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우울, 멍때리기...진로 전공 취업난에 ‘대2병’ 앓는 대학생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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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우울, 멍때리기...진로 전공 취업난에 ‘대2병’ 앓는 대학생 많다
  • 취재기자 강은혜
  • 승인 2019.11.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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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 대학생 10명 중 6명 ‘대2병’ 앓고 있다
진로 고민, 취업난, 전공 불만족 등 원인으로 꼽혀
전문가 “자신과 대화하고, 심리치료, 대외활동으로 잠재력 찾아라”

대학생 김수연(21, 울산시 남구) 씨는 요즘 상당히 무기력하다. 대학 강의를 듣다가도,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다가도 계속해서 무기력해지는 바람에 오랜 시간 멍 때리다가 결국 침대로 향한다. 하지만 진짜 고민은 침대에 눕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김 씨는 “침대에 누워있으면 별생각이 다 난다. ‘난 항상 왜 이럴까? 이래서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라는 생각들이다.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점차 암흑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씨는 ‘대2병’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대2병은 대학교 2학년 또래의 학생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취업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뜻하는 ‘중2병’에서 파생됐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중2병과는 달리 대2병은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2병은 미래를 걱정하고 취업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증상이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대2병은 미래를 걱정하고 취업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증상이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대2병을 앓고 있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조사 결과가 증명한다. 올 4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대2병이라고 생각하는가’를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64.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즉, 10명 중 6명이 대2병을 앓고 있다고 대답한 셈이다. 학년별 응답 상황을 보면, 1학년은 43.4%만이 ‘그렇다’라고 응답했고, 2학년은 74.7%로, 1학년보다 31.4%가 더 많이 대2병을 앓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3학년은 75.3%, 4학년은 69.7%각 각각 대2병을 앓고 있다고 응답했다.

2019년 4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대학생 2학년 때부터 대2병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증가하는 것을 보여준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2019년 4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대학생 2학년 때부터 대2병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증가하는 것을 보여준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대2병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사진: 통계청 공식블로그 캡처).
대2병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사진: 통계청 공식블로그 캡처).

대2병을 앓게 되면,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난다. 시도 때도 없이 무기력해지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대폭 하락하기 시작한다. 전공, 취업,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급속도로 상승해 휴학이나 자퇴, 전과 등을 고민하기도 한다. 대학생 석혜숙(21, 부산시 남구) 씨는 지난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갑작스레 휴학했다. 학생회, 동아리, 복수 전공, 종교활동 등 바쁘게 살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한 불안감 때문이다. 석 씨는 “‘이게 과연 취업에 도움이 되긴 할까, 헛고생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점차 무기력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의욕은 없는데, 막상 해야 할 일은 많으니까 버거워서 홧김에 휴학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생들은 왜 대2병을 앓게 되는 것일까? 주된 이유는 ‘취업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2019 전국 대학 취준백서’에 의하면, ‘나는 앞으로 취업난을 겪게 될 것 같아 두렵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73.7%가 동의했다. 같은 연구소에서 조사한 ‘20대 아무 불만 리포트’에서도 ‘향후 5년 이내 실업난이 해결될 것인가’를 묻는 문항에서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11.7%에 불과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20대 아무 불만 리포트.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불과 11.7%에 불과했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20대 아무 불만 리포트.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불과 11.7%에 불과했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대학생 조봉선(21, 경남 함안군) 씨도 취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친척들이나 지인들을 만나기를 꺼려한다. 조 씨는 주변 사람들이 “취업은 어떻게 할 거니?”, “자격증이나 대외활동은 하고 있니?”라고 계속해서 물어대는 통에 취업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하게 됐으며, 아는 사람들마저 외면하게 됐다. 조 씨는 “나도 매일 새벽마다 취업 고민 때문에 편히 잠들지 못하는데, 주변 사람들까지 닦달하니 너무 초조하고 힘들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자꾸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불일치’도 대2병이 발병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2019년 4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공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른 전공을 선택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9.9%,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21.5%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전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게 대2병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추측된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다른 전공을 선택할 것’이라는 응답 비율이 39.9%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어서, 전공 불만족도 대2병 원인으로 꼽힌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다른 전공을 선택할 것’이라는 응답 비율이 39.9%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어서, 전공 불만족도 대2병 원인으로 꼽힌다(그림: 취재기자 강은혜).

대학생 이윤희(21, 경남 마산시) 씨는 사진작가라는 꿈이 있음에도 부모의 강요에 의해 영어교육학과에 강제로 진학하게 됐다. 이 씨는 “‘사진작가는 돈 벌기가 힘들다. 취미로 해도 되지 않냐’는 부모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진작가가 하고 싶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영어교육학과는 나와 너무 맞지 않아서 현재 나는 너무 우울하다”고 호소했다.

대학생 이문승(21, 경남 거제시) 씨도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 이 씨는 고등학교 때는 꿈이 없었던 탓에 아무 생각 없이 사회복지를 선택해서 전공하고 있지만, 현재는 유치원 교사라는 꿈이 생겼다. 이문승 씨는 “‘왜 이렇게 늦게 꿈을 자각했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우리 학교는 2년제라 전과나 복수 전공 따위의 제도가 없어서 더욱 괴롭다. 요즘 심하게 자괴감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진로를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한 상태’도 대2병이 발병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대학생 이수진(21, 경남 창원시) 씨는 학과 선택 당시 장래희망이 없어서 취업이 보장되는 간호학과로 전공을 결정했다. 이 씨는 졸업하면 간호사가 될 가능성은 높지만 애초부터 간호사를 꿈꿔온 처지가 아니라서 과연 간호사란 직업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 씨는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그 고민의 끝이 어디일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진로가 명확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렵고 암담하다”고 말했다.

대2병을 앓고 있다고 소개된 김수연 씨는 아직까지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명확한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윤리교육과와 심리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는 김 씨는 최근 요리에 빠졌다. 때문에 김수연 씨는 요즘 무엇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태다. 김 씨는 “윤리교육, 심리, 요리에 모두 흥미가 있다. 한 학문에서 원하는 직업 찾는 것도 어려운데, 아예 상반되는 세 가지 학문 중 꿈을 찾아야 하니까 너무 힘들다. 지금 취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2병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 1학기 대2병을 앓았고 그것을 극복한 대학생 박지혜(21, 경북 구미시) 씨는 ‘자신과의 대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대2병을 앓을 당시 박 씨는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며 희망하던 학과 생활과 실제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크게 느꼈고, 입학했을 때 품고 있던 아나운서라는 꿈마저 무색해졌다. 그래서 박 씨는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과 일기를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자신을 되돌아봤고, 그 노력 끝에 기업 내 홍보팀이라는 새로운 꿈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대2병을 일종의 ‘사춘기’라고 정의한 박지혜 씨는 “당시에는 조금 힘들 수 있겠지만, 이 시기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를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년에 대2병을 앓았다가 극복한 대학생 이정빈(21) 씨는 ‘상담’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 씨는 대학에 입학하고 1년간 전공인 역사과목에 최선을 다했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학점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 씨는 공부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졌고, 극도로 우울해져 결국 상담 센터를 방문하게 됐다. 이정빈 씨는 “상담사 분이 ‘잘하고 있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는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지만, 몸이 아프면 병원에 당연하게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 대2병으로 힘들면 걱정하지 말고 상담치료를 받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경성대학교 심리학과 이수진 교수는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이 현재 대2병을 앓는 대학생들의 가장 큰 숙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 심리검사를 할 수도 있고,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내가 놓여보지 않는 삶에 놓여볼 수도 있다. 나의 잠재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진 교수는 “그러다 보면 종종 고비를 넘어야 할 때가 있다. 마치 신데렐라든, 잠자는 숲속의 공주든 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전에 인생에서 최고조의 위기나 클라이맥스같은 게 오는 것처럼, 그것을 넘겨야 한다. 근데 그게 단지 고통이고 힘들다는 이유로 피하면 그냥 재투성이 신데렐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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