굉장히 신기해하고 한편으론 재밌어한다. 사람들에게 한자를 알려주기 위해 내가 노력해온 것들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한자를 연구하면서 한자 문명권 국가 간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국가라는 국경을 넘어서 한자문명권 간 협력을 이루어 내고, 또 같이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가장 보람차다.

경성대학교 문화관에 위치한 한자문명창의체험관(사진: 취재기자 이성혁).
경성대학교 문화관에 위치한 한자문명창의체험관(사진: 취재기자 이성혁).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 사업 후에는 무엇을 할 예정인가?

A.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이 많은데, 유독 한자 박물관만 없다. 부산에 한자 문명 체험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단순한 박물관은 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가상현실을 통해 사람들이 직접 한자를 체험해서 한자가 왜 이렇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나라 영상 콘텐츠가 시작된 곳이다. 그래서 부산은 문화적으로 한자문명권인 동아시아 국가들과 접목하기도 쉽고 큰 관심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있는 게 경성대 문화관 2층의 ‘한자문명창의체험관’이다. 예산이 부족해 전시물이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최신 콘텐츠들을 도입해서 관람객들이 몸으로 한자의 유래나 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확대하고 싶은 게 궁극적인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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