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인프라 부족, 빛 바랜 '구포 3·1운동 테마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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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프라 부족, 빛 바랜 '구포 3·1운동 테마거리'
  • 취재기자 이령희
  • 승인 2016.02.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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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 대형 벽화들 조성...사진 찍을 곳 마땅찮고 밤 되면 유흥가로 변해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독립 만세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3·1 운동 소식을 접하게 된 부산 각지에서도 상인과 농민들을 중심으로 항일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해 3월 29일, 당시 1,200여 명이 모이는 부산 최대의 항일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구포장터 만세운동이다.

항일 투쟁사의 역사적 현장인 부산 북구 구포만세길에 입체벽화로 꾸며진 ‘역사 테마거리’가 만들어졌다. 역사 테마거리는 원래 철길 방음벽이 있던 곳에 평면적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트릭아트 기법을 활용한 벽화를 그려 놓았고 그 당시 습격했던 주재소를 재현해 놓았다.

▲ 평면적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트릭아트 기법을 활용해 실제 3·1 운동 만세운동 모습이 그림자에 비치듯이 사실적으로 표현돼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 실제 일제 강점기 주재소를 재현해 놓았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부산 북구청은 구포시장에서부터 구포역까지 850m 구간에 약 16억 원이 투입해 ‘역사 테마거리’ 조성사업을 2014년 2월부터 계속 진행 중이다. 북구청은 역사 테마거리를 조성함으로써 철길 주변이 슬럼가 같다는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해 북구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을 기대했다. 북구청은 역사 테마거리가 더 나아가 학생들의 역사적 교육의 장으로써 활용되고, 구포시장 일대 상권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 ‘역사 테마거리’에 그려져 있는 3·1 운동 모습의 벽화와 글귀(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그러나 큰 기대를 안고 조성된 역사 테마거리는 주변에 제대로 된 관광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인근 상인들에게 거대한 벽화그림은 오히려 골칫거리로 남게 됐다.

▲ 구포만세길 약도. 약도에서 철길이 있는 마을과 시장이 있는 마을이 서로를 볼 수 있고 왕래도 가능했지만, 철길과 상가 사이에 벽화가 생기면서 철길 마을과 시장이 단절돼 버렸다(그림: 취재기자 이령희).

칙칙했던 길에 벽화가 만들어 지면서, 구포 만세길은 부산 3.1운동의 최대 발생지라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벽화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인도에 버젓이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불법 주차되면서 관광객들은 불편을 느끼고 있다. 또 벽화 전경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은 상점을 침범해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상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한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관광객 박모(21, 겅남 김해시 구산동) 씨는 사진을 찍고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선 맞은편 상점에 들어가야지 제대로 찍을 수 있었다. 박 씨는 “벽화가 배경으로 나오려면 찻길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상점에 들어가서 찍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당황했다”며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벽화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도표시를 무시한 채 자동차가 불법 주차되어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 벽화 맞은편에는 철거 중인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역사 테마거리에서 장사하는 상인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원래는 시장 상가가 있고 그 앞에 시장 거리가 있었으며, 그 맞은 편에 철길이 있었다. 시장에서 보면, 바로 철길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장 맞은편 철길에 목재 벽을 세워 벽화를 그렸다. 시장에서 보이는 것은 철길이 아니라 벽화가 그러진 벽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인들이 매일 마주하는 것은 철길에 기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아니라 벽과 벽화다. 벽화 맞은편에서 장사하는 김태호(56) 씨는 어느 날 시장과 철길 사이를 딱 막아버린 벽을 매일 마주하다 보니 너무 답답하고 철길 쪽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제 막혀버린 벽 때문에 상인들을 볼 수도 없고 찾아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벽화가 생겨서 좋은 것이 없다”며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 우리 시장 골목을 찾지 않아 시장골목은 이미 죽은 골목”이라고 말했다.

▲ ‘역사 테마거리’에 그려져 있는 3·1 운동 모습의 벽화와 글귀(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 ‘역사 테마거리’의 밤거리(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 벽화 맞은편에 모텔들이 밀집해있다(사진: 취재기자 이령희).

구포장터 만세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벽화나 근대 박물관이 생기는 등 구포역 일대에는 문화 예술 공간도 많이 생겨났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직접 찾아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게 됐고 ‘구포만세길 따라 역사 따라’라는 역사 체험활동도 시행됐다. 그러나 벽화 맞은편이나 주변에 모텔촌이 밀집되어 있어 이곳이 교육의 장이 되기 이전에 유흥촌이었던 이곳의 분위기와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밤에 방문한 관광객 서모 씨는 벽화보다 휘황찬란한 모텔 간판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는 “주위에 유흥가 느낌의 모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나 숙박시설이 들어서서 지역 활성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인 이경희(50, 부산시 북구) 씨는 많은 예산을 들여 벽화가 만들어졌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진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 예산으로 아예 길을 닦고 상권을 형성시켰다면 골목 상권이 발전할 수 있는데 아쉽다고 했다. 그는 “상점이 철길을 두고 마주 보고 있어야지 장사도 잘되고 오가는 정도 있는데 철길의 남북이 벽화로 단절돼버렸다”며 “오히려 예전 모습이 그립다”고 말했다.

북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아직 완료된 사업이 아니라 미흡한 점이 많다”며 “사업이 완료되기 전까지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적극적으로 고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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