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리스 사회... 카드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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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리스 사회... 카드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불편하다
  • 취재기자 안나영
  • 승인 2019.12.1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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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표를 사려면 무조건 현금을 준비해야 하니 너무 불편하다"

평소 지하철을 애용하는 직장인 김현진(26) 씨는 “교통카드 기능이 되는 체크카드를 가지고 있지만 가끔씩 카드를 놓고 나왔을 때 출근이 급한 상황에서 현금이 없어 난처한 상황이 많았다. 이제는 지갑에 필수로 현금 만 원을 넣어 다닌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이어 "요즘 누가 지갑을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주변 친구들 역시 지갑이 있어도 카드만 들어있지 현금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변화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역행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카드 결제는 물론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사실상 현금이 필요 없는 캐시리스(Cashless ·무(無)현금) 사회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금으로만 구매 가능한 품목들이 있어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5월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화폐 사용' 및 '현금 없는 사회'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금 사용 비중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73.1%가 '과거에 비해 현금 사용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평소 주로 자주 이용하는 결제수단으로는 신용카드(76.1%)와 체크/직불카드(62.6%)를 꼽았다.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대부분이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런 사회 흐름과는 다르게 로또, 편의점 문화상품권, 지하철 표 등은 현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다.

-복권의 사행성을 막기 위한 제재

로또를 카드로 살 수 없는 이유는 법이 그래서다. 판매점이 복권을 카드로 팔면 불법이다.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복권 및 복권기금법' 5조 4항을 보면, 신용카드 결제방식으로 복권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매점 입장에서는 수수료까지 내면서 불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으니, 법을 어기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이처럼 카드 결제를 불법으로 못 박은 것은 복권의 사행성 때문이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 구매자가 외상으로 도박에 나서는 모양새가 된다. 해당 법안에서도 5조 4항에 대해 '복권 구매자의 사행성을 억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한다.

로또를 일정 금액 이상으로 살 수 없도록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관련 법에서는 판매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넘어 팔아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 시행령에서는 이를 10만 원으로 정하고 있다.

로또를 하는 것이 한 주의 낙인 직장인 김승철(48) 씨는 “지갑 없이 스마트폰 케이스에 신용카드와 주민등록증만 넣고 다니는데, 매번 로또를 살 때마다 현금을 뽑아야 해 불편하다”고 불만을 전했다.

부산 대연동의 한 편의점 점주 A 씨는 복권을 카드로 구매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카드로 결제하게 되면 마진이 안 남는다"라며 "복권 금액보다 카드 수수료가 너무 비싸고 애초에 복권은 서비스 상품이라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금으로 복권을 판매하고 있는 복권 판매점(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현금으로 복권을 판매하고 있는 복권 판매점(사진: 취재기자 안나영).

-카드깡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문·상 카드 결제

편의점 문화상품권의 경우 쉽게 현찰로 교환될 수 있고, 카드 결제가 된다면 신용을 전제로 한 후(後) 결제 방식이 되기에 일종의 카드깡(신용카드 할인)과 같아지게 된다.

카드깡이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는 것처럼 꾸며 결제한 뒤 현금을 받는 불법 할인대출을 말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문화상품권을 카드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대학생 박준혁(22) 씨는 "온라인상에선 문화상품권이 카드 결제가 되지만 누가 문화상품권을 온라인에서 사나. 대부분 현장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현장에서도 카드 결제가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금으로 판매되고 있는 컬쳐랜드 문화상품권(사진: 컬쳐랜드 홈페이지 캡쳐).
현금으로 판매되고 있는 컬쳐랜드 문화상품권(사진: 컬쳐랜드 홈페이지 캡쳐).

-막대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카드 결제와 충전

특히 지하철 표의 경우 카드 결제가 불가능한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서울교통공사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선불교통카드, 정기권 카드의 신용카드 충전을 제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공사를 포함한 수도권 9개 도시철도 운영 기관들은 정기권 등 충전 시 카드 결제 시스템 도입을 논의한 바 있으나, 막대한 시스템 구축비용 및 카드사로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 비용 추가 발생, 운송원가 상승, 지하철 운임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등의 문제점 때문에 결제 시스템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계속해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생 이지은(22) 씨는 “교통카드를 깜빡하고 집에 놓고 나온 적이 있어 현금을 뽑으려고 지하철역 주변의 ATM기와 은행을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카드 결제가 되는 택시를 타고 이동한 적이 있다.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한 것 같아서 상당히 불편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직장인 남민주(25) 씨는 “교통카드 잔액이 500원 부족했는데 그 500원 때문에 현금을 뽑고, 만 원을 천 원으로 바꾸고, 천 원을 다시 500원으로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카드로 충전이나 결제가 되면 이런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로또 구매, 교통카드 충전, 지하철 정기권 구매는 왜 신용카드로 결제가 안 되나요? 카드로 가능하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현금만 가능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요즘 같은 세상에 현금만 고수하는 게 납득이 안 갑니다"라고 토로했다.

왼쪽부터 현금으로만 충전되는 교통카드 보충기와, 현금으로만 결제되는 지하철 승차권 발매기다(사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무료 이미지).
왼쪽부터 현금으로만 충전되는 교통카드 보충기와, 현금으로만 결제되는 지하철 승차권 발매기다(사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무료 이미지).

로또, 편의점 문화상품권, 지하철 표 외에도 사람들은 재래시장, 노점장, 세탁소, 포장마차, 톨게이트 비 등도 카드 결제가 가능하게 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한편 캐시리스 사회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현금 결제가 일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전자결제는 결국 해킹 위험도 있어, 여전히 현금만 선호하는 수요도 분명 있다"면서 "아예 현금 결제가 사라지는 사회가 오긴 아직 이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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