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봤다는 여자 연예인이 왜 악성댓글에 시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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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봤다는 여자 연예인이 왜 악성댓글에 시달려야 하나?
  •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 승인 2019.11.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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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옳고 그름을 나누는 감각 또한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너무 급격한 변화는 사회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선 겪을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성장통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로 인한 사회 내 갈등이 결코 불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백만 부 이상 팔린 책 가운데 <82년생 김지영>만큼 논란을 일으킨 책은 없었다. 여자 연예인들은 이 작품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이 작품은 번역 출간된 지 5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일본 아마존 아시아 문학 부분 인기도서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언론에 따르면, 부정적인 독서 평을 쓴 대부분 네티즌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일본 사회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한 이 작품이 일본어판으로 출간된 것에 대해 사과를 전하는 내용의 댓글이 대다수였단다.

원작 소설과 이를 기반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까지 본 나로서는 이 작품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 논리는 두 가지로 모인다. 첫째로 ‘어떻게 한 사람 일생에 이런 불편부당한 사건들이 이렇게나 많이 일어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며 누군가는 여자들의 피해망상을 부추기는 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간 가장의 무게 비롯해 어릴 적부터 남자로서 온갖 책임을 떠안고 살아야 했던 인물의 서사를 그려낸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는 왜 이런 지적이 제기되지 않았는가.

둘째는 주로 이 소설을 읽고 공감하는 젊은 세대 독자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인데 ‘너희 세대는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공감하느냐’는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공감도 못할 거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전제다. 더군다나 작품에서 그려지는 차별의 상황 중 일부는 82년생 김지영뿐만 아니라 92년생 김지영 또한 겪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몰카사건 보도를 본 뒤 공중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나사못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된 내가 있고, 상사가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치는 것쯤은 별일 아닌 일쯤으로 여길 수 있게 된 동기가 있고, 곧 머리를 싸매고 혹시 승진과 연봉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 요즘 여자가 살기 좋아진 세상,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윗세대 여성도 마찬가지로 ‘옛날보다 여자가 살기 훨씬 좋아진 세상’이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과거보다 살기 좋아진 세상이 아니고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 필요하다.

한편, 페미니즘과 관련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여자만 힘든 것 아냐, 남자도 똑같이 힘들어’란 얘기가 나온다. 기득권이라 평가받는 집단에 소속된 개개인의 삶도 막상 속 깊게 들여다보면 그다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차별이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임을 간과했다는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는 “어떤 집단에 특권이 있다는 것은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유리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지, 삶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라는 이유로 “성차별적 고용불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는 것이다.

“여성이라 돈을 덜 받고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포기해야 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에 반대한다면 우리는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근우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란 책에서 한 말이다. 내게 페미니즘이란 남성 혐오를 조장하거나 여성우월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 격할 대로 격해진 이 논쟁이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될지 아직 짐작하지 못하겠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해서 욕먹지 않고, 연예인이 ‘GIRLS CAN DO ANYTHING’ 문구가 든 물건을 들었다고 해서 논란이 되지 않으며, 어떤 직종에서 여성 고위직이 등장한 것이 ‘유리 천장이 깨졌다’는 타이틀로 도배될 만큼 의례적인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여겨질 수 있는 사회에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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