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밥도둑 ‘배달 거지’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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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밥도둑 ‘배달 거지’를 아시나요?
  • 취재기자 안시현
  • 승인 2019.12.13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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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튀김, 군만두, 보쌈 등 안 걸리는 음식 알려주는 ‘배달 알바 꿈팁’도 나돌아
음식점주는 배달업체, 배달기사, 소비자 사이에서 속앓이
훼손 흔적 알리는 음식 포장지 안심 스티커가 해결책으로 등장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배달거지’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배달거지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달음식을 몰래 빼먹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신조어다. 이 배달거지란 단어는 한 웹사이트에서 ‘배달알바 꿀팁’이라며 올라온 글을 보고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생겼다. 다른 신조어로는 ‘신(新)밥도둑’이 있다. 배달의 민족임을 자랑하던 배달천국 우리나라에서 배달음식 빼먹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전에는 배달기사가 배달음식을 빼먹는 행위가 크게 문제시된 바 없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 배달알바 꿀팁 게시물과 CCTV로 확인된 배달알바의 행동을 찍은 사진으로 인해 이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누리꾼들과 소비자들은 배달앱에 리뷰를 올리거나 커뮤니티에 게시물을 올림으로써 배달거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배달꿀팁이라며 배달음식을 빼먹는 방법, 음식별 난이도 등을 설명하는 글이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사진: 디시인사이드 치킨갤러리 게시글 캡처).
배달꿀팁이라며 배달음식을 빼먹는 방법, 음식별 난이도 등을 설명하는 글이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사진: 디시인사이드 치킨갤러리 게시글 캡처).

꿀팁으로 올라온 게시글에 따르면, 이들이 ‘몰래 빼먹기 좋은’ 음식은 감자튀김, 치킨, 군만두, 탕수육, 단무지, 보쌈/족발, 피자, 콜라 등이 있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한 두 개쯤 사라져도 눈치 채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게시글은 치킨을 몰래 먹는 경우 순살은 도둑질 난이도가 낮은 편이며 뼈가 있는 치킨은 인기 있는 다리와 날개에 비해 알아채기 힘든 목, 가슴살, 갈비부위를 먹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치킨포장은 습기로 인해 치킨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약간의 공간을 남기는데, 그들은 이 공간을 이용해 치킨을 빼 먹으면 된다고 한다. 피자의 경우 한 조각을 먹고 다시 이어붙이거나 토핑을 몇 개먹는 정도라고 이 글은 말하고 있다.

한 인터넷 게시글 작성자가 치킨 배달이 늦어지자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보다 배달기사가 배달음식인 치킨을 꺼내 먹는 모습을 목격하고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사진: mlbpark 게시글 캡처).
한 인터넷 게시글 작성자가 치킨 배달이 늦어지자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보다 배달기사가 배달음식인 치킨을 꺼내 먹는 모습을 목격하고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사진: mlbpark 게시글 캡처).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7월 대비 배달음식 관련 소비자상담건수가 한 달만에 19.4% 증가했다. 주된 상담내용으로는 포장 및 배달음식의 이물질 혼입, 음식물 섭취 후 부작용, 배달대행서비스 관련 문의가 있다.

음식관련서비스 소비자상담 상담건수 현황 그래프(도표: 한국소비자원 자료, 시빅뉴스 제작).
음식관련서비스 소비자상담 상담건수 현황 그래프(도표: 한국소비자원 자료, 시빅뉴스 제작).

그러나 해당 리뷰를 받아 타격을 입는 사람은 배달음식을 빼먹은 배달기사가 아니라 배달음식 점주다. 음식을 배달 대행업체에 맡긴 것뿐인 배달음식 점주는 이 일로 인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배달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승(43, 부산시 동구) 씨는 “차라리 가게에서 배달음식 양을 적게 줘서 고객이 불만을 갖는다면 할 말이 없는데, 배달기사 때문에 우리 음식점이 고객으로부터 낮은 평점을 받으면, 당연히 가게 입장에선 억울하다”며 이 일에 대한 심정을 토로했다.

배달음식점은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안심스티커’를 도입했다. 포장지에 안심스티커를 붙여서 배달됐을 때, 안심스티커가 훼손된 흔적이 있으면 그것은 배달원의 소행임을 알아챌 수 있는 방식이다. 확실히 배달음식점의 억울함은 해소할 수 있어 보인다.

배달음식을 보호하기 위해 포장박스에 붙은‘안심스티커’(사진: 취재기자 안시현).
배달음식을 보호하기 위해 포장박스에 붙은‘안심스티커’(사진: 취재기자 안시현).

이렇게 배달음식 안전을 위해 도입된 안심스티커 비용을 가게 자체에서 부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추가비용을 고객으로부터 받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추가비용을 부담한 적이 있는 한선우(22, 대전시 중구)씨는 “돈 나올 구멍이 소비자밖에 없나. 배달거지 때문에 소비자가 왜 비용을 부담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반감을 표출했다.

또, 안심스티커에 대한 다른 문제점도 있다. 바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회사원 유은영(27, 부산시 남구) 씨는 “이런 안심스티커가 훼손 상태로 미루어 짐작해 증거만 잡을 뿐이지 이런 짓을 한 배달기사에게 제대로 된 제재가 이루어진 걸 본 적이 없고 제재하겠다는 말 뿐인 것 같아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같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런 것 말고 믿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달음식점이 배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배달음식점 자체에서 배달종사자를 고용하거나, 배달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배달 대행업체가 배달주문업체, 배달앱과 같은 회사인 경우도 있다. 문제는 배달음식점 자체에서 고용한 종업원이 음식을 빼먹었다면, 리뷰를 보고 음식점 자체적으로 배달기사를 제재할 수 있지만, 배달 대행업체의 배달기사가 음식에 손을 대면 음식점이 배달 기사를 직접 제재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배달종업원을 쓰는 방식에 따라 대처방법의 효과가 다르다(그림: 취재기자 안시현).
배달종업원을 쓰는 방식에 따라 대처방법의 효과가 다르다(그림: 취재기자 안시현).

배달 대행업체가 배달기사 일탈행위에 대한 제재를 미지근하게 하자,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소비자들은 배달기사를 법적으로 처벌하기를 원하는 여론도 생겼다. 경성대학교 법행정정치학부 심재무 교수는 “사안이 심각하다면 형사고소까지 갈 순 있겠지만 형사고소는 어디까지나 최종적인 수단이 돼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배달대행회사가 제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배달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민우(26, 부산시 해운대구)씨는 “요즘 배달기사들이 간이 커도 너무 크다”며 “오늘만 사는 사람들 얘기 같다. 나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짓이다. 모든 배달기사들이 배달거지 취급당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이런 행위를 한 경험이 있는 한 배달원은 “부끄럽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끼니를 때울 시간이 마땅치 않아서 그랬다”며 “배달종업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다면 이런 일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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