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대학생 서포터즈 열정 짜내기 "해도 너무해"
상태바
기업들, 대학생 서포터즈 열정 짜내기 "해도 너무해"
  • 취재기자 박현주
  • 승인 2016.02.23 2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당 떼먹기, 깍아서 주기 예사... 취지 벗어난 잔심부름 전담시키기도
▲ 이모 씨가 했던 모 방송국 대외활동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의 상황(사진: 이모 씨 제공)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되는 이모(22,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씨는 요즘 날마다 페이스북에 ‘대외활동’을 검색해 할 만한 대외 활동이 있는지 찾아본다. 그도 여느 대학생들처럼 취업 준비를 위한 스펙을 쌓는 방법으로 대외 활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동안 뽑아 놓은 대외 활동 리스트가 벌써 두 장이 넘어가는데도 이 씨는 계속해서 선택을 망설이고 있다. 혹시라도 작년 봄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대외활동처럼 허울만 좋고 실속은 하나도 없는 대외활동을 또 다시 하게 될까 걱정이 돼서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해 관련 대외활동을 찾던 이 씨는 지난 해 초, 까다로운 면접까지 거친 뒤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지방의 한 방송국의 홍보 서포터즈가 되었다. 대규모 발대식을 진행하고 서포터즈 위원회의 지도 아래 여러 팀이 나눠져 활동에 대한 보고가 행해지는 카페나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겨나는 등 체계가 잘 갖춰진 상태에서 방송국 홍보 서포터즈는 순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활동 일정에 대한 안내가 뜸해지기 시작했고, 서포터즈 팀장이 아무 연락이 없는 위원회에 활동을 추진해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이르렀다. 위원회로부터“회의를 통해 순탄하게 서포터즈 활동이 진행될 예정이니 안심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서포터즈 활동은 1년 동안 고작 두 번만 이뤄졌고, 서포터즈들은 그마저도 활동비와 수표증도 받지 못했다. 이 씨는 당시 활동을 제대로 못했던 서포터즈 팀원들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보여주면서“이름 있는 방송국에서도 대외 활동 운영을 제대로 잘 처리하지 못하는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문수미(21,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씨도 친구 추천으로 몇몇 대학생들이 만든 봉사단체에 가입해서 대외 활동에 참여했지만 이 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봉사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외활동을 관심있게 눈여겨 본 그는 지원서를 보낸 후 바로 대외 활동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그리고 대표로부터“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정원 40명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 씨는 머지않아 인원이 채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원이 모두 모인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였고, 결국 대외활동을 최초로 기획했던 대학생은 아무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채팅방을 퇴장하면서 활동은 무산되었다. 문 씨는“첫 대외활동이라 기대가 컸는데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아까운 시간만 다 보냈다”면서“그 후에 대외 활동에 대한 불신이 강해져 다른 대외활동을 섣불리 결정하기가 어렵다”고도 얘기했다.

이처럼 지원자들을 모집만 해놓은 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외활동의 피해 사례들이 있는 반면, 지원자들에게 처음 안내한 것보다 무리한 활동을 요구하는 대외활동이 문제가 되는 사례도 있다. 한 스포츠 구단의 홍보 서포터즈에 합격한 정모(22,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씨는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활동을 그만두게 됐다. 대외활동 공고에 적혀있던 업무들보다 구단이 지시하는 일들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계획보다 너무 잦은 모임을 가졌고, 활동의 결과물을 요구하면서 지급하는 봉사시간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심지어 홍보활동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경기장 손님 접대용 음식을 나르는 일까지 하게 되자, 정 씨는 “내가 알바를 하는 건지 대외활동하는 건지 분간이 잘 안 될 정도였다”며“대외활동에서까지 우리 학생들은 갑의 횡포에 휘둘리는 을의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학생들에게 부당한 처사를 제공하는 대외 활동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국제경기 행사에서 통역으로 대외 활동에 참여한 양모(22,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씨는 활동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사전 교육 때 전달받은 담당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신자로부터 “나는 이미 관뒀으니 다른 사람에게 새로 알아보라”는 황당한 대답을 듣게 됐다. 담당자가 변경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외 활동 주최 측이 그 사실을 자원봉사자에게 알려주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던 상황에서, 양 씨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도 활동 중에 큰 불편을 겪었다. 양 씨는“일 하나 처리 하는데도 소통 부족에 질서가 바로 잡혀있지 않아 우왕좌왕했다”며“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제일 곤란했던 건 우리 같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고 당시에 느꼈던 당혹감을 드러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 경우도 잘못된 대외 활동의 피해 사례 중 하나다. 패션 회사가 주최한 대외 활동에 지원한 대학생 김모(24, 대전시 서구 둔산동) 씨는 평소 자신이 즐겨하는 SNS를 이용해 회사가 디자인한 옷들을 홍보하는 서포터 역할을 맡았다. 모집 공고에는 한 달에 30만원 씩 활동비를 지급하며 최우수 서포터는 인턴으로까지 채용하겠다고 적혀있었다. 회사 옷을 직접 사서 꾸며 입은 뒤 사진을 찍어 올리는 성의까지 보였던 김 씨는 회사 매출 상승에 도움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마다 약속된 금액의 절반인 15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김 씨가 세 달 뒤 결국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회사 측에 따져 묻자, 회사 관계자는 김 씨에게“안 그래도 인턴 자리를 주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인성이 덜 된 것 같다. 기다림의 미덕을 모르는 사람한테는 기회를 줄 수 없다”며 김 씨는 도리어 협박을 당했다.

▲ 대외활동 피해 경험 여부에서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통계자료(출처: ‘청와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대학생 대외활동 실태조사)

실제로 청와대의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2015년 2월 대외활동 경험 대학생 1,005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설문조사에 따르면, 활동 목적과는 관련 없는 단순근로인 행사보조 등을 한 경우가 조사 대상자의 36.8%, 무급 또는 적은 보상을 받은 경우가 22.7%, 예상했던 활동과 다른 일을 하게 된 경우가 22.7%, 안내된 활동 내용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공고와 전혀 다른 활동을 한 경우가 20.1%, 뚜렷한 활동이나 주최기관의 관리 없이 방치되었던 경험이 18.2%, 활동비, 수료증, 식사비 등 공고에 제시된 혜택이 실제로 다르게 지급되거나 아예 지급되지 않은 피해경험이 13.5%, 주최기관 담당자로부터 폭언, 협박, 성희롱을 당한 경우가 7.1%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기업의 대외활동을 관리하는 매니저 곽모 씨는 대학생들이 대외활동에 목을 메는 것과는 달리 달리 기업 측에서는 취업 시 대외 활동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곽 씨는“면접 때 대외 활동했다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구직자들에게 어떤 활동을 자세히 했냐고 물으면 얼버무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며“대외 활동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했다는 신뢰를 주어야 평가를 좋게 받는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청년위원회의 다른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57%는 지원자의 실무와 관련 없는 대외활동 경험은 채용 시 지원자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부정적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컨설팅 사이트 ‘겟더잡’ 취업 컨설턴트 한모 씨는 “직무와 연관된 대외 활동을 열심히 했을 경우 취업 면접시 가산점이 적용된다”며 “신중하게 고려해서 자신의 진로에 알맞은 대외 활동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