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적산가옥, 아픈 상흔 남기고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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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적산가옥, 아픈 상흔 남기고 사라져간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6.03.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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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살던 곳...몇 곳 외엔 가치 인정 못받고 방치
▲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의 외관(사진: 문화재청 제공).

검은색 기와 지붕 끝이 눈썹 모양으로 살짝 올라간 팔작 지붕, 돌출된 주 출입구에도 작은 기와 지붕이 언쳤다. 목재 널판지를 나란히 세워 붙인 외벽엔 유리 창문이 여러개 만들어져 있다. 가옥 안으로 들어서면 가파른 목제 계단이 2층으로 인도한다. 잘 전지된 수목들이 옹기종기 배치된 정원...얼핏 외형만 보면 마치 일본 교토의 한 전통가옥을 방문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부산 수정동에 소재한 대표적 일본식 가옥, 이른바 ‘적산가옥’인 정란각의 현 모습이다.

일본식 가옥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인 근대기의 건물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을 증언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각성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자산이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일본식 가옥을 포함한 많은 근대 유산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적산(敵産),’ 즉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식 가옥은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비게 된 건물을 말한다. 해방 후 정부에 귀속된 이 건물들은 일반인들에게 팔렸다.

일본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입구였던 도시, 부산에는 아직도 도시 곳곳에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다. 부산 외에도 목포, 군산, 포항 등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항구 도시에는 일본식 가옥이 즐비하다.

▲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의 복도(사진: 문화재청 제공).

부산의 일본식 가옥은 구도심인 초량동, 중앙동, 동광동 일대에 밀집해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손에 돌아온 일본식 가옥은 대부분 주거 기능을 유지했지만 2층은 그대로 두고 1층은 식당이나 사무실, 공장 등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도심 골목길에 들어서면 일반 주택들과 자연스레 섞여 있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일식 건물인지 일반 주택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일본식 가옥이 많다. 이 건물들은 근대 건물이기에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해방 이후 보존에 소홀하면서 여기저기 부서져 폐가처럼 방치되거나 개보수되어 원래 모습을 잃었다. 이렇게 방치된 건물 수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고급 일본식 가옥으로 보존된 건물도 있다. 대표적으로 등록문화재 330호 ‘부산 수정동 일식가옥’과 등록문화재 349호 ‘부산 초량동 일식가옥’이다. 현재 각각 문화재청과 일맥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는데 ‘정란각’이라 불리던 수정동 일식 가옥은 일본인들의 별장으로 쓰이던 건축물이다. 이 건물들도 해방 후 증축과 개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관리된 이 건물 내부에는 옛날처럼 바닥에 다다미가 깔려 있고 목조 건물 형체에 긴 복도를 따라 유리 창문이 달려 있다. 하지만 이들도 정식 지정문화재가 아닌 등록 문화재다. 등록 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신고를 위주로 하며 문화재청의 지도·조언·권고로 소유자의 자발적인 보호노력을 이끌어 낸다는 것으로 보존에 강제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 대구 북성로의 공구박물관. 일본식 가옥 정비 사업을 통해 재현했다(사진: KBS1 뉴스5 캡쳐).
▲ 대구 구룡포는 거리를 만들어 홍보하고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사진: 포항시 홈페이지 캡쳐).

경북 포항 구룡포에는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조성돼 정부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본식 가옥 등 근대문화를 잘 재현해 시민들이 과거를 둘러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또 일본인들에 의해 최대 번화가로 발달했던 대구 북성로에도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대구 중구를 중심으로 400여 채가 남아 있고 대구시는 일본식 가옥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산에도 일본식 가옥이 많은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건물인 히로쓰 가옥은 보존과 정비가 잘되어 있다. 거상 히로쓰가 살던 집으로 규모면에서 다른 보통의 일본식 가옥보다 크다. 아담하게 꾸며진 일본식 정원과 다다미방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지건축부설연구소 홍순연 선임연구원은 부산일보 기고를 통해 부산은 근대도시이기 때문에 근대를 빼놓고 도시의 역사를 논할 수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여기에서 홍 선임연구원은 "지역의 근대 문화유산이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갖고 보존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부산시는 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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